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세계 : 하느님 현존의 자리, 성전 (2)
“‘주님의 집으로 가세!’ 하고
사람들이 나에게 이를 제 나는 기뻤노라”(시편 122,1)
사람들이 나에게 이를 제 나는 기뻤노라”(시편 122,1)
지난달에 우리는 예루살렘 성전의 역사를 돌아보았다. 이번에는 성전이 어떻게 생겼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열왕기 상권 6장과 7장을 보면, 기원전 980, 970년대에 솔로몬이 지은 성전의 모습이 상세히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그 서술을 바탕으로 성전을 복원하는 일은 쉽지 않다. 구체적으로, 건물의 겉모습이 어떠하고 벽이 얼마나 두꺼운지 등에 관해서 성서 본문은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으로서는 알아듣기 어려운 건축 전문용어들까지 있어서 성전 복원을 시도할 때마다 늘 문제를 안기 마련이다. 이런 사정을 함께 생각하면서 그림 1(평면도)과 그림 2(옆모습)를 보자.
성전은 동쪽을 향해서 직사각형으로 지어졌다. 본건물의 너비는 9.4미터, 길이는 282미터 가량 되는 석조건물이다(히브리 도량형을 우리의 도량형으로 정확히 환산할 수 없기 때문에, 다음에 나오는 수치들도 모두 대략적인 수치이다.).
9.4미터는 그때의 건축기술로 중간에 기둥 없이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너비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성전의 이 본건물은 성소와 지성소로 나뉜다.
안쪽에 있는 지성소는 말 그대로 성전에서 가장 거룩한 곳이다. 벽과 바닥을 나무로 씌우고 금으로 호화롭게 장식하였지만, 창이 하나도 없어서 캄캄한 이곳은 너비와 길이와 높이가 모두 9.4미터이다.
여기에 십계명판이 든 계약궤가 모서졌다. 그리고 올리브나무로 만든 커다란 거룹 둘이 이 계약궤를 보호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높이가 47미터, 그리고 날개를 펀 길이도 각각 4.7미터여서, 이 거룹 둘이 지성소를 가득 채운 것과 같다.
계약궤는 바로, 보이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 지성소에는 대사제가 일년에 한 번, 그것도 엄격한 예식을 거친 끝에야 들어갈 수 있었다.
지성소와 성소는 두께가 2.8미터 되는 벽과 거기에 달린 나무문과 계단으로 분리된다. 지성소와 마찬가지로 치장된 성소는 길이가 188미터, 높이가 14.1미터이다. 지성소와는 달리 좌우의 벽 높은 곳에 창문들이 나있다.
의식을 거행하는 사제들만 들어가는 이곳에는, 나무로 만들어 금을 입힌 작은 제단이 지성소 앞에 놓여 있다. 이 금제단은 향을 피우기 위한 것이다.
역시 나무로 만든 다음 금을 입힌 것으로 여겨지는 등잔대가, 남쪽과 북쪽에 각각 다섯 개씩 나란히 배열되었다.
그리고 금으로 만들었는지, 아니면 금만 입혔는지 분명하지 않은 상이 있는데, 그 위에는 ‘(하느님) 현존의 빵’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제사 빵’이 놓인다. 성전에서 행해지는 전례 대부분이 이 성소에서 거행된다.
성소에 이어서 두께가 2.8미터 되는 벽과 거기에 달린 문으로 분리된 ‘현관’이 나있는데, 너비는 성소의 너비보다 더 길게 뻗어있다. 성소와 지성소와는 달리 지붕이 없던 것으로 생각되는 이 현관의 구체적인 기능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성전 둘레의 개방된 뜰에서 거룩한 성전 안으로 들어가는 중간지역 구실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현관 앞에는 특별히 ‘야긴’과 ‘보아즈’라 불리는, 높이가 114미터 되는 청동 기둥들이 따로 세워졌다.
이것들도 현관처럼 그곳이 거룩한 곳임을 가리키는 구실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또 성소와 지성소의 바깥 벽에는 세 면을 돌아가며 돌 또는 나무로 된 부속방들이 삼층으로 지어졌는데, 각 층에 방이 서른 개 정도였다.
