카타리나 베닌카사(Catharina Benincasa, 또는 가타리나)는 시에나의 한 염색업자의 25명의 자녀 가운데 막내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생기발랄하고 상냥한 아가씨였으므로, 아버지가 항상 점잖게 굴라고 하는 말을 싫어하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불과 6살의 어린 나이에 자신의 생애를 미리 보는 신비한 체험을 하였다. 그녀는 부모가 자신을 결혼시키려는 모든 노력에 반항하고, 오로지 기도와 단식에만 전념하였다.
그녀는 16세 되던 해에 도미니코 3회원이 되었으며, 이때부터 그리스도, 마리아, 성인들에 대한 환시는 더욱 잦아졌고, 동시에 악마적인 환시도 종종 일어났다고 한다.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큰 관심을 보였는데, 특히 나병환자와 같은 절망적인 병을 앓는 환자들을 간호하는 일을 즐겨하였다.
그녀가 받은 초자연적인 선물들로 인하여 열렬한 지지자들이 지나치게 열광하였기 때문에, 그녀가 혹시 협잡꾼이 아닌가 하여 고발됨에 따라 도미니코회의 총회 석상에까지 출두한 일도 있었다. 그 당시 카푸아(Capua)의 레이몬드 성인이 그녀의 고해신부로 임명되었으나, 곧 그녀의 제자가 되었고, 후일에는 그녀의 전기 작가가 되었다.
시에나로 돌아온 그녀는 페스트로 황량해진 그 도시와 주민들을 돌보는 일에 전념하였고, 선고받은 죄수들을 찾았으며, 평화를 전하는 사람으로서 많은 분쟁을 해결하였다. 그녀는 터키인을 대항하려는 십자군을 모집하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11세(Gregorius XI)를 적극 지원하였고, 1375년에 피사를 방문하는 도중에 오상 성흔을 받았다.
그러나 이 오상이 생전에는 볼 수 없었는데, 임종할 즈음에는 확연히 드러났다고 한다. 그녀는 플로렌스와 그레고리우스 교황간의 불화를 중재하는 데에는 실패하지만, 아비뇽(Avignon)의 교황좌가 1376년에 로마(Roma)로 돌아오게 하는 일에 큰 기여를 하였다. 그 후로는 자신의 신비적인 체험들을 기록하는 일에 전념하여 성녀 카타리나의 대화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다.
1378년 교황 그레고리우스의 서거에 즈음하여 우르바누스 2세(Urbanus II)가 교황으로 선출됨으로써, 이를 반대하는 일단의 추기경들이 스위스 제네바(Geneva)의 로베르투스(Robertus)를 대립교황으로 선출하는 사건으로 큰 분열이 발단되어 여간 혼란스럽지 않을 때, 그녀는 단호히 우르바누스 교황을 지지하여 분열을 종식시켰다. 그녀는 중풍 증세로 고생하다가 며칠 후에 로마에서 운명하였다.
카타리나는 그리스도인 신비가 중에서도 대가에 속한다. 그녀는 “대화” 외에도 400여 통의 서한들을 남겼다. 1461년에 시성되었고, 1939년에는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으며, 1970년에는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하여 교회 박사로 선언되었다.
강론 : 요한 15,12-17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 목숨을 내놓아 서로를 살리는 사랑 ♣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15,13)고 하십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핵심 특징은 이웃과 사회로 눈을 돌리는 사회적 사랑이요 철저히 이타적인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을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는 그분 친히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그 한없는 사랑을 본받아 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아 살아내야 할 목숨을 내놓는 사랑이란 어떤 사랑일까요? 그런 사랑은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요, 죽음 가운데서도 생명을 되살릴 수 있는 사랑입니다. 자연계에서도 그런 이치를 보고 배울 수 있습니다. 암컷은 알을 낳고 둥지를 떠나 버리지만, 수컷은 알이 부화할 때까지 돌과 풀로 주변을 막아 침입자들을 막고, 쉴새없이 지느러미로 부채질을 합니다. 사흘이 지나면 부화가 시작되고, 부화한지 닷새가 지나면 새끼들은 둥지를 떠나기 시작합니다. 둥지를 떠났던 새끼들은 죽은 수컷 주위로 모여와 아비의 살을 파먹습니다. 죽어서까지 자신의 몸을 새끼들의 먹이로 주는 것이 바로 '가시고기' 아비의 자식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러한 사랑은 일부가 아닌 ‘통째로 건네는 사랑’이기에 고통과 기쁨을 포함한 모든 삶을 기꺼이 함께 나눠야 합니다. 또한 목숨을 내놓은 사랑은 심지어 원수까지도 포함한 모든 이에게 모두를 내놓는 사랑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일상의 삶에서 서로 관심을 갖고 희생하며 주님께서 주신 것을 ‘내주고 또 내주어’ 목숨까지도 건넬 수 있어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시간과 정성과 온 마음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것은 바보가 되고, 내가 죽는 길이지만 그것만이 나를 살리고 남을 살리는 영원한 생명, 참 행복의 열쇠임을 새겨야겠습니다. |
'강 론 말 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16년 5월 2일 부활 제6주간 월요일(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0) | 2016.05.02 |
|---|---|
| -지금여기 강론대- [서공석 신부] 5월 1일(부활 제6주일) 요한 14, 23-29 (0) | 2016.04.29 |
| -가톨릭신문- [염철호 신부] 5월 1일 다해 부활 제6주일 (요한 14,23-29 (0) | 2016.04.28 |
| -평화신문- [주수욱 신부] 5월 1일 다해 부활 제6주일(요한 14,23-29) (0) | 2016.04.28 |
| 2016년 4월 28일 부활 제5주간 목요일(복자 루케치오) (0) | 2016.04.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