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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머튼의 영성 배우기] 46. 머튼의 마리아 영성 <1>

dariaofs 2020. 6. 1. 01:50

“성모님께서 제 마음을 모두 가지셨습니다”

 

▲ 그림=하삼두 스테파노




우리는 성모님에 대해 다양한 종류의 호칭과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원죄 없으신 탄생’, ‘평생 동정’, ‘미혼모’, ‘과부’, ‘성모 승천’, ‘그리스도의 어머니’, ‘여왕’, ‘발현과 기적’, ‘전구자’, ‘바다의 별’, ‘평화의 모후’, ‘천상의 모후’ 등. 토마스 머튼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성모님에 대한 이미지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주님의 종’이었다. 왜 그가 ‘주님의 종’으로 성모님을 강조한 것일까? 자신을 ‘주님의 종’으로 묘사한 성모님을 통해 머튼은 어떤 깨달음을 얻은 것일까?


1940년 ‘고독의 성모 성당’에서 자신 봉헌

사실 머튼이 세례를 받은 1938년 즈음에 그에게는 성모 신심이 별로 없었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 「칠층산」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내 영성 생활 첫해에 또 한 가지 큰 결함은 하느님의 모친에 대한 신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교회에서 성모에 관하여 가르치는 교리를 믿었고 기도할 때면 성모송을 외웠다….

 

사람들은 성모님이 어떤 분이신지 모르기 때문에 복되신 동정녀의 엄청난 힘을 깨닫지 못한다…. 당시 나는 성모님을 믿기는 하였으나 그분은 내 삶에서 아름다운 신화보다 약간 더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부족했던 성모 신심은 1940년 쿠바의 성모 성지 순례를 하면서 점점 채워지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 어머님을 일찍 여의고 따뜻한 모성애를 느끼지 못하고 자란 그에게 성모님은 이 순례 중에 그 마음에 깊이 자리하게 되었고, 쿠바의 ‘고독의 성모 성당’에서 성모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기도를 바치게 된다.

“성모님, 제 마음을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만일 당신이 저에게 이 사제직을 얻어 주신다면, 저는 당신의 사랑으로써 제게 이 큰 은총을 주신 성삼위께 감사하는 뜻으로 첫 미사가 당신의 손을 통해 당신을 위해 봉헌되도록 하겠습니다.” (「칠층산」)

사제직을 향한 그의 갈망은 성모님께 자신을 봉헌함으로써 점점 성장하게 되었고,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입회해서도 자신과 함께 수도원에 거하시며 자신을 돌보시는 분도 바로 성모님이시라고 여겼다.

 

1947년 ‘복되신 동정 마리아 방문 축일’에 기록한 일기에서 머튼은 축복받은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오늘 자신을 방문하였고, 수도생활을 할 수 있는 건강과 빛을 자신에게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1949년 부제품을 받은 후에도 “성모님께서 제 마음을 모두 가지셨습니다. 세상에 그리스도께서 주셨던 복음서를 성모님께서 저에게 주셨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1950년대 반복되는 성소의 위기의 한가운데에서 머튼은 성모님께 모든 희망을 두는 기도를 바친다.

 

“성모님 안에 희망을 둡니다. 오늘 미사에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만약 제가 당신을 가졌다면 다른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독을 향한 이 갈망이 당신을 향한 저의 사랑의 부분이고 저를 향한 당신의 의지라면 문제가 됩니다.”

 

1965년 은둔소에서 생활을 시작할 때 그 은둔처를 성모님께 봉헌하며 ‘가르멜의 성모’라 이름 짓고 난 다음, “나는 성모님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분은 이곳에 계신다”라고 자신의 성모 신심을 표현했다.


성모님의 완벽한 겸손과 순종에 매료


이처럼 머튼은 쿠바 성지 순례 이후부터 수도생활을 마칠 때까지 늘 성모님과 함께 살았으며 성모님께 자신을 온전히 의탁하였다.

 

그에게 있어 성모님은 어머니요 연인이었으며, 관상생활의 스승이었다. 성모님의 아들로서 그녀에게 위로를 받고 신뢰를 드렸으며, 사랑하는 여인인 마리아에게 순수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심지어 간호사 M과의 사랑의 관계를 회고하며, 그 사랑은 순수하고 조건없는 사랑의 체험이었고 그래서 오히려 성모님께 감사드린다고 고백한다.


성모님에 대한 신심이 깊어 갈수록 머튼에게 그녀는 관상의 모델이 되었다. 초기 머튼에게 성모님은 모든 은총의 중재자였다. 그래서 성모님께 전구의 기도를 바쳐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후기 머튼에게 성모님은 ‘주님의 종’으로서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신 분, 자신을 온전히 비우시어 주님의 뜻 순종하신 분, 드러나지 않는 감추어진 삶을 사신 분, 아들 예수님의 고통에 동참하신 분이셨다.

 

성모님의 단순한 관상적 삶에 대해 머튼은 「논쟁점」 (Disputed Questions)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성모님은 인간과 모든 그 일상 안에서, 어떤 드라마틱하거나 굉장한 행복감 없이 그녀의 삶의 방식 안에서 단순하고 겸손하게 그녀를 따르는 사람들 가까이에 계신다.”

 

관상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머튼은 성모님의 생애와 예수님을 향한 태도 안에서 하느님의 도구로서의 역할보다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향한 사랑을 받아들인 성모님의 완벽한 겸손과 순종에 매료되었다.

 

드러나지 않게 자신을 감추고 온전히 예수님과의 일치의 삶을 사신 성모님과 같이 자신도 자신을 온전히 비우는 관상의 삶을 살고자 했다.



▲ 박재찬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부산 분도 명상의 집 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