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앙 돋 보 기

[토마스 머튼의 영성 배우기] 41. 머튼의 영적 성장과 변화

dariaofs 2020. 4. 27. 01:00

“내적 삶 샅샅이 살피는 것은 영적 성장의 본질”



                                            ▲ 그림=하삼두 스테파노


영적 성장과 변화와 관련하여 토마스 머튼의 공헌 중에 하나는 영적 성장을 위해 자신의 외적인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자신의 내적인 삶을 깊이 파고드는 것을 그 출발점으로 제시했다는 것이다.


이미 자신의 내면에 살고 계신 하느님의 사랑으로 깨어날 때 우리는 그 안에서 진정 자신의 거짓 자아에서 죽고 하느님께서 주신 참된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 안에서 자신이 쌓아 올린 그 모든 것이 허무함을 깨닫고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삶의 의미를 찾기 시작할 때 우리 영혼은 깨어나 진정 자라기 시작한다.

머튼은 우리의 영적인 삶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저는 영적인 삶이란 인간의 진정한 자아의 삶이요, 내적 자아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내적 자아의 불길이 종종 방치되어 불안과 무익한 걱정의 잿더미 아래에 질식되어 있곤 합니다.


영적인 삶은 삶의 물질적 필요에 대한 즉각적인 만족을 향해 있기보다는 오히려 하느님을 향해 방향 지어져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비실재의 삶이나 몽상의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와 반대로, 영혼의 삶이 없이는, 우리의 전 존재는 비실체적이고 환영적인 것에 되고 맙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의 참 자아를 깨어나게 만들고 그 자아를 하느님의 현존에 머물게 함으로써 실재와 충만하게 만나게 해 줍니다.”(「인간은 섬이 아니다」 머리말)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사랑으로 봉헌

머튼의 내적 자아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그 사랑으로 성장해 사랑이 되어가는 영적 성장의 여정은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과도 부합한다.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4장 15-16절에서 영적인 성장을 ‘사랑’으로 시작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모든 면에서 자라나 그분에게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분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 덕분에, 영양을 공급하는 각각의 관절로 온몸이 잘 결합되고 연결됩니다. 또한, 각 기관이 알맞게 기능을 하여 온몸이 자라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랑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영적인 성장은 하느님의 초월적 사랑을 자신 안에 키우고 성장시키는 과정이다. 이러한 영적인 성장은 또한 전인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의 몸과 마음, 영혼은 따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호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성과 감성과 의지의 통합적인 성장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사랑으로 봉헌해야 한다.


하느님과 사랑으로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온 영혼으로 일치를 이룰 때, 더는 하느님은 ‘나를 위한 하느님’이 아니요, ‘하느님을 위한 나’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느님을 위한 나’가 되어 있는 이들은 더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게 된다. 심리학자이자 신학자인 제임스 파울러(James Fowler)가 말하는 신앙 성장 발달의 마지막 단계인 보편적인 신앙에 도달한 이가 바로 이러한 사람이다.


‘예수님의 사랑이 된 이들’은 예수님과 같은 마음으로 모든 이를 위한 사랑을 자연스럽게 나누게 된다. 그리고 파울러는 토마스 머튼이나 마더 데레사와 같은 분이 바로 이런 단계의 신앙에 도달하였다고 주장한다.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 바라보는 보편적 사랑


그럼 어떻게 하면 이 보편적인 신앙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일까? 머튼은 무엇보다 예수님의 고독으로 들어가 그분과 일치하라고 권고한다. “항상 홀로 있는 이 내면의 ‘나’는 항상 보편적입니다.


그래서 이 가장 깊은 ‘나’ 안에서 저 자신의 고독은 다른 모든 사람의 고독과 하느님의 고독과 만납니다…. 이러한 ‘나’는 내 안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그리고 그분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 안에 살게 됩니다”(「논쟁점」, 207).

우리 안에 살고 계신 예수님의 고독을 만날 때 우리는 그분의 사랑도 동시에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나는 그분의 보편적인 사랑의 도구가 된다.

보편적인 사랑을 한다고 해서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인 사랑을 한다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체적인 우리 삶 속에 함께 하신다.


쉽게 말해 영성 생활을 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과 책임을 외면하고 “주님, 주님!” 한다고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영적으로 깨어나고 성장한 이들은 주어진 현실에 더 충실하며 지금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고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머튼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적인 삶이 비현실성으로 빠지는 것보다 더 큰 재앙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삶은 외적인 실재와 초월적인 실재와의 생명력 있는 관계에 의해 우리 안에서 유지되고 자양분을 얻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이 비실재에 의존하여 살아갈 때, 그 삶은 굶주려 고갈될 것이며, 결국 죽고 말 것입니다….


우리를 진정한 삶으로 들어가게 하는 죽음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전적 헌신과 관련된 우리 자신을 완전한 선물로 바치는 것입니다.”(「고독 속의 명상」17)



▲ 박재찬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부산 분도 명상의 집 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