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지은 죄만 바라보는 신앙
하느님과 건강하지 않은 관계 형성
생명이신 자비로운 분임을 믿어야
고해소에 대해 ‘고해소는 재판소, 고해신부는 재판장, 보속은 형량, 고백하는 신자는 죄수’라는 생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이런 신앙을 ‘자학성 신앙’이라고 합니다.
이런 분들은 매주 고해성사를 보시거나 간혹 심한 분들은 거의 매일 고해소를 찾아오시기도 합니다. 심지어 고해신부가 준 보속의 양이 적다고 다른 신부에게 가서 다시 고해성사를 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고해성사를 볼 때 죄를 몇 번씩이나 지었는지도 고백해서 고해신부를 질리게 합니다.
이렇게 자신이 지은 죄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은 믿음이 없습니다. 믿음이란 하느님이 나의 생명이시고 나의 쉼터이심을 믿는 것인데 죄를 따지는 사람들은 하느님을 자비로운 분으로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분들은 ‘기도는’ 많이 합니다. 그러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가 아닌, 벌을 받지 않기 위한, 하느님의 노여움을 사지 않기 위한 기도를 합니다. 하느님과의 대화라는 기도의 본래 성격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이런 기도를 하는 분들은 하느님을 마치 잔혹한 계부로 만드는 재주가 뛰어납니다. 어떤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다가 갑작스레 비가 와서 옷을 버렸습니다. 비가 오는데도 집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고 ‘아버지가 나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하며 놀이터에서 비를 쫄딱 맞고 있다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요? 모두 그 아버지를 욕할 것입니다.
자학성 신앙인들은 하느님의 노여움을 사지 않기 위해,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늘 좌불안석으로 삽니다. 하느님 눈치를 보는 것을 신앙처럼 여기면서 늘 통회하고 우울한 모습으로 삽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들의 그런 삶이 하느님을 욕보이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은 모릅니다.
건강한 신앙이란 ‘하느님은 아버지, 사제들은 치유자, 고해소는 병원, 신자는 마음의 병을 치유하고자 찾아온 사람들’이라는 관계가 형성된 상태를 말합니다. 만약 내가 하는 기도가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눈치보고 불안해하는 그런 것이라면 나의 신앙생활이 건강한지 여부를 점검해봐야 합니다.
오래전 명동성당에서 판공성사를 주는데 신자들이 많이 오셔서 거의 3시간을 고해소에서 나오질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조용해서 ‘어? 다 끝났나?’하고 문을 열고 나오니 웬걸 긴 줄이 아직도 있는 것입니다.
다시 고해소로 들어가서 고해소 벽 작은 틈으로 누가 없나 들여다보는데 ‘헉!’ 저쪽에서 누군가가 같이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신자분이세요?”라고 물어봤더니 “아닌데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래서 다시 “누구신가요?”하고 물어봤더니 “지나가던 사람입니다” 하세요. 그런데 여긴 어떻게 들어왔냐고 묻자 “밖에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어서 뭐 선물이라도 주는 줄 알고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헐! 판공성사 때면 이런 분들이 가끔씩 찾아옵니다.
홍성남 신부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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