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뜻 알기
<탈무드>
우리에게 `재미있는 이야기 모음집‘ 정도로 알려져 있는 탈무드(Talmud)는 유다인들의 생활에 크나큰 영향을 주고 있는 책으로 성서 다음 가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탈무드’ 라는 말은 본래 회당(시나고가)이나 학교에서 랍비들로부터 구전 율법을 `배운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후대에 이 가르침이 책으로 집대성된 뒤에는 통상 그 책을 일컫는 명칭으로 쓰여졌다.
유다인들은 문서화된 율법(토라) 외에도 구전되어 내려오는 가르침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이는 구전 율법이 문서화된 율법의 내용을 설명해 줄 뿐 아니라 시대 여건에 맞추어 문서화된 율법을 수정. 보완해 주는 중대한 역할을 수행하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안식일에는 일을 하지 말라고 문서로 규정되어 있을 때 어디까지가 일이라고 볼 수 있는가를 구전 율법에서 설명하지 않으면 그 법을 지키기가 어려운 것이다.
구전 율법은 맨 처음 회당 예배에서 낭독된 성서 본문에 대해 주석과 설명을 다는 미드라쉬(Midrash) 형태로 존재하였다. 이 형태와 더불어 기원전 3세기경에 랍비들이 자신이 원하는 주제에 따라 자유롭게 가르치기 시작하였는데, 이와 같은 형태의 가르침은 성서 본문과 연결이 되지 않았던 탓으로 끊임없이 반복해서 암송하지 않으면 후대에 전수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명칭이 미슈나(Mishnah : 반복이라는 뜻)가 되었다.
그러나 사건이 흐름에 따라 미슈나의 양이 방대해져 더 이상 기억에 의존하여 전수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때 그 동안의 가르침을 문서화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는데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탈무드이다. 탈무드에는 팔레스티나 탈무드와 바빌로니아 탈무드가 있는데 이는 각각 팔레스티나와 바빌로니아에 있던 랍비들의 가르침을 수록한 것이다.
팔레스티나 탈무드는 바빌론 유배 이후 잦은 혼란으로 랍비들의 전승이 제대로 축적되지 못하였고, 기원후 4세기경 로마의 박해로 말미암아 급속히 편찬된 탓으로 기원후 5세기경에 편찬된 바빌로니아 탈무드보다 못한 것으로 평가되며, 그 분량도 바빌로니아 탈무드(2절판으로 5,894쪽)의 1/3밖에 되지 않는다.
바빌로니아 탈무드는 미슈나의 구분법 그대로 제라임(Zeraim : 농사법들), 모에드(Moed : 안식일.축제 및 금식에 관한 법들), 나쉼(Nashim : 결혼과 이혼에 관한 법들), 네지킨(Nezikin : 민사법과 형사법들), 코다쉼(Kodashim :성소와 희생의식에 관한 법들), 토호로트(Tohoroth : 레위적 정결법)등 여섯 항목으로 구분되어 있다. 팔레스티나 탈무드는 코다쉼과 토호로트 부분이 없다.
현재 팔레스티나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유다인을 교육시키는 교재로 사용되고 있는 탈무드는 그 성격으로 보아 할리카(Halachah : 법적 교훈)와 하가다(Haggadah : 윤리적 교훈)로 구분되는데 우리가 서점에서 손쉽게 구해 볼 수 있는 탈무드는 대개 하가다 부분 중에서 일부를 발췌하여 재편집한 것이다.§
<사탄>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사탄‘ 이라는 말에 곧바로 악마를 연상한다. 그러나 사탄이라는 말이 처음부터 악마와 같은 개념으로 쓰여지지는 않았다. 사탄이라는 말은 원래 히브리 동사 사탄(śătan :반대하다, 괴롭히다)에서 유래된 명사로 자신과 적대관계에 있는 상대방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다가 후대에 이 말이 고유명사로 변화되면서 그리스도를 대적해 싸우는 악마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사탄은 구약(제2경전 제외)에서 악마라는 의미로 쓰인 적이 없다. 구약에 나타나는 사탄은 모두 방해자 내지 고발자로서의 의미로 사용된다(민수22,22.32; 1사무29,4; 시편109,6-7 참조). 초인적인 존재와 결부되어 사용된 곳(욥기 1-2장; 즈가 3,1-2: 1역대21,1)에서도 사탄은 역시 하느님께 종속되어 고발의 기능을 수행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고발자로서의 사탄 개념은 유다가 시리아 및 로마의 식민지로 전락되던 과정에서 새롭게 변모된다.
