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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이야기] (17)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dariaofs 2013. 9. 23. 10:05

섬기는 메시아, 십자가의 메시아


      작성자 : 조규만 주교




 ▨ 예수님은 누구신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믿는 일도 어렵지만, 한 인간으로 태어나 우리와 함께했던 나자렛 예수님을 하느님 아들로 믿는 일은 더욱 어렵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내는 방법은 제자들이 기록한 복음서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물론 복음서는 역사서도 아니요, 예수님 전기나 자서전도 아니다. 제자들 신앙이 깃든 진술서다. 4복음서를 토대로 예수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예수님은 그가 선언한 하느님 나라 메시지와 세례 운동을 이어 받아 백성들과 더불어 그들 속에 살며 공생활을 하셨다. 예수님은 백성들에 대한 그의 처신에서 새로움을 보여주셨다.

 

죄인들, 종교적으로 부정한 사람들과 사귀며 유다교 안식일 계명을 위반하고 정결례법을 폐기했다. '보라, 이 사람은 먹기를 탐하고 술을 좋아하고, 세리들과 죄인들의 친구'라는 비웃음과 조롱의 소문이 떠돌 정도였다. 예수님에게 하느님은 사람들의 하느님, 곧 모든 사람들의 하느님이시기에 예수님은 세리들과도 함께하셨다.


 율법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초연하고 자유로운 태도를 보이셨다. 복음서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은 율법 실천 문제와 관련해 당대 율법학자들에게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유다교 지도자들과 충돌을 일으켰다. 예수님은 율법을 지키는 데 '인간의 완고함'이나 오해가 있다면 이를 가차 없이 문제 삼을 만큼 철저히 하느님 중심으로 사셨다.

 

 예수님의 기적과 구마활동은 하느님 나라가 인간의 영육 모두에 해당되는 것을 보여주는 전인적 구원행위였다. 예수님의 이런 공적활동은 처음부터 사람들 감탄을 자아냈지만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런 태도를 거부하며 하느님을 모독하는 일로 보았다.

 

 예수님은 특히 유다교 지배계급에게서 적대감과 미움을 샀고, 이로 말미암아 거짓 예언자로 몰려 사형에까지 이르렀다. 십자가 사건은 예수님의 공적활동에 내재하는 필연적 결과인 셈이다.

 

 이러한 기록을 바탕으로 예수님이 과연 누구였는지 살펴보자면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메시아로, 어떤 사람은 하느님의 모독자, 거짓 예언자, 반란자로 이해했다. 헤로데는 그를 바보로 취급했고(루카 23,6-12), 그의 친척들조차 한때 그를 미친 사람으로 생각했다(마르 3,21).


 성경 작가들도 예수가 누구인가 규명하려 수많은 칭호를 사용했다. '하느님의 아들',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 '임마누엘', '메시아', '하느님의 어린 양', '예언자' 등 100여 가지를 찾아 낼 수 있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묘사한다. '인도주의자', '방랑 설교가', '비타협주의자', '자유인'…. 이러한 여러 칭호들은 예수님을 어느 한 도식이나 틀에 맞춰 설명할 수 있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예수님은 누구일까.
 
 ▨ 예수님은 메시아, 그리스도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란 '기름을 발리운 사람'이란 뜻의 그리스어로, 히브리어로는 메시아라고 한다. 기름을 바르게 된다는 것은 왕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님은 지상활동 중에 자신을 왕, 곧 메시아라고 주장한 적이 있었던가. 이에 대한 답변은 매우 부정적이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는 이 칭호를 한 번도 자신에게 적용한 적이 없다. 예수님에게 이 칭호를 붙여준 사람은 예수 자신이 아니라 제3자들이다. 예수님은 제3자들이 붙여준 이 칭호의 의미와 내용을 수정하거나 비판했다.

 

 마르코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은 이상하리만치 메시아로서의 품위에 대해 침묵을 지킬 것을 강조한다. 치유의 기적을 행한 다음에 그들에게 그 사실에 대해 입을 다물 것을 다짐시킨다. '선생님은 메시아입니다'하는 베드로의 고백에 대해 예수님 대답은 이상하게도 엄중한 침묵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재판과정에서 자기가 메시아라는 자백을 강요받았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 섰을 때, 빌라도에게서 "네가 유다인의 왕이냐?"(마태 27,11), 즉 메시아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전한다. 여기에 대한 예수님 대답은 "예"도 "아니오"도 아닌 "그것은 네 말이다"였다.


 빌라도가 의미하는 메시아는 분명 정치적 인물로서 구세주였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메시아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전혀 메시아와 상관없는 인물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결국 답은 애매모호할 수밖에 없었다. 복음서는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한결같이 고백하는데, 그 메시아는 새로운 의미의 메시아다.


 예수님이 거슬러 싸웠던 것은 어떤 정치세력도 아니고, 로마 통치자도, 헤로데도 아니었다. 그의 적수는 악이라고 하는 사탄의 세력이었다. 사실 예수님은 권력을 장악하려 하지도 않았고, 폭력을 사용하려 하지도 않았다.

 

제자들에게 섬김을 받기보다 섬기는 자가 되길 누누히 당부한 예수님은 메시아에게 지배권이 불가결의 요소라면, 그 지배권은 봉사를 통해 실현된다고 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이 고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며 봉사하는 메시아의 모습을 실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십자가의 메시아였다. 이런 새로운 이해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자칭 메시아라고 주장하지 못하게 했고, 빌라도의 질문에 애매모호한 답변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고, 제자들이나 치유를 받은 사람에게 침묵을 지킬 것을 당부하게 했던 것이다. 우리에게 예수님은 어떤 메시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