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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생태 영성, 하느님의 눈짓] 9. 사순절과 회심

dariaofs 2021. 3. 15. 00:15

강원도의 작은 공소에서 어린 시절 신앙을 키웠던 저는 지금도 사순절이 되면 긴장이 됩니다. 40일을 빠짐없이 성로신공(십자가의 길)을 위해 매일 성당에 가야 했던 저와 친구들은 작은 경당을 한 바퀴 도는 기도가 지루하기만 했습니다. 예수님의 고통에 대한 묵상보다 지금 몇 번째 장소를 지나는지만 세었던 것 같습니다. 신부님이 오시는 주일에 어린아이들이 고해성사 줄을 길게 차지하게 되자 공소 회장님이 그냥 미사 보라고 쫓기도 하셨던 동심의 시간이 미소로 떠오릅니다.

교회는 사순절이 되면 회개하는 마음으로 절제하는 생활을 할 것을 권합니다. 언제부턴가 제 마음은 사순절 동안 살도 빼고 콜레스테롤도 낮추면서 담배도 끊어서 건강을 회복하는 시기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올해의 사순절에도 건강을 돌보겠다는 생각이 들다가 문득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수난을 기억하며 죄로부터 마음을 돌리는 회개의 소중한 시기라는 영적 의미는 탈색되고, 단식과 금육, 절제라는 형식만 남아서 사순절 동안 제 몸 챙길 엉뚱한 생각만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 시대에 예수님은 어떤 고난 가운데 계신지 묵상해 봅니다. 천국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세상에 물질로 육화하신 하느님으로서 인간이 쓰고 버린 폐기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와 함께 아파하고 계신 것이 생각납니다. 코로나로 인해 택배가 늘어난 요즈음 집안은 포장 쓰레기 홍수를 맞고 있습니다.

 

그것은 갑자기 소비가 늘어서라기보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쓰고 버리는 문화’의 부산물들이 내 집 안으로 들어와 우리 눈에 보이게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금 이 상황의 맥락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어떤 회개를 원하시는지 생각해 봅니다.

‘회개’에 앞서 ‘회심’이라는 단어가 다가옵니다. 캐나다의 신학자 버나드 로너간(1904~1984)은 삶의 진정한 변화를 위하여 세 종류의 회심이 필요하다고 설명합니다. 무엇인가를 항상 소비하도록 재촉하는 문화가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되는 것은 변화를 위한 시작일 수 있습니다.

 

관심을 두고 마음을 열어 잘못된 이해나 비합리적인 편견, 어리석은 고집에서 벗어나 합리성에 근거한 책임감 있는 이해로 나가는 것을 ‘지성적 회심’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일 뿐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과도한 소비를 의식적으로 줄이면서 건강한 지구를 위하여 절제하는 행동을 선택해간다면, 그것은 나 보다 공동체의 ‘선’을 우선하는 ‘도덕적 회심’에 도달한 것이라고 합니다.

 

더 나아가 지구와 모든 자연을 경이롭게 바라보는 마음을 통해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마음을 경험하며 일치를 느낀다면, 역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구와 자연을 사랑하는 애덕으로 흘러넘친다면, 그것은 은총으로 얻게 되는 ‘영적 회심’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회심은 순간의 반성이나 깨우침이라기보다 온전한 회개를 향하여 일상에서 지속해가는 진정성을 갖는 실천의 과정일 것입니다.

오늘도 재활용 통에 가득 찬 종이와 플라스틱을 걱정스레 쳐다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생태적 회개’란 삶의 습관을 변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십니다. 진정한 생태적 회개란 비록 쓰레기일지라도 그것을 보면서 주님을 떠올려 책임감을 느끼는 내면의 회심과 그 영성이 몸으로 체화되어 돌보는 마음으로 흘러넘치기까지의 진정한 변화 과정일 것입니다.

 

아직 저에겐 길이 멀어 보입니다. 하지만 십자가에 죽기까지 세상을 사랑하신 주님의 은총이 회심을 찾는 저의 회개에 손 내밀어 주시리라 믿고 의탁하며 사순 시기를 보내려 합니다.

하늘땅물벗 홍태희(스테파노) 반석벗(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