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셋째 무늬 - 잘라낸 것, 뇌물
끝으로 살펴볼 탐욕의 세번째 무늬는 전문가와 권력자를 경고하는 것인데, בצע[바차‘’]라는 낱말에서 유래한다. 이 낱말의 기본형은 직물의 끝단을 ‘잘라내다’는 뜻을 담고 있다.
직물의 끝단을 가위나 칼로 깔끔하게 마감하고 부스러기 실을 잘라버리는 행위, 또는 직물에 잘라낼 지점을 표시하여 천을 끊는 일을 의미했다.
이 동사의 기본형에서 파생한 명사 בֶצַע[베차‘으]는 ‘잘라낸 것’이란 의미다. 그런데 성경은 이 낱말을 무척 부정적으로 옮긴다. 대개 ‘부정한 소득’, ‘뇌물’ 등으로 번역한다. 이 명사형이 왜 이런 의미가 되었을까?
고대 근동의 ‘섬유 산업’
이 낱말의 부정적 인식을 이해하려면 고대 근동의 직물 생산을 알아야 한다. 고대 근동에서 천을 생산하는 일 자체는 주로 여성의 몫이었다.
그러나 (현대도 그렇듯) 직물은 고가로 거래되어 막대한 이익을 얻는 국제적 교역품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일에는 수많은 남성이 종사하였다.
고대 근동 문헌의 외교 문서에는 다양한 종류의 직물을 언급한다. 색상과 디자인도 다양하다. 이런 자료는 당시 직물이 중요한 국제적 교역품이었음을 말해준다.
물레를 돌리는 사람(spindler)은 별다른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비전문가 취급을 받았지만, 직공(weaver)은 일정한 교육과정과 훈련을 거쳐야 하는 전문가였다. 그들은 다양한 직물을 생산할 뿐만 아니라 위탁받아 특정한 의복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일도 하였다.
임금의 화려한 옷이나 대사제의 예복 등을 만들었다. 현대로 치면 일류 디자이너와 섬유 산업 고위직을 겸한 것이다. 이집트의 파라오에게 훌륭한 직공을 몇 명 보내달라는 내용을 담은 수천 년 전의 외교 문서가 남아 있다.
고대 이스라엘의 직공의 수익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이런 위탁생산 과정과 관련된 것 같다. 이를테면 그들은 일정한 옷감을 맡아 옷을 지은 다음 남은 옷감을 돌려주지 않았거나, 생산비를 부풀리곤 했던 것 같다.
이들은 직업상 특수층을 쉽게 만날 수 있었는데, 막대한 이익을 남기는 국제교역과 관련되어 이런 부정적 인식을 얻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잘라내어 주인에게 돌려주지 않은 부스러기’는 ‘부정한 소득’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 낱말을 성경은 대개 ‘뇌물’, ‘부정한 소득’ 등으로 옮김은 앞에서 보았다.
관리와 임금을 경고하다
모세의 장인은 모세가 백성을 홀로 다스리기에 너무 벅차므로, 관리를 세워 짐을 나누어지게 하는 게 좋겠다고 충고한 적이 있다.
그는 모세에게 다음과 같은 사람을 백성의 관리로 세워야 한다고 권했다. 탈출기의 ‘목민심서’라고 할 수 있는 이 대목에서, 관리의 자질로 ‘잘라낸 부스러기’를 싫어하는 덕목이 포함된다.
“또 자네는 온 백성 가운데에서, 하느님을 경외하고 진실하며 부정한 소득(잘라낸 부스러기)을 싫어하는 유능한 사람들을 가려내어, 그들을 천인대장, 백인대장, 오십인대장, 십인대장으로 백성 위에 세우게.”(탈출 18,21: 이트로의 충고에 따라 재판관들을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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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 왕정은 백성이 요구하여 세워진 것이다. 이 때 백성이 왕정을 요구한 이유가 흥미롭다.
바로 마지막 판관 사무엘이 후계자로 자신들의 아들들을 세웠는데, 이 아들들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잘라낸 부스러기’를 몹시 밝혀 판결을 그르쳤다.
“그런데 사무엘의 아들들은 그의 길을 따라 걷지 않고, 잇속에만 치우쳐 뇌물(잘라낸 부스러기)을 받고는 판결을 그르치게 내렸다.”(1사무 8,3: 백성이 임금을 요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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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분노를 일으키는 ‘탐욕 죄’
‘비탄의 예언자’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하느님으로 부터 마음이 멀어져버린 상황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고발했던 인물이다.
그가 개탄하고 고발하는 상황, 곧 모든 사람이 하느님께 등 돌린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모두가 ‘잘라낸 부스러기’만 챙겨 억압과 폭력을 일삼고 무죄한 이는 피를 흘리는 상황이다.
“그러나 너의 눈과 마음은 오로지 제부정한 이익을(언제나 잘라낸 부스러기만) 돌보고 무죄한 이의 피를 흘리며 억압과 폭력을 일삼는 일에나 쏠려있다.”(예레 22,17: 여호야킴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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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예언자에 따르면, 하느님은 이렇게 ‘잘라낸 부스러기들’ 때문에 분노하셨다. 성경은 이 낱말을 ‘탐욕 죄’로 옮겼다. 아래 시편도 역시 같은 말로 옮겼다. 탐욕은 이렇게 몰래 잘라내어 돌려주지 않은 것이다.
