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 (루카 24,46ㄴ-53)
<승천, 재림, 믿음, 희망>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베타니아 근처까지 데리고 나가신 다음,
손을 드시어 그들에게 강복하셨다.
이렇게 강복하시며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줄곧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냈다(루카
24,50-53)."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크게
기뻐하며' 라는 단어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떠나셨습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예수님과의 이별을 슬퍼하지
않고 크게 기뻐합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일을
이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음을 나타냅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예수님을 더 이상 눈으로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아쉬움과 슬픔이
조금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적인 감정일
뿐이고, 그들은 믿음 속에서는 크게 기뻐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신 다음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는데,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예수님께서 올라가시는 동안 그들이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는데,
갑자기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사도 1,9-11)"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실
때 갑자기 사라지신 것이 아니라
서서히 시야에서 사라지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모습을 끝까지 보려고 애를 썼을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다시 오실 것이다." 라는 말입니다.
승천은 아주 떠나신 일이 아니라 잠시 안 보이게 된 일이라는
것,
지금 우리의 신앙생활은 승천과 재림 사이의 과도기의 생활이라는 것.
예수님의 승천은 신앙인들을
버려두고 가신 일이 아니라,
신앙인들과 함께 계시기 위해서 존재 방식을 바꾸신 일입니다.
'하늘로 올라가셨다.' 라는 말은 하늘 위
어떤 장소로 가셨다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 속으로 가셨다는 뜻이고,
하느님으로서 현존하시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마르코복음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마르
16,19-20)."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서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신 일은
우리가 직접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일, 그래서 직접 확인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예수님은 그런
분이라고 믿는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라는 말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떠나신 것
같지만, 사실은 떠나신 것이 아니라
신앙인들과 함께 사시면서, 함께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지만
부활하셨고 승천하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도 예수님께서 가신 그곳에 가는 일,
또는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잘 맞이하는
일입니다.
(바로 그것이 신앙생활의 목적이고 이유입니다.)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잘한 사람은,
재림 전에 죽는다면 예수님께서 가신
그곳에 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수님과 함께 살 것입니다.
재림 때까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형제 여러분, 죽은 이들의 문제를 여러분도 알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슬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죽은 이들을
그분과 함께 데려가실 것입니다.
... 이렇게 하여 우리는 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말로 서로
격려하십시오(1테살 4,13-18)."
누구든지 사랑하는
사람이(가족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
몹시 슬퍼하면서 장례를 치르고, 그 과정에서 '인생무상'을 실감하게 됩니다.
또 언젠가는 자기
자신도 인생을 마치고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두렵고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슬퍼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희망의 근거는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써
우리는 죽음이 인생의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심으로써
우리는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알게 되었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 믿음에서 희망이 생기고,
그 희망에서 지금의 인생을 살 수 있는
힘이(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래서 신앙인의 인생은 허무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순절이 시작되는
날, 즉 '재의 수요일'에,
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을 하면서
인간이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창세 3,19)" 라는 것을
묵상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묵상한 것은,
비록 흙에서 나온 존재라고 하더라도 흙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인생이,
또 우리의 존재가
흙먼지처럼 허무하게 사라지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허무하게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하고,
예수님의 가르침들을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의 뒤를 따르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들을 실천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전주교구 신풍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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