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0년 4월 18일 부활 팔일 축제 토요일

dariaofs 2020. 4. 18. 05:28



오늘 미사의 말씀은 예수님 부활에 대한 믿음을 촉구합니다.

"나타나셨다는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마르 16,11).
"그들의 말도 믿지 않았다"(마르 16,13).

예수님 곁에 머물며 직접 가르침을 듣고 때로는 파견되어 주님의 일을 수행하기까지 했던 소위 엘리트 그룹 열한 제자들이 영 면이 서지 않네요. 예수님 생전에 수난과 부활 예고를 여러 차례 들었건만, 좀처럼 부활 소식을 믿지 못하니 말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게 맞다면 마리아 막달레나나 다른 두 제자에게가 아니라, 그래도 자기들에게 먼저 나타나셔야 한다고 생각한 걸까요.


그들의 완고한 불신 안에는 정예부대 제자단의 우월감과 주님과 끝까지 함께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구겨진 자존심도 뒤엉켜 있는 듯 보입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마침내 열한 제자에게 예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시지요. 하지만 꾸짖음도 잠시, 곧바로 그들을 파견하십니다. 주님의 꾸짖음은 실망이나 단죄, 영원한 절연이 아니라 깨우쳐 주시려는 가르침의 한 방식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아직도 부활을 믿지 못하는 이들을 뭘 어떻게 믿고 파견하시는 걸까요? 그들의 신앙은 아직 검증되지 못한 상태인데도 말입니다.

제1독서에는 유다 지도자들, 원로들, 율법 학자들에게 신문 당하는 베드로와 요한이 등장합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베푼 좋은 일 때문이지요.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사도 4,20).

사도들의 변화된 모습이 보이십니까? 그들은 겉으로만이 아니라 속부터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제대로 믿지도 못하는 부적격자 상태에서 "감히" 온 세상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도록 파견을 받은 그들은 자기들의 믿음 수준과 스승의 믿음이 완전히 다른 차원임을 절감합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아무리 좋은 일을 보여 주고 그분의 가르침을 전해도 자기들을 불신하고 배척하는 세상 앞에서 자기들의 믿음이 어떠했는지를 떠올리며 인내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제자들은 "무식하고 평범한"(사도 4,13) 자기들의 복음 선포를 들으면서도 기꺼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받아들이는 이들 앞에서 무한한 겸손과 존경을 품게 될 것입니다.


믿지 못했던 자기들보다 백 배 천 배 나은 그들 앞에서 겸손해지고 낮아지게 될 것입니다.

부활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주님의 선택입니다. 특출난 인성도 충직한 신앙도 제대로 갖추지 못해 한없이 부족한 상태인 우리에게 주님께서 모험을 감행하시는 겁니다.


우리는 그분을 제대로 믿지 못하지만 그분은 우리를 진심으로 믿으시기 때문이지요.

우리를 향한 주님의 믿음이 기적을 일으킵니다. 도망치고 외면하고 미지근하던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 자체가 불구자를 일으킨 것 이상의 기적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그래서 더 낮아지고 더 겸손해지며 더 인내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벗님! 부활 축제가 무르익어 갑니다. 부족한 죄인인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면서" 부활의 증인으로 변모할 때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서 연장되고 완성되는 것이지요.


우리 영혼 깊숙한 곳에서 울려나오는 "알렐루야"를 선포하지 않을 수 없으니 우리 역시 부활의 사람입니다. 부활의 증인인 벗님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