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 새해다. 새해라고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는 않지만, 이제까지 해 왔던 일들은 게으르지 않게 그리고 앞으로 새롭게 해야 할 일들은 신중하게 할 수 있기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며 기도하는 것이 새해의 첫 일과다.
작년, 첫 주임 소임을 맡아 동두천본당 공동체에 오던 날이 떠오른다.
‘60년이 넘는 긴 역사를 지닌 본당에서 이제 겨우 7년차인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부담 반, ‘본당 역사가 탄탄하니 열심히만 하면 많이 배울 수 있을 거야!’ 하는 기대 반. 결론만 말하자면, 동두천본당 공동체에서 보낸 지난 1년은 ‘주는 것은 없이 받기만 하여 송구하기 이를 데 없는’ 시간이었다.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감동시킨 것은 오랜 시간 알아온 서로를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이었다. 요즘은 찾아보기 어려운, “저 집에 숟가락, 젓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다 알아요!” 하는 이런 가족 같은 분위기는 정말이지 하느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었다.
사실 우리 본당은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다. 2012년 이주민, 난민 신자들을 위한 ‘동두천 국제 가톨릭 공동체’(Dongducheon International Catholic Community, 약칭 DICC)가 우리 본당에 기반을 두고 탄생한 덕분이다.
사실 우리 본당은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다. 2012년 이주민, 난민 신자들을 위한 ‘동두천 국제 가톨릭 공동체’(Dongducheon International Catholic Community, 약칭 DICC)가 우리 본당에 기반을 두고 탄생한 덕분이다.
미국에서 한 성당을 주일에만 잠시 빌려 한인공동체가 미사를 봉헌하는 것처럼, DICC 역시 주일 오후에 미사를 봉헌하고 공동체만의 행사를 진행하기도 해 왔다.
하지만 동두천본당 공동체와 DICC의 관계는 일반적인 본당·민족 공동체의 관계보다는 좀 더 끈끈하다. 보통의 주일은 따로 미사를 봉헌하지만 주님 부활 대축일과 주님 성탄 대축일은 함께 본당 대청소도 하고 미사도 봉헌한다.
하지만 동두천본당 공동체와 DICC의 관계는 일반적인 본당·민족 공동체의 관계보다는 좀 더 끈끈하다. 보통의 주일은 따로 미사를 봉헌하지만 주님 부활 대축일과 주님 성탄 대축일은 함께 본당 대청소도 하고 미사도 봉헌한다.
본당 공동체의 큰 행사에 DICC가 초대받고, 반대로 DICC의 큰 행사에 본당 신자들이 초대받는다.
국적도 언어도 다른 두 공동체이지만 손짓, 발짓으로 대화를 나누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어 온 시간이 10년을 넘다 보니, 곁에서 지켜보기엔 ‘척하면 척’하는 경지에 오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문화 차이에서 오는 갈등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문화 차이에서 오는 갈등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대륙 출신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동두천 지역의 이주민들은 한국말과 한국 문화를 배워 사회 속에 스며들기보다는 자신들의 말과 문화를 지키며 이주민 공동체 안에만 머무는 것을 택한다.
이는 자신들의 선택이기도 하지만 한국사회가 강요한 것이기도 하다.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소수를 십장으로 세워 명령을 하달하고 장시간 노동을 하게 하니, 이들이 한국말 수업을 들으러 갈 길이 막혀 버린다.
상황이 이러니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동포들과 고국의 음식을 먹으며 평안을 찾는 그들을 일방적으로 탓할 수만도 없는 노릇.
곁에서 보는 내가 다 답답하건만, 이미 60여 년 전부터 미군들을 상대해 왔던 본당 가족들은 답답함을 토로하면서도 그들을 단단히 껴안는다.
말 설고 물 선 곳에 와 살아가는 것이 어찌 쉽겠냐며, 오늘도 우리가 옹졸함 속에 사랑하지 못하는 죄를 지었다며 웃음을 짓고 본당을 나서는 것이다.
사람들 사이의 평화는 우리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껴안으며 서로를 사랑할 때에만 가능하다. 머리로는 참 당연하게 생각되지만 마음으로는 그만큼 느껴지지 않으며 삶으로는 더더욱 살아지지 않는 것이 ‘있는 그대로의 사랑’인 듯하다.
사람들 사이의 평화는 우리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껴안으며 서로를 사랑할 때에만 가능하다. 머리로는 참 당연하게 생각되지만 마음으로는 그만큼 느껴지지 않으며 삶으로는 더더욱 살아지지 않는 것이 ‘있는 그대로의 사랑’인 듯하다.
내 앞의 내 가족을, 친구를, 이주민을, 심지어 나와 대척점에 있는 사람까지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하느님 사랑에 더 닮은 모습이며 이미 와 있는 하느님 나라의 모습일까.
하느님의 어머니를 기리는 새해의 첫날, 평화의 모후이신 그분께 우리 사이에 평화를 가져올 사랑이 가득하게 해 주십사 전구를 청하면 좋겠다. 올 한 해, 우리 모두 더 많이, 더 깊게 사랑하는 한 해 보내길.
※이종원(바오로) 신부는 2017년 의정부교구에서 사제품을 받고 금촌2동·덕소·화정동본당 부주임을 거쳐 2023년부터 동두천본당 주임으로 일하고 있다. 현재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과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운영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이종원 바오로 신부
의정부교구 동두천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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