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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3. 하느님 현존의 자리, 성전 (1)

dariaofs 2014. 2. 21. 02:00

 

성서의 세계 : 하느님 현존의 자리, 성전 (1)
 
“우리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성전입니다”(2고린 6,16)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가면 ‘통곡의 벽’이라는 곳을 보게 된다. 이 벽은 온 세상에 퍼져 사는 유다인들에게 가장 거룩한 곳이다.

 

유다인들은 그곳에 가서 슬픔 속에 자기들의 역사를 회상하며, 성전의 파괴와 조상들의 유배살이를 되새긴다. 또한 옛 조국의 영광을 돌이켜보며, 그 영광이 다시 찾아오기를 기도한다.
 
‘통곡의 벽’이 유다인들에게 성스러운 까닭은 그곳이 옛날 성전에서 가장 거룩한 곳인 지성소에 제일 가깝기 때문이다. 옛 성전자리에는 회교 사원이 들어서 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공식적으로 성전의 옛터에 ‘통곡의 벽’보다 더 가깝게 갈 수가 없다.
 
이 성전이 예수님 시대에는 유다 땅에서 가장 중요할 뿐더러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어떤 제자가 새삼 감탄하면서 예수님께, “선생님, 저것 보십시오. 저 돌이며 건물이며 얼마나 웅장하고 볼 만합니까? 하고 말하기도 하였다(마르 13,1). 이러한 예루살렘 성전의 역사는 예수님 시대에서 다시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전의 모태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 가운데에 계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계약궤이다(출애 25,10-22 참조). 시나이산에서 하느님과 맺은 계약의 문서인 십계명판을 담은 이 궤를(1열왕 8,9), 반유목민이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늘 함께 모시고 다녔다.

 

양떼를 먹일 풀밭을 찾아 돌아다니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원성전은 ‘천막 성전’이었던 것이다. 이런 하느님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서, 이 ‘이동 성전’도 자리를 잡는다.

 

그러나 어느 한 장소에 고정되지 않고, 사정에 따라 실로나(1사무 3,3) 키럇여아림(l사무 7,1) 같은 곳으로 옮겨갈 수도 있었다. 그래서 계약궤가 있는 곳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중심을 이루는 성전이 되었다.
 
예루살렘의 성전은 계약궤가 그곳에 옮겨지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다윗은 왕국의 수도로 정한 예루살렘에 계약궤를 모셔다 놓음으로써, 이 도시를 명실공히 정치와 종교의 중심지로 만든다.

 

그는 이어서 계약궤가 가리키는 하느님에 걸맞는 성전을 지으려 한다. 다윗의 이런 의도에 대해서 ‘이동 성전’의 오랜 전통에 따른 반대도 없지 않았다. 역대기 저자는 다윗이 나라를 세우면서 너무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에 성전을 지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1역대 28,3).
 
결국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칠 년의 큰 작업 끝에 예루살렘 성전을 완공한다(1열왕 6장). 성전은 이 밖에 ‘성소’ ‘주님(하느님)의 집’ 또는 그냥 ‘집’으로 불린다.

 

그리고 이 명칭들 앞에는 하느님을 뜻하는 ‘그분의’나 ‘나의’가 붙기도 한다. 이 예루살렘 성전이 처음부터 유일한 성전은 아니었다. 지방 성전들이 나름대로 계속 기능을 수행하였다. 그러면서도 예루살렘 성전은 중요성을 점점 더하게 된다.
 
특히 유다 임금 히즈키야(2열왕 18장)와 요시아의 종교개혁을 거치면서(2열왕 22-23장) 예루살렘 성전은 유일 성전으로 자리를 잡아간다. 그러나 백성의 종교생활과 함께 성전의 문제점도 드러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주님의 성전’으로서 절대적인 것이라 여기게 된다. 주님의 절대성을 그분 현존의 자리인 건물에까지 부여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전이 있으니. 곧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니 어떤 재앙도 미치지 않는다.”(미가 3,12)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지 않으면서 의식만 거행하는 백성뿐만 아니라, 그들의 종교 중심지인 성전도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미 기원전 8세기 후반부에 미가 예언자가 성전의 파괴를 예고하는데(미가 3,12), 백 년이 지난 다음 예레미야가 같은 예언을 하기에 이른다(예레 7; 26장).

 

하느님의 백성이 하느님을 저버리므로, 그분께서 당신의 현존을 약속하신 성전도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기원전 587년, 성전은 예루살렘과 함께 약탈당하고 불에 타 파괴된다. 이때 계약궤도 없어진다. 그러나 하느님의 백성에게 성전은 없어서는 안되는 곳이었다. 그들은 성전이 없이는 하느님을 제대로 섬길 수 없었다.

 

오십 년이 지난 다음, 페르샤 임금 고레스가 근동의 패자로 나서면서, 바빌론으로 유배 갔던 유다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지으라는 허락을 받는다.

 

그려나 기원전 537년에 시작한 공사는 갖가지 어려움 때문에 곧바로 중단된다. 그러다가 하깨와 즈가리야 예언자의 격려 아래 520년에 공사를 재개하여, 515년에 끝낸다(에즈라, 느헤미야 예언서 참조).

 

페르샤 왕국의 도움을 받아가며 솔로몬 성전을 본따 짓기는 했지만, 새 성전이 제1성전보다 여러 면에서 소박했을 것임은 쉬 짐작할 수 있다.
 
유배시대 이후, 독립을 상실한 유다 공동체에게 이 제2성전은 유일무이한 성전이었다. 집회서 저자는 기원전 180년경, 대사제가 성전에서 전례를 거행하는 모습을 경건한 유다인의 눈으로 감격스럽게 묘사하기도 한다(집회 5,1-21).

 

그러나 예루살렘 성전은 기원전 167년에, 외국 임금에게 약탈을 당하고, 한때나마 제우스 신전으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기도 한다(2마카 6,2). 그러다가 기원전 19년에 이방인이었던 헤로데 대왕이 유다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성전을 대대적으로 증축한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헤로데 성전’에서 활동하신다. 그러나 이 성전은 오래가지 못하고 기원후 70년에 로마군에 의해서 파괴된다. 130년에는 로마 황제의 명에 따라, 예루살렘이 로마 이름으로(엘리아 카피톨리나) 불리고, 옛 성전 터에는 주피터(제우스의 로마식 이름) 신전이 세워진다.

 

예루살렘은 뒤에 옛 이름을 되찾지만, 성전은 다시 지어지지 못한 채 ‘통곡의 벽’만 그 흔적을 보여준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처럼 성전 전례에 참석하다가(사도 2,46), 점점 성전에서 멀어진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바로 성전이라는 믿음 때문이다(마태 12,6; 요한 2,21).

 

그리고 그분의 몸은 그분의 교회이므로, 교회가 이제 새로운 성전이 된다(1고린 3,9; 에페 2,19-22).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하느님의 진정한 현존의 자리가 되는 것이다.
 
 
고 임승필 요셉/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