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이 시작하는 때와 부활절이 같은 절기에 있다는 것이 새삼스레 마음을 환하게 합니다. “부활 축하드립니다!”라는 인사를 나누며 파스카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히브리 민족이 홍해를 건너 탈출하여 해방된 사건을 기념하는 유다인들의 파스카는 민족의 대이동과 관련이 있습니다.
“내가 이집트를 칠 때, 그 피를 보고 너희만은 거르고 지나가겠다.”(탈출 12,13)라고 하신 말씀에서 유래된 ‘파스카’(pass-over)는 구원을 이끄시는 하느님과 그에 응답한 인간이 함께 만들어낸 사건입니다. 복음은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파스카의 희생양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1코린 5,7)
그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이란 단지 유다인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온 인류와 창조물 전체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새로운 역동으로서의 파스카로 이해하게 합니다. 주님의 부활이 단지 2000년 전에 있었던 하나의 사건으로만 기억되지 않으려면, 우리가 기념하는 파스카란 오늘의 일상의 삶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바이러스가 세상을 정지시켰다고 해도 오늘도 새벽부터 지하철과 도로는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우리 시대의 많은 사람처럼 엔지니어의 길을 택했던 나는 가정을 이루고 식구들을 보살피던 시절 대부분을 제조업에서 일했습니다.
간혹 일에 지친 때에는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창세 3,19)는 말씀이 야속하기도 했지만, “기도하며 일하라”는 베네딕도 성인의 영성을 따라 내가 하는 일이 생계를 넘어 영적으로는 하느님의 창조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찾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일터의 현장은 기계적 효율의 논리가 지배하고 경제적 가치가 의사 결정의 기준이 되는 산업문명에 뒤덮여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것은 사실 일터뿐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 우리의 모든 삶의 방식 안에서 당연한 것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야훼 하느님은 히브리 민족을 이집트에서 구해내셨지만, 모세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들은 금으로 수송아지 상을 만들어 섬김으로써 하느님을 진노하게 합니다.(탈출 32장) 그들이 풍요의 신인 ‘바알’의 우상을 섬겼듯이 산업문명의 사회는 인간만의 풍요를 향하여 자연을 아랑곳하지 않고 화려하고 장대한 ‘인류 문명’을 향유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전기도 없이 자전거 몇 대뿐이던 마을에 이제는 고층아파트와 자동차, 인터넷이 들어서 문명의 발전이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지금이 그 시절보다 행복한 세상이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면, 인간이 간직해온 ‘진보’(progress)라는 관념은 허구의 신화라고 말한 토마스 베리가 떠오릅니다. 일상의 가치와 신앙의 가치가 별개의 것이 되어 사는 현실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왜곡된 신화가 만들어낸 문명의 문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토마스 베리는 이제라도 파괴적이 된 인간 중심의 산업문명과 작별하고, 자연을 의식하고 함께 공존하는 생태문명으로 전환하는 새로운 파스카의 길만이 인류가 생존 가능한 방법이라고 설득합니다.
다시 탈출기의 파스카를 생각해 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느님의 이끄심에 따라 홍해를 건너 대이동을 하였듯이 인간만을 위한 문명을 떠나 생태적 사회로 향하는 총체적 문명 전환의 물결을 상상합니다. 인간을 위한 효율과 경제 가치보다 자연과 함께하는 생명의 생태적 가치를 먼저 생각하는 문명이라면 공항이나 군기지를 만들겠다고 자연을 뒤집어 놓는 야만은 다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하늘땅물벗 홍태희(스테파노) 반석벗(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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