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복음] 예수님께서 먼저 오르신 하늘나라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고 3일 후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늘나라에 오르셨습니다. 하늘에 올라갔다는 사실이 그 시대 성경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놀라운 일이겠지만, 요즘은 너도나도 하늘에 올라갑니다.
비행기를 타고 오르기도 하고, 우주선을 타고 하늘에 오르기도 합니다. 이제는 기구를 타고 지상에서 50㎞ 위 성층권까지 가서 지구를 보는 관광 상품이 곧 나온다고도 합니다.
인류 최초로 지구 밖 하늘에 오른 옛 소련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은 “하느님은 없다”고 했답니다. 달에 착륙한 첫 우주인 닐 암스트롱은 하느님을 찬미했다고 합니다. 글쎄요. 넓기만 한 우주에 대해 인간은 아직 상상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00년 전부터 교회는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은 나자렛사람 예수께서 분명히 부활하셨고, 하늘에 오르셨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승천을 통해 이분이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신앙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서 십자가에서 죽었던 그분은 부활하시고 성부 오른편에 앉으신, 성자이신 하느님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나라는 어떤 곳?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38번이나 ‘하늘나라’가 나타나는데, 모두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 속에 들어있습니다.
하기야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 영원토록 함께 계시다가 이 세상에 인간이 되셨으니, 하늘나라에 대해서는 훤히 아시고 자신 있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 ‘하늘나라’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무엇보다 이 세상에 가까이 와 있는 하늘나라입니다(마태 3,2).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의 하늘나라입니다. 이 세상 논리와는 전혀 다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하늘나라입니다.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 하늘나라의 주인이 됩니다(마태 5,3.10). 의로운 사람이 하늘나라에서는 큰 사람입니다(마태 5,19).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하늘나라입니다(마태 7,21). 예수님께서 가리지 않고 다니신 모든 마을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주시면서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마태 9,35).
어린이와 같은 세상의 작은 이들과 힘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주인입니다(마태 19,14). 하늘나라의 주인은 실업자의 아픔을 알고 함께 해결하는 포도밭 주인과 같습니다(마태 20,1 이하).
하늘나라는 초대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임금의 아들을 죽이기까지 하는데도 굽히지 않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은 혼인 잔치와 같은 곳입니다(마태 22,1 이하).
기쁨이 넘치는 축제에 참여하는 하늘나라입니다(마태 25,1 이하). 인간을 신뢰하는 하느님께서 인간으로 하여금 잠재된 능력을 발휘하도록 기회를 주시는 하늘나라입니다(마태 25,14 이하).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는데, 구름에 둘러싸여 제자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습니다. 그때 아마도 두 천사가 제자들에게 이 질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사도 1,11)
이제 하늘나라가 우리 가운데 자리 잡기 시작했으니 목이 빠지게 하늘만 쳐다보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 승천을 기념하면서 ‘지금 여기서’ 하늘나라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하늘나라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복음서에서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배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참으로 행복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으로서 돈이나 다른 즐거움을 찾으면서 허무하게 인생을 보낼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만을 신앙하고 희망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당부하신 가르침대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 가르침을 교회가 생생하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정의를 추구하면서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도 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식별하고 실행에 옮기도록 해야 합니다. 내 주위의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돌봐야 하겠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내 가족 가운데 있고, 가까이에 있습니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존중해야 합니다.
이 시대의 청년 실업자들을 비롯해 모든 세대 사람들이 함께 인간답게 일하고 쉴 수 있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 나갑시다. 서로의 벽을 허물고 너그럽게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기쁨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나눕시다. 서로 신뢰하고 인정하고 기회를 주는 사회가 되도록 함께 노력하는 하늘나라입니다.
주수욱 신부(서울대교구 대방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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