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패오(Alphaeus)의 아들인 성 야고보(Jacobus)는 복음서에 그리스도의 12사도 중 한 명으로 기록되어 있고, '주님의 형제' 야고보와 같은 인물로 가끔씩 등장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승천 후에 예루살렘의 어느 2층 방에 모여 있던 열 한 제자 중 한 명이다(사도 1,13).
성 야고보는 분명히 주님의 형제로 언급되고(마태 13,55), '주님의 동생'으로 불린다(갈라 1,19). 사도 베드로(Petrus)가 자신이 기적적으로 감옥을 빠져나온 사실을 알려주라고 이른 사람이 바로 성 야고보이다(사도 12,17).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성 야고보는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첫 번째 주교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그러므로 내 판단으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하느님께 돌아선 이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말고, 다만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우상에게 바쳐 더러워진 음식과 불륜과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피를 멀리하라고 해야 합니다."(사도 15,13-21 참조) 하고 비유대계 그리스도인에게 네 가지 관행만을 실천하도록 요구하였다.
후대에 생긴 전승에 의하면 성 야고보는 팔레스티나(Palestina)와 이집트에 정착해서 복음을 전하다가 이집트의 오스트라키네(Ostrakine) 또는 시리아에서 순교하였다고 한다.
그는 복음을 열심히 전하였는데, 그의 설교가 군중을 노하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신전 지붕에서 내던져졌다고 한다. 그리고 군중들로부터 곤봉과 방망이로 매를 맞아 순교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교회미술에서 그의 모습은 곤봉이나 방망이를 든 모습으로 자주 그려진다.
성 필립보
갈릴래아의 베싸이다(Bethsaida) 출신인 사도 성 필리푸스(Philippus, 또는 필립보)는 아마도 세례자 요한(Joannes Baptistae)의 제자인 듯하며, 사도들 명단에도 기록되어 있다(마태 10,3; 마르 3,18; 루가 6,14; 사도 1,13). 그 외에 그가 언급된 곳은 요한 복음서이다.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제자로 간택되었으며 나타나엘(Nathanael)을 그리스도께 인도하였다(요한 1,43-48).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중에도 그가 참석했고(요한 6,1-15), 예수를 찾아온 이방인들을 예수님께 소개하기도 하였다(요한 12,21-22).
예수님의 수난 직전에 그는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고 간청도 하였다(요한 14,8). 전설에 따르면 그는 그리스를 무대로 설교하였다고 하며,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소아시아 중서부 프리지아(Phrygia)의 히에라폴리스(Hierapolis)에서 십자형을 받아 순교했다고 한다.
강론 : (요한 14,6-14)
<하느님, 하느님 나라>
필립보가 예수님께 하느님을
뵙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요한
14,8)."
아버지를 뵙게 해 달라는
청은,
모세나 엘리야가 그랬던 것처럼 하느님을 직접 만나 뵙게 해 달라는 청입니다.
신명기를 보면 모세에 대해서
"그는 주님께서
얼굴을 마주 보고 사귀시던 사람이다(신명 34,10)."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탈출기에는 "주님께서는 마치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말하듯,
모세와 얼굴을 마주하여 말씀하시곤 하였다(탈출 33,11)." 라는 말도 있습니다.
또 모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하느님을 뵈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모세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의 원로 일흔 명과 함께 올라갔다.
그들은 그곳에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뵈었다.
그분의 발밑에는 청옥으로 된 바닥 같은 것이 있었는데, 맑기가 꼭 하늘같았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령들에게 손을 대지 않으셨으므로,
그들은 하느님을 뵙고서 먹고 마셨다(탈출 24,11)."
그러나 모세와 원로들이
하느님의 모습을 직접 본 것은 아닙니다.
모세가 하느님께, "당신의 영광을 보여 주십시오(탈출 33,18)." 라고
청하자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얼굴을 보지는 못한다.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다(탈출
33,20)."
그래서 모세와 원로들이 하느님을 뵈었다는 말은,
하느님의 존재와 영광과 권능을 직접적으로 체험했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원로들이 하느님을 뵈었다고 말한 구절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묘사하지는 않고,
그분의 주변 상황만 묘사한 것도 그분을
직접 뵌 것은 아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느님과 엘리야가 만나는
장면을 보면,
엘리야도 그분의 모습을 직접 본 것은 아니고,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만 들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1열왕
19,11-13).
그런데 필립보는 왜 하느님을
뵙게 해 달라고 청했을까?
우리 신앙의 이유이며 목적인 그분을 직접 뵙고 싶어 하는 것은
모든 신앙인의 당연한
소망입니다.
또 신앙생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싶어서
그분을 직접 뵙고 싶어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라는 필립보의 말은,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필립보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 14,9)."
이 말씀은, "예수님을 보는 것은 하느님을 보는 것과 같다."가 아니라,
"예수님을 보는 것은
곧 하느님을 보는 것이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하느님을 믿는 것과 같다."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것은 곧 하느님을 믿는 것이다."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예수님은
하느님"입니다.
우리 교회는 "예수님은 사람으로 오신 하느님"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직접 뵙고 싶다는
소망을
'하느님 나라'를 직접 보고 싶다는 소망으로 바꿔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지인 그곳을 미리 직접 보게
된다면,
누구든지 큰 힘과 용기와 희망을 얻어서 끝까지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보는 것은, 안 믿는
사람들에게는 믿음을 갖게 하는 일이 될 것이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믿음이 옳았음을 확인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스테파노는 순교
직전에,
하늘이 열려 있고 하느님의 영광과 예수님을 보았다고 증언했습니다(사도 7,55-56).
바오로 사도는 자기가 환시 중에
하늘로 올라가서
그 나라를 보았다고 증언했습니다(2코린 12,1-4).
보통 사람들에게도 그런 은총이 베풀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바리사이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질문하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
이
말씀은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뜻인데,
종말이 되어야만, 또는 죽은 다음에만 그 나라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그 나라를 볼 수 있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산상설교'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
사람들이 하느님을 찬양하는 곳, 그곳이 바로 하느님 나라입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의 '신앙인다운 삶'은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만드는 일이 됩니다.
(신앙인들에게는 그렇게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4-35)."
이 말씀을, "너희는 사랑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보여주어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말은,
우리의 사랑을 보고 예수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된다는 뜻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보게 된다는
뜻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서로"는,
"너희끼리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계명'이기 때문에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실천해야
합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께서
계십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계신 그곳이 하느님 나라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이 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전주교구 신풍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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