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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세계] 95. 코린토(1) - 신은근 신부

dariaofs 2017. 2. 14. 04:30

코린토는 그리스 본토와 아래쪽 반도(펠로폰네소스 반도) 사이에 있다.


남북으로 바다를 끼고 있어 육로와 해로 양쪽으로 왕래가 가능하다.


예부터 교통의 요충지였다. 북쪽 바다를 건너면 터키였고 남쪽 바다는 로마로 가는 뱃길이었다.


1883년엔 양쪽 바다를 잇는 6.3km의 운하가 개통되었다. 아테네에서 이탈리아로 가는 항로는 320km 단축되었다.


 

                                                          코린토 운하


 

코린토가 바다와 육지교통의 요지가 되자 자연스레 시장이 형성되었다.


양쪽에서 들어오는 세금 또한 만만찮았다.


일찍부터 현대식 조선소를 세웠고 당시로는 최첨단인 삼단노선을 건조했다.


7세기에 이미 120척을 갖춘 해군력을 지녔다. 삼단노선은 좌우에 노 젓는 자리가 3층씩 있는 전함이다.


코린토는 이 힘을 바탕으로 식민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로마는 교통의 요지이자 해상 무역의 거점인 코린토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코린토는 그리스 도시들을 동맹으로 묶어 저항했지만 기원전 146년 패한다.


로마는 철저하게 약탈하고 파괴했다.

하지만 100년 뒤 코린토의 중요성을 간파한 카이사르에 의해 재건되기 시작했다.


이후 국제적 상업과 다민족 다종교가 혼합된 개방도시로 변모되었다.


사도 바오로가 복음을 전할 당시 코린토 인구는 50만이 넘었다고 한다.


오늘날 남아있는 유적은 대부분 로마시대 것들이다.


기원후 45년 로마황제 클라우디우스는 반유다주의 정책을 폈다.


44년 헤로데 아그리파가 죽자 이스라엘을 속주로 만들고 유다인 축출을 명했다.


이때 많은 유다인이 코린토로 모여들었다. 바오로는 이들을 상대로 선교했던 것이다.


가 코린토에 들어간 것은 2차 선교여행 때였다(50~52년).


터키에서 그리스로 왔던 바오로는 필리피와 테살로니카 그리고 베로이아에서 복음을 전하다 유다인의 박해를 받는다.


어쩔 수 없이 아테네를 거쳐 코린토로 피신한 바오로는 두렵고 떨린다고 고백한다(1코린2,3).


가는 곳마다 박해 때문에 피신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린토에서는 아퀼라와 프리스킬라 부부를 만나 천막 짜는 일을 함께 하며 위안을 얻는다(사도 18,2).


바오로는 코린토에서 18개월 머물며 교회를 세웠고 이곳에서 테살로니카 전서를 집필했다.


최초의 바오로 서간이며 신약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문서다.


이후 바오로는 에페소로 거쳐 예루살렘에 들렀고 다시 안티오키아로 내려갔다. 2차 선교여행을 마감한 것이다.



신은근 신부(마산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