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는 2차 선교여행(50-52년경) 때 그리스에 4개 교회를 세웠다.
필리피 교회와 테로니카 교회, 베레아 교회와 코린토 교회다.
아테네도 선교했지만 교회를 세우진 못했다(사도 17,17).
오래 머문 곳은 코린토다. 몸소 일하며 생계를 꾸렸다.
로마에서 온 아퀼라 부부와 천막 만드는 일을 했던 것이다(사도 18,3).
인지도가 높아지자 유다인은 종교 이단자로 바오로를 고발한다(사도 18,13).
그러나 총독 갈리오(Gallio)는 소송을 기각했다.
고발사건은 바오로의 활동시기를 확인하는 자료가 되었다.
갈리오는 51-52년 코린토가 속한 아카이아 지역 총독으로 있었기 때문이다.
네로 황제 때 원로원 의원이었으며 네로의 스승 세네카의 친형으로 알려져 있다.
갈리오 외에도 코린토에서 바오로를 도왔던 사람은 많았다.
아퀼라 부부와 코린토 첫 신자 스테파나스 가족(1코린 16,15)
집회장소를 제공한 가이오스(로마 16,23) 코린토 소식을 전해주던 클로에 집안(1코린 1,11) 등이다.
이렇듯 2차 선교여행의 꽃은 코린토 교회였다.
이후 아폴로가 교회를 이끌게 되고(사도 19,1) 바오로는 3차 선교여행을 준비하게 된다.
3차 여행의 중심지는 에페소 교회였다. 바오로는 3년 가까이 머물며 많은 편지를 보냈다.
코린토 교회에 보낸 서간도 이곳 작품이다. 성경엔 두 편이 전해지지만 한편이 더 있었다(1코린 5,9).
당시 코린토 교회는 분열되어 있었다.
교우끼리 법정에서 소송하는 일이 잦았고 성찬례 때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다.
코린토 교회는 바오로에게 상황을 알리며 질문도 겸했다.
특별히 혼인 문제와 우상에 바친 제물을 먹는 문제는 절실했다.
바오로는 자신의 견해를 밝히며 귀중한 자료를 보냈다. 이것이 코린토 1서다.
사도는 교회 분열에 관해 상당 부분 할애한다(1~4장).
당시 코린토 교회는 유다인 출신 교우와 이방인 출신 교우가 섞여 있었다.
상류층에 속한 이도 있었고 노예에서 해방된 교우도 있었다.
그러면서 바오로파 아폴로파 케파파 등으로 갈라져 있었던 것이다.
우상에 바친 제물에 대해선 바오로의 사상이 잘 드러나 있다(8장).
음식 자체가 선이 되고 악이 되는 건 아니라고 했다.
다만 그런 음식을 먹는 것이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된다면 사랑으로 그만두라 했다.
그리고 성령께서 주시는 다양한 은사와(12~14장) 모든 길 가운데 가장 으뜸인 사랑에 대해 설파한다.
유명한 코린토 전서 13장이다.
성체성사의 기원이 되는 최후 만찬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11,24-25)은 신약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신은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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