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자의 주보성인인 성 마티아는 열두 사도 중 유다(Judas)의 배반과 죽음으로 비어 있는 자리를 채우기 위해 사도로 선출된 예수님의 제자(사도 1,15-26)이다. 성 마티아는 당시 그리스 문화권에서 흔한 이름인 마티티아(Mattithiah, 야훼의 선물)의 약칭이다.
열 두 사도로 선출된 사실 이외에 그에 관해 알려진 바는 없으나 후대 전설에 의하면 성 마티아는 예수님께서 파견하였던 72명의 제자(루카 10,1-12)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또 자캐오(Zachaeus) 아니면 성 바르나바(Barnabas, 6월 11일)와 동일 인물이라고도 하고,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십자가형 또는 참수형을 받았다는 두 개의 다른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와 같이 마티아 사도의 선출 이야기 외에는 신약성경의 다른 어느 곳에도 마티아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으며 그에 관한 전승을 아주 불확실하다.
다소 불완전한 전설이긴 하지만 그에 따르면, 그는 거의 30년 이상 유대아(Iudaea)와 카파도키아(Cappadocia), 이집트, 에티오피아 등지에서 설교하였고, 카스피해(Caspian Sea) 연안에서 큰 박해를 맞이하여 콜키스(Colchis) 또는 예루살렘(Jerusalem)에서 순교하였다고 전해온다.
교회 전승에 의하면 성 마티아 사도의 유해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하여 독일의 트리어(Trier)로 옮겨졌고, 노르만족의 침략으로 분실되었다가 다시 발견되어 안장되었다고 전해진다.
강론 : (요한 15,9-17)
<사도 직무>
'마티아 사도'는 유다의
후계자도 아니고, 후임자도 아닙니다.
유다는 '제 갈 곳으로 가려고'
자기가 받은 직무를 내버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사도
1,25).
물론 예수님께서 유다를 사도로 뽑으신 일을 취소하셨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배반자가 됨으로써 자기가 사도로
뽑힌 일을 스스로 무효화시켰고,
그래서 사도가 아닌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유다는 사도가 아니라 배반자로만 불립니다.
그가
한때 사도였다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유다는 마티아에게 아무것도 물려준 것이 없습니다.
마티아는 유다에게서
사도 직무를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버린다(요한 15,6)." 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유다는 스스로 잘린 가지가 된
사람입니다.
마티아는 "주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지내시는 동안
줄곧 제자들과 동행한" 사람이었고,
"다른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 된" 사람이었습니다(사도
1,21-22).
예수님께서 처음부터 마티아를 사도로 뽑으셨다면 좋았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까?
우리는
모릅니다.
유다에 관한 일들이 모두 수수께끼인 것처럼 그 일도 수수께끼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마티아 사도 자신은
사도로 뽑히기를 원했을까?
바오로 사도는 '교회 지도자의 자격'에 대해서 말할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은 확실합니다. 어떤
사람이 감독 직분을 맡고 싶어 한다면
훌륭한 직무를 바라는 것입니다(1티모 3,1)."
이 말을, "어떤 사람이 감독 직분을 맡고
싶어 하는 것은 훌륭한 소망입니다."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권력욕이나 명예욕 때문이 아니라, 주님과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고
헌신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직무를 맡기를 바라는 것이라면
그것은 훌륭한 일입니다.
마티아 사도는 그렇게 봉사하기를 바라는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만일에 본인이 원하지도
않는데 억지로 사도 직무를 떠맡긴다면,
마음에서 우러나온 봉사와 헌신을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직무든지 간에 교회의 직무를 맡는
것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이어야 하고,
동시에 그 직무를 맡는 당사자 본인이 원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신품성사 예식에 있는
서약문을 보면,
교구장이 후보자들에게 "... 하기를 원합니까?" 라고 묻고,
후보자들이 "원합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청빈,
독신, 순종 서약 모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강요당해서가 아니라 본인들이 원해서 서약한다는 것입니다.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본인들이 가난하게 살기를 원해서 '가난'을 서약합니다.
결혼을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들이 안 하기를
원해서 '독신'을 서약합니다.
순종하라고 강요해서가 아니라 본인들이 원하는 일이라서 '순종'을 서약합니다.
그러니 그 서약들을
충실하게 지켜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마리아의 경우,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서 예수님의 잉태와 탄생을 예고했을 때,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라고 응답했습니다.
이 말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바랍니다.'('나는 원한다.') 라는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저도 원합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했기 때문에 그분의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라는 말도,
"저는 주님의 종이 되기를 원합니다."로 해석됩니다.
마리아의 응답과
순종은 '종'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복종한 일이 아닙니다.
종이 아닌데도 기꺼이 자기 스스로 자기를 그렇게 낮춘 일입니다.
교회의
직무를 맡는 사람은 마리아의 모범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마티아가 사도로
뽑히는 과정을 보면,
교회 공동체는 요셉이라는 사람과 마티아를 함께 후보로 정한 뒤에
주님께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제비를 뽑게
합니다(사도 1,23-25).
제비를 뽑는 방식이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낯설게 보이는데,
그것은 구약시대 때부터 사용하던
방식입니다.
어떻든 중요한 점은 주님께 기도했다는 점입니다.
마티아가 사도로 뽑힌 일은 공동체가 바친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서
주님께서 직접 하신 일이라는 것이 우리 교회의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6)."
이 말씀은, 우리가 교회의
직무를 맡아서 하는 일들은
주님과 교회를 위해서 하는 일들이지만,
가장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가르침입니다.
그 일을
통해서 가장 먼저 구원을 받게 되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따라서 내가 맡은 직무는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총입니다.
예수님께서 뭔가 아쉬운 것이
있어서 제자들을 뽑으신 것도 아니고,
혼자 일하시기가 힘들어서 함께 일할 사람들을 구하신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세상에 오신 분입니다.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신 것도, 그들에게 직무를 맡기신 것도
일차적으로는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른 것도, 또 예수님께서 맡기신 일들을 한 것도
우선 먼저 자기들이 구원받기
위해서였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특별히 어떤
직무를 맡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해도
사실은 신앙인들은 전부 다 복음 선포와 사랑 실천이라는 직무를 맡았습니다.
이 직무 수행의 첫
번째 목적은 자기 자신의 구원이고,
그 다음은 온 세상 사람들의 구원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전주교구 신풍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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