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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세계] 97. 키프로스 - 신은근 신부

dariaofs 2017. 2. 21. 04:30

키프로스는 지중해 세 번째 큰 섬으로 제주도 5배 규모다.


유럽에서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다. 기원전부터 수많은 나라가 지배했다.


이집트 식민지였다가 기원전 8세기 아시리아에 속했고 6세기엔 페르시아 영토였다.


4세기 알렉산드로스에게 정복되면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지배를 받았다. 키프로스에 헬레니즘이 꽃피던 시기다.


기원전 58년 로마에 합병되었고 수세기 동안 유럽의 세력권에 있었다.


16세기부터 오스만 제국이 키프로스를 다스리면서 아랍 영향권에 들었다.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영국 식민지였다가 1960년 독립했고 이듬해(1961년) 영연방(英聯邦)에 가입했다.


1974년 그리스 계통 민족주의자들이 키프로스를 그리스에 합병코자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에 터키는 키프로스를 침공했고 북부지역 37%를 점령해 터키인을 이주시켰다. 남북으로 갈라진 이유다.



                               

 

키프로스는 초대 교회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든 곳이기도 하다. 사도행전에 기록이 등장한다.


박해 때문에 흩어진 이들이 페니키아와 키프로스와 안티오키아까지 가서 말씀을 전하였다(사도 11,19).


스테파노가 순교하자 교우들은 이곳까지 피신 왔던 것이다.


이런 연유로 키프로스에는 교우들이 있었고 바르나바 역시 이곳 출신이었다.


바오로 사도의 1차 선교여행도 키프로스에서 시작된다. 자신을 돕던 바르나바의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모르는 곳보다 아는 곳을 선교하는 게 효율적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바오로 일행은 살라미스 항구에 첫발을 디뎠다(사도 13,5). 오늘날 지명은 파마구스타(famagusta)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유다인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고 기프로스 총독을 입교시키기도 했다(사도 13,12).


하지만 2차 선교여행 때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갈라진다. 바르나바 사촌이었던 마르코 때문이다.


그는 1차 여행에선 바오로와 함께 했었다. 그러나 키프로스까지만 갔고 더 이상 함께하진 않았던 것이다.


바오로가 2차 여행에서 마르코 동참을 거부하자 바르나바는 그와 함께 키프로스에 남았다(사도 15,37-39).


그러나 훗날 바오로가 감옥에 갇히자 마르코는 바오로를 위로하며 함께 있었다(콜로 4,10).


교회 전승에 의하면 예수님의 기적으로 살아난 요한복음의 라자로 역시 키프로스에서 선교했다.


항해하다 배가 난파되어 키프로스에 도착한 라자로는 그곳에서 선교하다 운명했다고 한다.


9세기경 그를 기리는 라자로 성당이 세워졌고 지하에는 그의 무덤이 있다.



신은근 신부(마산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