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 구세주 탄생 앞에 하느님 뜻 살핀 성모님처럼
제1독서 민수 6,22-27 / 제2독서 갈라 4,4-7 / 복음 루카 2,16-21
오늘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교회는 431년 에페소 공의회를 통해 ‘천주의 성모’, 곧 ‘하느님의 어머니’(그리스어 ‘테오토코스’, 라틴어 ‘마테르 데이’)라는 칭호를 성모 마리아께 공식적으로 부여했습니다.
성모님을 가리키는 이 경칭(敬稱)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그분의 인격 안에서 하나를 이루고 있다는 신앙의 명제에 근거해 예수 그리스도를 참 하느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분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사건, 곧 구원자이신 주 그리스도의 탄생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 사건을 한 여인을 통한 하느님 아들의 탄생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갈라 4,4)
이는 주님의 천사가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에게 알려준 소식이며(루카 2,12), 목자들이 베들레헴의 마구간에 있던 마리아와 요셉에게 알려준 소식입니다.(루카 2,17)
목자들은 천사들이 하늘로 떠나간 후에 베들레헴으로 가서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를 찾아냈고, 천사에게 전해들은 소식을 마리아와 요셉에게 알려줬습니다.
목자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듣고서 마리아와 요셉은 모두 놀라워했습니다.(루카 2,18) 이 ‘놀람’은 ‘믿음’의 행위와 동일한 의미로 이해할 수는 없으나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반응으로 볼 수 있습니다.
목자들이 천사들에게 전해 듣고 마리아와 요셉에게 전해 준 소식은 분명히 ‘신비스런’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루카복음서 저자는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을 기쁜 소식의 선포자, 그리고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는 신앙인으로 소개합니다.
목자들은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을 알려줬고, 또한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에 대해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했습니다.(루카 2,20)
주님의 천사가 목자들에게 선포한 소식, 이어서 목자들이 마리아와 요셉에게 선포한 소식은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입니다.(루카 2,11)
베들레헴이라고 불리는 다윗 고을에서 태어난 아기, 마리아와 요셉 곁에서 구유에 누워있던 아기에게 ‘예수’라는 이름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루카 2,21)
이로써 하느님께서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란 고을에서 마리아에게 전달한 예언(루카 1,31)이 완성됐습니다.
구유에 누워있던 아기는 주님이신 그리스도로서 온 백성을 구원하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루카 1,32)이시며,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의 자손으로서 영원히 하느님의 나라를 다스리실 임금이십니다. 이 기쁜 소식이 오늘 우리에게 선포되고 있습니다.
구원을 위한 기쁜 소식은 이미 구약시대에 바빌론 유배로 고통을 받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됐습니다.
민수기 저자는 하느님의 분노와 저주로 버림받았다는 절망에 빠진 백성들에게 광야의 여정에서 ‘늘 함께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강조함으로써 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줬습니다.
제1독서에서 소개되는 하느님은 호의와 자비를 베푸는 분이시며, 평화와 구원을 주는 분이십니다.
사제(레위인)의 축복 양식(민수 6,22-27)에서 소개되는 하느님께서는 시나이 산에서 맺은 이스라엘 백성과의 계약을 상기시키시며 계약 안에 담겨 있는 약속과 의무를 성실하게 실천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계약의 성실한 이행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한 방법이며, 동시에 하느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기 위한 전제 조건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복을 내리시는 하느님께서는 온 백성에게도 자비를 베푸시고 복을 내리실 것입니다.(화답송: 시편 67 참조)
유배의 고통에 신음하며 상실감에 빠져 좌절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축복에 대한 약속이 ‘기쁜 소식’이 될 수 있었다면, ‘예수’라는 아기의 탄생은 어떻게 ‘기쁜 소식’이 될 수 있을까요?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에 따르면, 우리는 하느님 아들의 탄생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됐습니다.
여인을 통한 출생으로 율법 아래 놓이게 되신 분이 율법 아래 있는 이들을 속량하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시려고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고, 이를 통해 우리는 율법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존재가 됐습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됐고, 하느님의 상속자가 됐습니다. 상속자는 주인에게 종속돼 자유가 없는 종과는 다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아버지가 소유한 모든 것을 물려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됐으니, 이는 하느님을 믿는 이들에게 분명 ‘기쁜 소식’이 될 것입니다.
오늘 선포되는 ‘기쁜 소식’을 듣는 우리는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요?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마리아는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가 됩니다.
루카복음서 저자는 마리아가 목자들이 알려준 것들, 곧 구세주 예수의 탄생에 대한 소식을 듣고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했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루카 2,19)
신비스러운 초자연적 사건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마리아의 고민이 엿보입니다.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이 사건을 통해 무엇을 계획하고 계시는지 면밀하게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느님의 의도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숙고하며 이를 마음 안에 소중히 간직하는 마리아의 모습은 신앙인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목자들, 마리아, 요셉과 함께 구유에 누워계신 구원자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오늘 이 시간,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 예수님의 탄생을 통해 무엇을 원하고 계실까요?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보고, 그분의 말씀을 마음에 소중히 간직하면서 우리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봅시다.
※ 정진만 신부는 2006년 사제품을 받고, 독일 보훔 대학교에서 ‘마태오복음’을 주제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수원교구 복음화국 부국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로서 ‘공관복음’, ‘가톨릭 서간’, ‘요한계문헌’, ‘성경 희랍어’를 가르치고 있다.
정진만 안젤로 신부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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