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발 마가야네스 하라(Cristobal Magallanes Jara)로도 알려진 성 크리스토포루스 마가야네스 하라(Christophorus Magallanes Jara, 또는 크리스토포로 마가야네스 하라)는 멕시코 혁명정부의 부당한 종교 탄압에 저항해 발생한 크리스테로 전쟁(the Cristero War, 1926-1929년) 중에 반란을 선동했다는 날조된 혐의를 받고 미사를 봉헌하던 중에 체포되어 재판도 없이 죽임을 당한 순교자로서 가톨릭 교회에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는 1869년 7월 30일 멕시코 서부 할리스코(Jalisco) 주(州)의 토타티케(Totatiche)에서 농부였던 라파엘 마가야네스(Rafael Magallanes)와 클라라 하라(Clara Jara)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목동으로 일하던 그는 19살 때에 과달라하라(Guadalajara)에 있는 산 호세(San Jose) 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30세에 과달라하라에 있는 산타 테레사(Santa Teresa)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은 후 같은 도시의 한 학교에서 교목신부로 봉직했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토타티케의 본당신부로 임명된 후 학교와 목공예품 상점을 설립하고, 칸데라리아(Candelaria) 댐 건설을 돕는 등 고향의 발전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멕시코 서부 시에라마드레 산맥(Sierra Madre Mts.)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인 후이촐족(Huichol)의 복음화도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그는 아스퀠탄(Azqueltan)에 있는 아메리카 인디언 마을에 선교 기관을 설립했다. 1914년 정부로부터 과달라하라의 신학교를 폐쇄하라는 결정이 내려졌을 때, 그는 자신의 본당에서 신학교를 열 것을 제의하였다.
1915년 7월 토타티케에 개교한 신학교는 빠르게 성장해 다음해 이미 17명의 학생이 등록했고, 학칙과 두 명의 교수를 파견해준 과달라하라 교구의 호세 프란치스코 오로스코 이 히메네스(Jose Francisco Orozco y Jimenez) 대주교로부터 승인도 받았다.
그는 무장반란에 반대하여 많은 저술과 설교를 했으나 오히려 그 지역의 크리스테로 반란을 도모했다는 부당한 고발을 당해 체포되었다. 1927년 5월 21일 농장에서 미사를 봉헌하던 중에 체포된 그는 얼마 안 남은 소지품마저 사형 집행인에게 주었고 그들의 죄 또한 용서해주었다.
그리고 아무런 재판도 없이 4일 후인 5월 25일 할리스코의 콜로틀란(Colotlan)에서 성 아우구스티누스 칼로카 코르테스(Augustinus Caloca Cortes) 신부와 함께 순교하였다. 그는 사형 집행인에게 “나는 결백하며, 나의 피로써 나의 멕시코 형제들이 일치할 수 있기를 하느님께 간구한다.”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성 크리스토포루스 마가야네스 하라는 1992년 11월 2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0년 5월 21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으로부터 크리스테로 전쟁과 관련하여 희생된 24명의 동료 순교자들과 함께 시성되었다.
같은 날 성 호세 마리아 데 예르모 이 파레스(Jose Maria de Yermo y Parres, 9월 20일) 신부와 최초의 멕시코인 성녀가 된 성녀 마리아 데 헤수스 사크라멘타도 베네가스 데 라 토레(Maria de Jesus Sacramentado Venegas de la Torre, 7월 30일) 수녀도 함께 시성되었다.
강론 : 마르 10,13-16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마르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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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Blessing Children
♣ 순수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품는 행복한 사람들 ♣
예수님께서는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10,15)라고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영원 행복, 모두가 하느님의 선 안에 머물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는 받아들임이요, 다른 하나는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이는 또한 사회적 약자들과 소외된 이들을 무조건 축복해주시는 하느님 자비의 나타남이며 희망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선과 자비, 진리와 정의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스스로 자신을 불행과 어둠으로 내모는 자해행위와 같은 것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유다 지도자들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은 우리에게서도 종종 드러나고, 사회 차원에서 보면 조직적이고 구조적인 악의 형태로 드러납니다. 하느님의 사람이 되고 진정 행복을 원한다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소유하려 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좋은 것만 받아들이고 싫은 것은 뿌리치는 마음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들의 순수한 수용, 겸손, 전적인 신뢰가 우리가 지녀야 할 신앙의 자세임을 강조하십니다. 어린이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벌어먹지 않고 순진하게 주는 것을 받아먹는 것처럼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바리사이파 사람들처럼 율법 준수로 인한 인간의 공로나 선행으로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려고 하면 바로 제자들과 같은 몰이해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활의 분주함과 욕망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돌같이 차디찬 마음이 되어 버렸고 하느님의 사랑이 자리할 틈이 없게 되어 버렸는지 모릅니다.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하느님의 자비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결정적으로 드러났습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신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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