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을 촉구합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요한 14,1).
우리는 때때로 마음이 산란해지는 것을 체험합니다.
예수님도 수난을 앞두시고 겟세마니에서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마르 14,34)이라고 토로하신 적이 있으시지요. 마음의 산란함은 보통의 인간 삶에서도 그렇지만 영적 여정에서도 피할 수 없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고대의 관상가들, 은수자들은 마음이 완전히 평화롭고 평정을 이룬 상태인 "아파테이아(apatheia)"를 추구하며 기도와 수행에 전념했지요.
"믿음"
예수님께서 산란한 마음에 특효약으로 믿음을 제시하십니다. 당신을 믿고, 당신을 보내신 하느님을 믿음으로써 산란함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아파테이아"는 덕의 토양 위에 굳건히 서서 욕정이나 정념에 동요하지 않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믿음의 덕은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단단한 토양이 되어 줍니다.
"믿어라"(요한 14,11).
예수님은 줄곧 제자들에게 '아버지와 당신이 하나이고, 서로 안에 머무르시며, 당신의 일이 곧 아버지 뜻의 실현'임을 밝히시지만, 다 알아듣지 못하는 제자들은 엉뚱한 질문과 청원을 던집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지치지 않고 '믿으라'고 반복해 말씀하시지요.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요한 14,12).
그동안 제자들은 예수님 곁에서 그분을 보고 듣고 만졌지만, 머지않아 기억과 믿음으로 홀로서야 할 때가 올 겁니다.
그때는 말씀을 선포하고 아버지 뜻을 실행하셨던 예수님의 일을 그들도 하게 될 것입니다. 몇 차례 선교 여행에서 실습한 바를 직접, 책임을 가지고 수행해야 하겠지요. 그때 믿음이 그들을 지탱해줄 것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교회의 태동기에 일어난 갈등과, 이를 풀어나가는 사도들의 지혜가 펼쳐집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식탁 봉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사도 6,2).
교회가 이제 막 꼴을 갖춰가는 초기다 보니 아직 제도적으로 임무가 분화되거나 직무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기에, 백성들이 권한을 인정하는 일부에게 과도한 양의 봉사가 부여될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사실 식탁 봉사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일 때문에 하느님 말씀을 제쳐 놓게 되는 상황이 문제가 될 수 있겠지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인 ...를 뽑아 사도들 앞에 세웠다"(사도 6,5).
사도들은 공동체의 짐을 나누어질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사도 6,3)들을 뽑자고 제안합니다.
그래서 뽑힌 일곱 명의 봉사자는 무엇보다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이들이었습니다. 믿음은 지상 생활을 마치고 하늘에 오르신 예수님을 이어받아 이 세상에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헌신할 협력자들의 기본 자질입니다.
"우리는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습니다"(사도 6,4).
믿음과 성령으로 무장하고 초대교회의 행정과 봉사에 투신할 동료들 덕분에 이제 사도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더욱 올바로 풍부히 살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공동체 안의 형제자매, 이웃, 동료들이 저마다의 개인 소명과 은사를 꽃피우게 돕는 토양이 됩니다.
제2독서에서는 반석인 베드로의 편지답게 믿음을 가리키는 "돌"의 심상이 반복되어 등장합니다.
"믿는 여러분에게는 이 돌이 값진 것입니다"(1베드 2,7).
예수님은 사람들에게는 버림 받았지만 하느님께 선택된 값진 모퉁잇돌이십니다. 단, 믿는 이들에게만 그렇습니다. 믿지 않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애석하게도 "차여 넘어지게 하는 돌, 걸려 비틀거리게 하는 바위"(1베드 2,8), 즉 걸림돌일 뿐입니다.
믿음은 논리나 감성을 뛰어넘는 은총이고 신비입니다. 믿음으로 초대받은 우리는 응답한만큼 자신의 소명을 충만히 살아내게 되고, 또한 동시에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신분이 어떠하건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치는 거룩한 사제단"(1베드 2,5)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누구를 믿습니까? 오늘 잠시 시간을 내어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을 소리내어 기도로 바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믿는 우리는 믿는 만큼 행복합니다.
어떤 처지에 있든 믿음이 우리 마음을 산란함에서 끌어내어 평화와 평정의 상태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믿는 벗님을 축복합니다. 벗님의 믿음을 축하하며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기도를 올립니다.
"아무것도 벗님을 산란케 하지 말며
아무것도 벗님을 놀라게 하지 말지니
모든 것은 다 지나가고
하느님만 불변하시기 때문이지요.
인내하면 다 얻게 되지요.
하느님을 소유한 이는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아요. 하느님만으로 충분해요!
하느님을 뵙는 것이 벗님의 바램이고,
그분을 잃어버리는 것이 벗님의 두려움이며,
그분을 소유하지 못하는 것이 벗님의 고통이고, 벗님을 그분께 데려다 줄 수 있는 것이 벗님의 기쁨이길 빌어요.
그러면 벗님은 큰 평화 안에 살게 될 겁니다." 아멘.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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