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탐Jotham은 유다왕국 11번째 왕이다. 부친 아자르야Azariah가 문둥병에 걸리는 바람에 왕자 시절부터 임금 역할을 했다. 역대기에 의하면 아자르야는 성전에서 분향하려다 제지당한다(2역대 26,18).
아론 혈통의 사제만이 할 수 있다며 가로막은 것이다. 사제 80여 명이 왕을 둘러싸고 막았다. 아자르야는 화를 내며 물러갔다. 왕과 제관들 사이에 앙금이 깊었다는 암시다. 이후 아자르야는 문둥병에 걸린다.
역대기엔 주님의 저주로 기록되어 있다. 후대의 표현일 뿐이다. 율법은 나환자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금지했다(레위 13,46).
왕이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별궁으로 물러갔고 아들 요탐이 섭정에 들어갔다. 25살 젊은 나이였다. 요탐의 어머니는 차독의 딸 여루사Jerusha다.
차독Zadok은 다윗이 임명한 대사제로 솔로몬을 왕으로 성별한 인물이다(1열왕 1,34). 살아생전 막강한 세력을 누렸고 그의 가문은 바빌론 포로를 거쳐 신약 때까지 대사제 직분을 이어갔다. 예수님 시대 대사제 카야파도 차독가문이었다.
이런 집안의 딸이 왕비가 된 것이다. 요탐의 부친 아자르야는 차독의 사위가 된 셈이다.
성전분향 사건은 제관 계급과 임금 사이의 갈등이 빚은 해프닝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후유증은 심했다. 요탐은 왕이 된 후 일절 성전출입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2역대 27,2).
임금이 예루살렘 성전에 발을 끊자 백성들은 산당제사를 묵인하는 것으로 여겼다. 산당은 가나안 토속 신을 섬기던 곳이었다. 우리의 서낭당城隍堂과 비슷한 개념이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 후 예배 장소로 산당을 이용했다.
민중은 쉽게 적응했고 주님과 바알을 가끔 혼동했지만 호응이 좋았다. 이후 공적인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지지만 백성은 여전히 산당을 선호했다.
성전예식은 까다롭고 절기마다 올라가야 했지만 산당은 필요할 때만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제들이 아우성쳐도 왕들이 산당을 없애지 않던 이유 중 하나다. 그렇게 해서 제관 계급을 견제했던 것이다.
요탐은 재위 시절 건축공사를 많이 했다. 부친 아자르야 임금이 물질적 풍요를 남겼다는 증거다. 성전의 북쪽 문上門을 증축했고(2열왕 15,35). 예루살렘 기존 성벽을 강화했다. 여부스족이 쌓은 성벽으로 오펠 성이라 불렀다.
동쪽 암몬족을 다시 평정했으며 매년 은 100탈렌트를 조공으로 거둬들였다. 1탈렌트를 30Kg으로 보면 3톤에 해당하는 은을 받은 것이다.
요탐의 통치 기간은 16년이다. 25살에 왕이 되어 41살에 죽었다. 맏아들 아하즈가 임금이 되어 평지풍파를 일으킨다.
신은근 바오로 신부(마산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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