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자 료 실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76)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로마 8,14)

dariaofs 2017. 12. 12. 06:33

아담의 범죄는 죽음을, 그리스도의 죽음은 구원을

 

바오로 사도에게 믿는 이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은총의 상태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영광에 함께할 것이라는 희망을 지닌 이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우리에게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은 하느님과 화해했음을, 더 이상 죄에 놓여 있지 않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러한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바오로 사도는 아담과 그리스도를 비교합니다. 아담의 원죄와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한 비교입니다.


인간 아담이 지은 죄의 결과

창세기 3장에서 찾을 수 있는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는 사람이면 모두 지니고 있는 원죄에 대한 내용입니다. 첫 인간 아담이 지은 죄의 결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죽음입니다.

 

 더 이상 에덴동산이 나타내는 영원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죽을 운명에 처한 것입니다.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습니다.(로마 5,12)

 

바오로 사도에게 아담의 죄는 장차 오실 분, 곧 그리스도의 예형으로 이해합니다. “사실 그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하느님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운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충만히 내렸습니다.”(로마 5,15)

여기서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것은 형태의 비교입니다. 아담과 그리스도의 비교를 통해 보여 주는 것은 의미가 아닌 형태입니다.

 

아담이 예수 그리스도의 예형인 것이 아니라 아담 때에 일어난 일, 곧 그의 죄로 모든 이들에게 죽음이 생겨난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업적을 비교합니다.

 

아담의 경우와는 정반대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모든 이들에게 생명을 선사하는, 구원을 가져다주는 사건입니다. 아담과 그리스도는 한 사람의 행위를 통해 모든 사람들이 영향을 받게 되었다는 점에서 비교됩니다.


예수 부활로 드러난 주님의 의로움

바오로 사도에게 더 이상 죽음은 사람들을 지배하지 못합니다. 이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의로움이 사람들을 지배합니다.

“우리의 옛 인간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죄의 지배를 받는 몸이 소멸하여, 우리가 더 이상 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로마 6,6)

 

바오로 사도는 육과 영을 구분합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당대의 사상들이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마치 육은 부정적인 것으로 표현되고 영은 긍정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육은 죄, 욕망, 죽음과 연결됩니다. 아담의 후손들에게 죄의 결과가 전해지는 것은 이 육을 통해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모든 이들이 이런 육으로부터, 죄와 욕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음을 나타내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이것을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반면에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들 역시 더 이상 죽음에 매여 있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느님에 의해 이루어진 구원 업적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육을 따라 사는 이들이 아닌 성령의 법을 따라 사는 이들입니다.

 

하느님의 영은 우리 안에서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죽음에서의 부활을 가능케 하는 힘입니다. 이런 하느님의 영을 따라 사는 이들이 바로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영을 따라 사는 하느님의 자녀들

바오로 사도에게 성령은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성령을 따르는 삶은 신앙인들을,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하지만 바오로 사도는 이것이 완전한 상태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립니다.(로마 8,18-25)

 

여기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종말론적인 시간입니다. 흔히 ‘이미’와 ‘아직’의 시간을 살고 있는 것으로 표현되는 이 시간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는 이미 죄와 죽음에서 해방되어 성령이 주시는 생명을 부여받았지만 이것이 완전한 모습은 아닙니다. 바오로 사도는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대해 말합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신앙인들의 삶은 바로 이 영광을 향해 가는 여정에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로마 8,24-25)


<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