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톨 릭 이 야 기

[주원준의 구약 이야기-3]

dariaofs 2014. 9. 20. 01:00

탐욕의 첫째 무늬 - 이기심

 

우리말 구약성경 본문에서 ‘탐욕’은 여러 번 등장하는 중요한 낱말이다. 그런데 우리말 '탐욕'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낱말은 하나가 아니라 셋이다. 다시 말해 세 낱말을 하나의 낱말로 옮긴 것이다.

 

그래서 이 세가지 히브리어 낱말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구약성경에 감추어진 탐욕의 세가지 모습을 조금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구약성경이 말하는 탐욕은 첫째, 이기심과 깊은 관련이 있다. 둘째, 탐욕은 내면의 즐거움과 뿌리가 같다. 셋째, 탐욕은 특히 전문가들의 윤리를 어긴 것이며, 그 대가는 하느님의 심판이다.

 

우선 오늘은 탐욕의 첫째 무늬를 살펴 보겠다. 첫째로 살펴볼 낱말은 אוה[’아봐:]로서 ‘꼭 맞다’, ‘일치하다’의(to agree, to match) 뜻을 지녔다. 이 낱말에 원래 탐욕이란 뜻은 없었다.

 

‘딱 맞다’ - 수동형


이 낱말을 수동형으로 쓰면 ‘일치하다’, ‘꼭 맞다’의 뜻이다. 우리말의 ‘어울리다’의 어감도 훌륭하다. 실제 히브리어 사전은 이 낱말의 수동형을 ‘사랑스럽다’, ‘아름답다’로 해설한다(be beautiful, be lovely). 아래 예를 보면 이 낱말이 얼마나 긍정적으로 사용되는지 알 수 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꼭 맞는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

평화를 선포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며 구원을 선포하는구나.”(이사 52,7)

 

“귀걸이 드리워진 그대의 뺨과
목걸이로 꾸며진 그대의 목이 어여쁘구려(잘 어울리는구려).”(아가 1,10)

 

“당신의 법은 실로 참되며
당신의 집에는 거룩함이 어울립니다(딱 맞습니다).”(시편 93,5: 찬미)


‘영혼에 꼭 맞게 하다’ - 강화형

אוה[’아봐:]를 강화형(피엘형)으로 쓸 때는, 주어가 ‘영혼’이 될 때가 많다. 그 뜻은 ‘영혼에 꼭 맞게/어울리게 하다’(the spirit makes it fit/agreed)가 될 것이다. 영혼에 딱 맞게 하는 것, 그것은 열망이다.

 

그래서 이 구문은 대개 ‘원하다’, ‘갈망하다’(desire)로 옮긴다. 아래를 보라. 이 구문도 별로 부정적인 맥락에서 사용되지 않는다. 구약성경은 영혼이 열망하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저의 영혼이 밤에 당신을 열망하며(내 영혼이 당신을 갈망하며)
저의 넋이 제 속에서 당신을 갈망합니다.”(이사 26,9)

 

“그러나 그분은 유일하신 분, 누가 그분을 말릴 수 있으리오?
그분께서 원하시면(그의 영혼이 갈망하면) 해내고야 마시거늘.”(욥 23,13)


열망, 희망 - 명사형

이 어근에서 파생한 명사형도 특별히 부정적이지 않다. 강화형에서 파생한 명사형 אַוָּה[’압바:]는 대개 ‘갈망’, ‘열망’(desir, longing)으로 옮긴다.

 

기본형에서 파생한 명사형 תַּאֲוָה[타’아봐:]도 대개 ‘염원’, ‘희망’ 등으로 옮긴다. 특별히 ‘탐욕’으로 옮기지 않는 것이다.


재귀형: ‘탐욕’의 이기적 속성
이 낱말은 재귀형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데, 이 재귀형을 어색함을 무릅쓰고 우리말로 직역을 시도하면, ‘내 자신을 위해 열망하다’로 새길 수 있다.

 

재귀형이 지닌 이런 ‘이기적’ 속성 때문에, 오직 이 재귀형만을 ‘나를 위해 열망하다’를 ‘욕심내다’, ‘탐욕을 부리다’로 옮긴다.

 

“이웃의 집이나 밭, 남종이나 여종, 소나 나귀 할 것 없이 이웃의 재산은 무엇이든지
욕심내서는(네 자신을 위해 열망해서는) 안 된다.”(신명 5,21)

 

“그래서 그곳 이름을 키브롯 타아와라고 하였다.
탐욕스러운(스스로를 위해 열망하는) 백성을 그곳에 묻었기 때문이다.”(민수 11,34)


첫째 결론: 탐욕은 이기심이다.

꼭 맞고 어울리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과연 주님의 성전이나 주님의 구원을 찬미하는데 적격인 낱말들이다. 이 낱말을 사용하여 영혼에 꼭 맞고 어울리는 것을 찾는 것, 곧 내적으로 열망하는 것을 표현했다.

 

 바로 ‘희망’이요 ‘염원’이다. 이에 대해서 구약성경은 부정적이지 않다. 여기서 파생된 명사들도 그 자체로 부정적인 의미는 없다.

 

특정한 동사의 특정한 형태만이 탐욕이다. 재귀적 의미, 곧 ‘나에게’, ‘나를 위해서’ 열망하는 의미가 삽입되자 이 낱말의 의미는 180도 변했다.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에 등장할 정도로 이 낱말은 부정적인 의미를 지녔다. 곧, 탐욕의 근원은 자기만을 원하는 마음, 곧 이기심인 것이다.

 

아름답고 어울리는 것은 그 자체로 훌륭한 것이지만, 스스로에게 꼭 맞는 것을 지나치게 갈망하는 것, 곧 이기심이 섞이면 탐욕이 된다.

 

다음에는 탐욕의 둘째 무늬에 대해 알아보겠다.

 

 

 
 

 

주원준 (토마스 아퀴나스,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이른바 ‘평신도 구약학자’.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성서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했으며 세부전공은 성서언어학이다. 히브리어와 그 친족어들을 즐겨 다루고, 고대 근동과 구약성경을 연구하고 발표하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