“나는 그들의 탐욕 죄(그의 잘라낸 부스러기) 때문에 화가 나 그들을 치고 분노가 치밀어 내 얼굴을 가려 버렸다. …”(이사야서 57,17: 위로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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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은 제 탐욕(잘라낸 부스러기)을 뽐내고 강도는 악담하며 주님을 업신여깁니다.”(시편 10,3) |
하느님은 죄인을 ‘잘라내신다’
이 낱말의 강화형(피엘형)의 의미는 ‘잘라 버리다’의 뜻으로, 마치 베틀에서 천을 잘라내듯이 ‘인생을 잘라버린다’, 곧 ‘삶을 끝내게 하다’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런 의미로 사용될 때는 언제나 하느님이 주어가 된다.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권능을 이렇게 직공의 일에 빗댄 것이다. 하느님은 마치 베틀에서 천을 짜는 일꾼처럼, 베틀에 걸린 인생이라는 직물에 자를 지점을 표시하고 잘라내시는 분이시다.
흥미로운 점은, ‘잘라낸 부스러기’의 어근을 조금 변형시켜 고대 이스라엘 민중의 말놀이를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잘라낸 부스러기를 탐하는 자들은 (하느님께서) 잘라 내시리라’고 표현함으로써, 하느님의 권능을 표현하고, 뇌물과 부정한 소득을 챙기는 전문가와 관리들을 비판한 것이다. 이렇게 빗댄 것은 거의 모두 운문에서, 특히 예언서에서 발견된다.
“목자들의 천막처럼 나의 거처가 뽑혀 내게서 치워졌으니 나는 베 짜는 이처럼 내 생을 감아 들여야 했네. 그분께서 나를 베틀에서 잘라버리셨네…”(이사 38,12: 히즈키야의 찬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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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물 가에 살며 보화를 많이 가진 자야 너의 종말이 다가오고 네가 잘려 나갈 때가 되었다(너의 끝, 네가 잘려나갈 지점에 도달했다).”(예레 51,13: 바빌론의 신탁) |
“불경한 자가 잘려나가면 무슨 희망을 가지랴? 하느님께서 그의 목숨을 빼내가 버리시면?”(욥기 27,8: 무고선언) |
셋째 결론: 탐욕스런 전문가를 경고하다
이 낱말의 의미는 이중적이다. 한편으로는 몰래 잘라내어 돌려주지 않은 부스러기, 곧 부당하게 얻은 소득을 의미한다. 그래서 뇌물, 탐욕 등으로 번역된다. 이 낱말이 고대 이스라엘의 전문직의 용어였다는 점은 중요하다.
그들은 일반인들이 모르게 은밀한 방법으로 돌려주어야 할 것을 돌려주지 않았다. 겉보기에 예쁘고 가지런하게 옷감을 잘라내어 정리하는 방법을 통해 그들은 부당한 소득을 축적했다.
고대의 전문용어가 곧바로 ‘뇌물’, ‘탐욕’이 되어버린 고대 사회의 구체적인 사정이 조금 짐작이 된다.
다른 한편으로 이 낱말은 우리 삶을 잘라낼 수 있는, 곧 생사를 결정하시는 하느님의 권능을 묘사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하느님의 권능은 하느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에게 내릴 것임을 경고하는 데 사용된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은 동일한 어근의 단어로 탐욕을 엄중히 경고한다.
‘잘라낸 부스러기’를 돌려주지 않는 자는, 하느님께서 그의 생명을 ‘잘라낼 것이다.’ 탐욕의 대가는 심판이다.
탐욕의 세 가지 무늬
우리말 구약성경에서 ‘탐욕’으로 옮긴 낱말은 히브리어로 원래 세 개의 단어였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의 ‘탐욕’은 세 가지 무늬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그 가운데 두 개는 내면에 관한 것이었고, 하나는 실질적인 경제생활과 관련하여 권력자와 전문가를 경고하는 것이었다.
첫째, 탐욕은 이기심이 개입되었을 때 발생했다.
둘째, 탐하는 마음은 내적 쾌락을 동반한다.
셋째, 탐욕은 막대한 이익을 내는 전문가들에게 해당되는 용어였다. 일반인들이 알기 힘든 방법으로 잘라낸 것을 몰래 챙기는 행위다.
구약성경은 ‘몰래 잘라내어 돌려주지 않은 것’을 ‘부정한 소득’이요 ‘탐욕’으로 규정했다.
모세의 장인은 그런 잘라낸 부스러기를 멀리 하는 사람이야 말로 새나라 이스라엘의 관리가 될 자 격이 있다고 조언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온 이스라엘이 그런 부스러기에 눈이 먼 상황이 하느님께 등돌린 상황이라 고발했다.
고대 이스라엘의 민중은 같은 어근의 단어를 사용하여 탐욕에 눈이 먼 전문가들과 관리를 비판하였다. 그들이 ‘몰래 잘라낸 것’을 탐하는 죄를 하느님께서는 벌하실 것이다. 그 분은 그런 탐욕스런 관리와 전문가를 ‘잘라버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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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준 (토마스 아퀴나스,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이른바 ‘평신도 구약학자’.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성서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했으며 세부전공은 성서언어학이다. 히브리어와 그 친족어들을 즐겨 다루고, 고대 근동과 구약성경을 연구하고 발표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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