열왕기는 성전 건물을 둘러싼 뜰은, 그것이 다듬은 돌 세 줄과 나무 들보 한 줄로 울타리 쳐졌다고만 말한다.
이 뜰 안에 여러 기물들이 배치되었는데 중요한 것으로는, 먼저 성전의 남동쪽에 높이가 2.35미터, 지름이 4.75미터 되는 커다란 물통이 있었다.
‘청동 바다’로 불리면서(2열왕 25,13) 상징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여겨지는 이 물통은 열두 마리 황소 위에 얹혀졌는데, 황소들은 세 마리가 한 짝을 이루어 네 짝이 각기 동서남북 한 방향씩을 향하였다.
또 지름이 1.9미터 되는 물두멍이 받침대와 함께 성전 뜰 오른쪽과 왼쪽에 각각 디섯씩 배열되었다.
그리고 역대가 하권 4장 1절에 따르면, 길이와 너비가 각각 9.4미터, 높이가 47미터 되는 청동 번제 제단이 있었다.
성전의 이 기물들 가운데에서 계약궤는 기원전 587년 성전이 파괴되면서 없어지고 두 청동 기둥과 ‘청동 바다’는 유배 뒤의 제2성전에서 복구되지 못한다.
기원전 19년에 성전을 증축할 때, 헤로데 임금은 본토에 사는 유다인들만이 아니라, 세계의 여러 대도시에 살면서 신전들을 많이 본 유다인들도 고려하였다.
그래서 거룩한 곳인 성소와 지성소의 규모는 건드리지 않은 반면, 그 밖의 부분들은 웅장하고 화려하게 꾸몄다.
지붕에는 금을 입힌 꼬챙이들을 세워놓아 새들이 앉아서 더럽히지 못하도록 하고, 현관은 너비와 높이를 각각 47미터로 늘렸다. 헤로데는 유다인들의 종교 심성을 고려하면서도 현관에는 금 독수리를 만들어 달았다.
이는 제우스 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유다인들의 분노를 사기도 하였다. 그는 또 성전 지붕만이 아니라 바깥 벽에도 금으로 치장을 많이 하여, 해가 비칠 때에는 눈이 부실 정도였다고 한다.
역시 거룩한 곳으로 간주된 성전 뜰은 여러 구역으로 정리되어, 해당되는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었다(그림 3 참조).
가장 안쪽에는 ‘사제의 뜰’, 그 둘레에는 전례에 참석할 수 있는 정결한 ‘남자의 뜰’(또는 ‘이스라엘인의 뜰’) 그리고 성전 본건물을 마주보는 정문 쪽에는 ‘여자의 뜰’이 자리잡고 있었다.
여기에는 유다인이 아닌 사람은 들어갈 수 없고, 이방인은 들어가면 사형을 받는다는 팻말이 그리스말과 라틴말로 쓰여 있었다(사도 21,27-31 참조).
헤로데는 성전 뜰 밖으로 ‘이방인의 뜰’이라 불리는 큰 광장을 만들었다. 이는 로마나 그리스식 도시의 공공 광장에 해당하는 곳으로 아무나 들어갈 수 있었다.
헤로데는 이 광장 한쪽 끝에 ‘안토니아 성채’라는 것을 세웠는데, 성전을 보호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감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네 면이 회랑으로 둘러쳐진 이 성전 바깥 뜰을 만드는 것은 공이 많이 드는 큰 공사였다.
세 면이 골짜기이기 때문에 때로는 백 톤이나 되는 거대한 바위들을 끌어다가 기초공사를 해야 했다. 이렇게 조성된 성전 산의 전체 기본 터는 43,500평이나 되는 것으로, 당시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구조물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성전은 과연, 예수님의 제자가 “선생님, 저것 보십시오. 저 돌이며 건물이며 얼마나 웅장하고 볼만합니까?”(마르 13,1) 하고 감탄할 만한 것이었다.
헤로데의 증축공사는 십년이 걸리지만, 부수공사는 그 뒤로도 몇 십년 동안 이어진다(요한 2,20 참조). 그러나 작업이 완전히 끝나고 얼마 되지 않은 기원후 70년에 이 ‘헤로데 성전’은 영원히 파괴되고 만다.
고 임승필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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