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133위 시복 국내 심사 마무리, 문서는 이제 시성성으로
▲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시복 예비심사 재판관인 유흥식 주교가 시성성에 보낼 공증 문서들을 확인하고 있다. |
12년 동안 진행된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시복 예비심사가 드디어 막을 내렸다. 이로써 한국 가톨릭교회는 조선 왕조 치하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 추진 국내 예비심사를 마무리 지었다.
시복 추진 대상자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시복 추진 대상자는 조선 왕조 시기인 1785~1879년 사이 순교자들로 순교 사실이 새롭게 연구되고 교회 안에서 현양되어 온 이들이다.
대표적 인물로는 이벽(요한 세례자), 김범우(토마스),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권철신(암브로시오), 이승훈(베드로),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 황사영(알렉시오) 등이다.
또 신앙 고백에 대한 기록 미비와 배교 논란 등 여러 이유로 추진 대상에서 빠졌던 순교자들, 가정 박해로 인한 순교자들, 1866년 병인박해 때 ‘선참후계령’(先斬後啓令: 먼저 처형한 뒤 나중에 보고하라는 지시)으로 지방 관아에서 비밀리에 처형당하여 기록 부족으로 시복 추진이 미루어져 왔던 순교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추진 과정
12년간 진행된 조선 왕조 치하 순교자들에 대한 제2차 시복 추진은 총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2009년부터 2012년까지 4년간 진행된 ‘시복 추진 대상자 선정 기간’과 둘째,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진행된 ‘시복 대상자에 대한 역사 및 고문서 전문가들의 조사 연구 기간’ 셋째,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시복 예비심사 기간이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103위 성인과 124위 복자를 배출했다. 하지만 교회 창립 초기 순교한 신앙 선조들의 시복ㆍ시성을 이뤄내지 못했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2009년 주교회의 가을 정기총회에서 ‘조선 왕조 치하의 순교자들’에 대한 제2차 시복 추진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2011년 2월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는 시복 추진 대상자 선정위원회를 조직해 교구별 시복 대상자를 선정했다. 이어 주교회의는 2013년 봄 정기총회에서 대표 순교자를 선정해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로 정해 교황청 시성성에 보고하면서 시복 추진 업무를 본격화했다.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청구인이 돼 2013년 교황청 시성 성에 예비 심사 관할권을 마산교구에 허가해 달라고 요청함으로써 시복 추진 법적 절차를 시작했다.
시성성은 곧바로 그해 4월 교령으로 시복 추진을 허가했다. 이에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는 역사 및 고문서 전문가 위원회를 구성해 10차례의 회의를 진행했다. 또 7차례의 실무자 회의와 8차례의 교구 담당자 회의를 거쳐 하느님의 종 133위의 영문 약전과 함께 ‘장애 없음’ 교령을 2015년 12월 21일 시성성에 보냈다.
시성성은 2016년 10월 5일 ‘장애 없음’ 교령을 선포했다. 교령을 접수한 마산교구장 배기현 주교는 시성 절차법에 따라 관할권을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유흥식 주교에게 위임했고, 유 주교는 이 안건의 재판관으로 2017년 2월 22일 예비 심사 법정을 개정했다.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에 대한 시복 예비심사는 재판관 대리 박동균 신부와 검찰관 최인각 신부, 공증관 연숙진씨로 시복 소송의 재판진을 구성하고
2021년 2월 26일까지 총 33회기의 법정을 열었다. 시복 소송 법정은 하느님의 종 133위의 생애, 순교 사실과 순교 명성에 관해 역사와 고문서 전문가, 14개 교구 시복 추진 담당자 22명을 증인으로 출석시켜 증언을 듣고 14개 교구에 대한 현장 조사를 시행,
하느님의 종들에 대한 ‘공적 경배 없음’을 확인했다. 또 소송 기록 문서 검열, 청원인 보충 증거 자료 제출, 번역물 제출 등 시복 안건에 대한 소송 기록물을 시성성에 보내기 위한 일련의 예비 심사 과정을 모두 마쳤다. 그리고 2021년 3월 25일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시복 안건 예비심사 종료 회기를 열고 국내 심사를 마무리했다.
의의 및 성과
한국 교회는 하느님의 종 133위는 예비심사 회기 종료로 조선 왕조 치하의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 추진을 마무리하게 됐다. 이번 시복 추진 대상에는 한국 교회 창립 지도자들이 대거 포함돼 한국 가톨릭교회의 뿌리를 찾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 시복 대상자는 1925년 기해ㆍ병오박해 순교자 79위 시복, 1968년 병인박해 순교자 24위 시복, 2014년 조선 왕조 치하 순교자 124위 시복 과정에서 세 차례 빠졌던 이들이다.
이들이 세 차례 시복 대상 명단에서 빠진 가장 큰 이유는 신앙 고백에 대한 기록 미비와 배교 논란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번 예비심사는 무엇보다 시복 대상자들에 대한 객관적 순교 사실을 규명하는 데 모든 역량을 쏟았다. 서울대교구를 비롯한 14개 교구 시복 추진 담당 사제와 역사 및 고문서 전문가들이 이들에 관한 자료 조사와 순교 사실을 증거할 현장 조사에 헌신했다.
또 이들의 시복 예비심사를 잘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순교자’와 ‘순교’에 대한 보편 교회에 신학적 인식이 한몫했다 할 수 있다. 교황청 시성성과 보편 교회는 최근 시복 안건에서 ‘순교’와 ‘순교자’의 개념을 넓게 해석하고, ‘박해’와 ‘박해자’를 넓은 의미에서 규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133위 시복 예비심사는 이 노력이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시복 예비심사 재판관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유흥식 주교
▲ 유흥식 주교 |
“드디어 하느님의 종 133위에 대한 모든 시복 예비심사 절차를 마무리하고 이들의 시복을 시성성에 청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시복 예비심사 재판관이며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유흥식 주교는 “조선 왕조 치하 순교자들의 국내 시복 심사를 마무리했으니 이젠 우리가 목숨을 바쳐 하느님을 증거한 신앙 선조들을 본받는 삶을 되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분들의 시복이 하루빨리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줄 것”을 신자들에게 당부했다.
유 주교는 “하느님의 종 133위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이 있어 심포지엄과 다른 기회를 통해 역사 사실을 객관적으로 규명하려고 노력했다”면서 “모든 과정은 시성성의 절차에 따라 진행됐다”고 밝혔다.
유 주교는 “성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에 133위 시복 예비심사를 종료하게 된 것은 한국 교회의 큰 기쁨이며 영광”이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한국 교회 신자들이 열렬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기에 머지않아 이분들이 시복의 영광을 누릴 것”이라고 희망했다.
유 주교는 “한국 교회가 더 교회다워지고 회심하여 새로운 교회의 모습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려면 순교자들의 믿음과 삶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면서 “은혜로운 희년에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하느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순교자들처럼 하느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자”고 당부했다.
리길재 기자(가톨릭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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