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의 말씀은 인간 존재 깊은 곳에 있는 질문을 끌어올립니다. 그 질문은 다름 아닌, 바로 "누구십니까?"(요한 21,12)입니다.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다"(요한 21,4).
예수님의 부재 상태에서 제자들은 생업으로 돌아가 배를 탑니다. 그런데 밤새 애쓰고도 물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은 채 아침을 맞지요. 이미 스승의 죽음으로 실패의 상흔이 깊은 터인데 고기잡이마저 실패의 연속이니 그 착찹함이란 이루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요한 21,7).
주님이시라는 말에 베드로가 당장 움직입니다. 허둥지둥 물에 뛰어들면서도 잊지 않고 옷을 걸치는 걸 보면 스승께 예를 갖추고 싶은 것 같습니다. 베드로의 행동에서 한시라도 먼저 주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읽힙니다.
주님의 부재가 제자들을 얼마나 공허하고 두렵게 했는지, 불안과 외로움, 패배감으로 움츠리게 만들었는지 느껴집니다.
흡사 목자 잃은 양들과 같았을 겁니다. 풍선처럼 부풀었던 기대가 컸던 만큼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상태는 허무하기 그지 없습니다.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요한 21,12).
그들은 예수님의 지시대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게 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루카 5,1-11). 또 빵과 물고기로 군중을 먹이신 일도 또렷하게 남아 있지요. 그러니 오늘 만난 이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이심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제1독서에서는 치유받은 이의 일로 베드로와 요한이 붙잡힙니다. 특히 부활이 없다고 믿는 사두가이들에게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증언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기도 하지요.
"당신들은 무슨 힘으로 누구의 이름으로 그런 일을 하였소?"(사도 4,7)
유다 지도자들, 원로들, 율법 학자들이 묻습니다. 보아하니 단순한 어부에 불과한 두 사도에게서 그런 능력이 나왔을 리는 없고, 그들을 통해 움직이는 다른 힘에 대해 알고 싶은 겁니다. 이 질문은 "그분이 누구십니까?"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이 진짜로 듣고 싶은 대답은 이미 그들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두려움의 수면 아래로 은폐한 이름을 그들이 모를 리 없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사도 4,10)
답은 명쾌합니다. 이 이름 밖에는 아무 대가 없이 이런 기적을 일으킬 존재가 없습니다. 무상의 은총으로 조건 없이 구원을 베푸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뿐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요한 21,13).
이스라엘은 목자이신 주님을 "상을 차려 주시는 분"(시편 23,5 참조)으로 노래합니다. 밤새 지친 제자들을 위해 이 새벽에 손수 빵과 물고기를 구워 건네시는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참된 목자이십니다.
빵은 당신 몸이고, 물고기(익투스)는 박해 받는 그리스도인들 간에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은밀한 표상으로 초대교회 때부터 전해졌지요.
예수님은 빵도 주시고 물고기도 주시면서 당신을 주고 또 주십니다. 형체가 다 없어질 때까지 아낌없이 다 내어 주십니다.
부활은 어쩌면 당신이 온전히 비워질 때까지 다 내어주시고 빈 무덤이 되신 예수님의 고유한 현존 방식일 겁니다. 이런 예수님 앞에서 누구도 "누구십니까?" 하고 물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영적인 삶을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요. '주님의 현존과 부재의 리듬 안에서 파도 타기'라 하고 싶습니다.
주님을 잃은 공허감이 큰 만큼 그분을 만나려는 걸음도 빨라지겠지요. 그분께 달려가는데 체면도 위선도 거추장스럽습니다. 그리움이 컸으니 해후의 갈망도 절실합니다. 허둥지둥 주님을 향해 호수에 뛰어드는 베드로가 남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부재도 주님의 현존 방식 중 하나입니다. 자상히 상을 차려주시고 빵을 건네시는 것 못지 않은, 그분다운 동행 방식입니다. 그분은 없는 듯 함께하고 계시지요. 그러니 벗님! 두려워 말고 우리 담담히 나아갑시다.
그분이 계시지 않는 것 같은 공허와 어둠 속에서도, 충만한 사랑으로 우리를 가득 채워주실 때에도 변함없이 "당신 백성을 안전하게 이끄시는"(입당송) 주님이시니까요.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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