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4월 14일 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

dariaofs 2020. 4. 14. 05:47



오늘 미사의 말씀에서 우리는 마음으로 하는 사랑을 감지합니다.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요한 20,11).

마리아를 따라 무덤에 달려왔던 베드로와 요한은 빈 무덤을 확인하고는 이내 "다시 집으로 돌아"(요한 20,10)갑니다. 지금 무덤가에는 다시 마리아만 홀로 남아 있지요.

그녀의 울음은 깊은 상실감을 드러냅니다. 사랑하는 예수님의 죽음이 첫 번째 상실이었다면, 시신마저 사라진 빈 무덤으로 재차 처절한 상실감을 맛보고 있습니다. 그녀는 무덤가를 쉽게 떠나지 못합니다.


베드로와 요한, 두 제자들이 확인 차원에서 무덤에 왔다면 마리아는 사랑의 차원에서 왔기에 움직일 수 없습니다.


사실 귀한 것을 잃은 이는 그 현장을 떠나기 어렵습니다. 잃어버린 존재에 대한 미련과 기대가 존재 대신 그 자리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지요.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요한 20,13).

저의 주님! 마리아는 예수님을 스스럼없이 "저의 주님"이라 부릅니다. 그만큼 예수님께 대한 마리아의 사랑은 뜨겁고 각별하지요. 예수님은 모든 이의 주님이신 동시에 그분과 인격적으로 사랑 관계를 맺은 모든 개인들 각자의 님이십니다.


우리의 주님이기도 하시고 나의 주님이기도 하신 주님과의 관계는 보편성과 개별성을 동시에 지닙니다.

"제가 모셔가겠습니다"(요한 20,15).

진정으로 사랑하니까 이미 영혼의 자취를 벗은 시신이라 하더라도 힘껏 예를 갖추고 싶은 겁니다.


새벽 아직 어두울 때 향료를 챙겨 집을 나섰던 그녀는 한시라도 예수님의 시신을 찾아 돌보아 드리려는 마음뿐입니다. 그녀는 사랑하기에 차지하려 합니다. 욕정과 탐욕에서가 아니라 진정 그분을 위하고픈 마음에서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가 계속됩니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꿰찔리듯 아파하며"(사도 2,37).

성령을 받은 베드로가 유다인들에게 십자가의 예수님이 주님이시고 메시아이심을 역설하자 그들이 마음의 통증을 느낍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완고하고 냉담했던 그들이 마음에 아픔을 느낄 만큼 변한 것입니다. 사실 마음을 바꾸어 주시는 분은 주님이시지요.

"형제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사도 2,37)

마음이 길을 묻습니다. 여태까지 고수해 온 방향이 잘못되었음을 귀와 마음이 깨우쳐 주었습니다. 이제라도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꿰찔리듯 아픈 마음의 통증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두려움이나 의무에서가 아니라 마음이 회개를 촉구합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회개"와 "세례"의 처방을 내리면서, "용서"와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 장담합니다. 베드로의 "간곡한 타이름"을 받아들인 이들은 그 자리에서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나지요.

사랑하는 벗님! 사랑이 일보다 마음의 영역에서 일어날 때 우리는 진정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믿음이 머리보다 마음에서 차오를 때 진정으로 믿게 됩니다.


마음이 답을 알고 있습니다. 마음이 길을 알고 있습니다. 마리아도 마음이, 사랑이 시키는 대로 무덤가에 머물렀다가 사랑하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니 벗님에게도 마음으로 더 깊이 사랑하고 마음으로 더 충실히 믿는 부활 축제의 시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성전도 제사도 번제물도 없던 유배 시기에 하느님 백성의 정체성을 지켜내려 마음을 다했던 이스라엘 예언자들처럼, 우리도 마음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며 부활을 경축합시다.


홀로이나 영 안에서 함께 바치는 우리의 기도를 주님은 즐겨 받으실 것입니다. 따로이나 연대 안에 결속된 우리의 사랑도 그분을 흡족하게 해드릴 겁니다. 그때 우리도 마리아처럼 고백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요한 20,18).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