당시 유다인들은 약속된 땅에서 더욱 번성하게 되리라는 하느님의 언약(신명 30,3-5 참고)이 실현되지 않고 오히려 장기간 이민족의 통치를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쉽게 벗어날 전망이 없음에 의문을 품었다. 이 때 그들은 후기 그리이스-로마 사상과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의 이원론에서 사상적인 영향을 받아, 사탄을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계약을 파괴하고 이스라엘을 향한 하느님의 선의를 훼방하려는 존재로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생각은 나아가 인간의 역사를 선(하느님)과 악(사탄)의 전투장으로 여기게 하였고, 그들이 처한 시대를 사탄이 득세를 하던 때로 파악하여 하느님의 언약이 실현되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이 시대에 집필된 제2경전과 위경은 사탄을 인간뿐만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적대자인 악마로 기술하고 있다. 하와를 유혹하여 세상에 죽음을 불러들인 창세기의 뱀을 악마로 재해석하는가 하면(지혜2,24; 2에녹11,74-80 참조), 사탄을 창조 이전부터 활동한 천사로 보아(2에녹22,42 참고) 그가 일군의 무리를 이끌고 하느님께 대적하였다가 패배하게 되어(이사야의 승천 2,9; 아담과 하와 16; 1에녹 67,6; 시빌의 신탁3,71 이하 참조) 하늘에서 떨어져 사탄이 되었다고 그 기원을 설명하기도 한다(2에녹 29,4 참고).
이러한 사탄의 성격은 신약에서도 거의 그대로 드러난다. 사탄은 유다와 시몬 베드로와 아나이아를 유혹하며(루가 22,3.31; 요한13,27; 사도5,3) 사람들이 절제하지 못하도록 충동질하는 존재로 묘사된다(1고린 7,5). 나아가 사탄은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케 하는 모든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쓰여졌다(마르 4,15; 묵시2,9; 3,9; 1데살2,18 참조). 그러나 사탄의 패배는 이미 하늘에서 결정되었고(묵시 12,10-12) 그리스도의 재림시 완전히 실현되어(2데살 2,1-12) 사탄과 그의 무리들은 모두 영원한 불 속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묘사된다(마태 25,41 참조).§
<회당>
유다교의 예배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회당(synagogue)은 바빌론 유배시절에 시작된 종교제도로, 오늘날에는 유다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면 어디서나 찾아 볼 수 있을 정도로 유다인들의 삶과 뗄 수 없는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회당이라는 말은 원래 공동체의 모임을 뜻하는 말이었으나 후대에 와서는 그 공동체가 모이는 장소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여졌다(교회라는 용어가 처음에는 모임만을 의미하다가 점차 그 모이는 장소까지 가리키게 된 것과 유사하다). 그들에게 있어서 회당은 비단 예배를 드리는 장소로 국한되지 않는다.
회당은 어린 아이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학교로서, 법정으로서, 정치적인 집회 장소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기원전 586년 유다 왕국이 멸망함에 따라 시작된 바빌론 유배는 유다교를 태동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는데, 이 때 유배된 유다인들은 제사를 드릴 성전이 없었던 탓으로 기도와 성서 봉독을 중심으로 하는 회당 예배를 끝내고 귀환한 후에도 성전과 더불어 유다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고, 이후 디아스포라(팔레스티나를 떠나서 사는 유다인 공동체)는 회당을 중심으로 하는 예배를 더욱 발전시켜 나갔다.
기도와 독서로 이루어진 회당 예배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그 중에서 예수 시대의 회당 예배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되었다. 먼저 이스라엘의 신앙을 고백하고(세마라 하는 신앙 고백문은 신명6,4-6; 11,13-21; 민수15,37-41을 합친 것이다), 그 뒤에 18조항으로 된 기도문(세모네 에스레)을 낭독한 다음 모세오경을 읽는다(이를 빠라쉬라 한다). 때로는 회당에 따라 예언서를 읽는 경우(하프타레)도 있다. 성서 낭독이 끝난 후에는 이에 대한 설교(드라샤)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회당은 그 도시에서 가장 편리하고 눈에 잘 뜨이는 높은 곳에 건립되었고, 그 방향은 예루살렘을 향하도록 하였다. 도시에는 회당이 여럿 있었는데 예수시대의 예루살렘에는 대략 450-500개의 회당이 있었다고 추정된다. 초기 회당에 갖추고 있어야 할 필수품은 성서 두루마리를 담은 보존함뿐이었다. 보존함으로는 운반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진 나무 상자가 애용되었다. 이 상자는 때로 노아의 방주를 연상시키는 `거룩한 방주‘ 라는 명칭으로 불리워지기도 하였다.
신약 시대에 회당은 복음을 선포하는 주요 장소로 이용되었다. 예수께서는 나자렛 회당에서 이사야서를 읽으시고(하프타레) 설교 시간에 당신의 사명을 밝히심으로써 복음을 선포하였고(루가4,16-28), 이후로도 회당에서 많은 사람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였다(마태9,35; 마르1,39; 루가4,44; 요한6,59). 스테파노와 바울로 또한 전도 초기에 예수가 한 것처럼 회당을 이용하여 유다인에게 복음을 전파하려고 애썼다(사도6,9; 17,2).§
<어린양>
미사 때마다 반복해서 낭송되는 “천주의 어린 양”(Agnus Dei)은 잇따라 나오는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에서 보듯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렇듯 어린 양이 그리스도를 뜻하게 된 배후에는 유다인들의 가장 중요한 종교 체험-출애굽 사건과 바빌론 유배 사건이 숨겨져 있다. 이 두 사건을 통해 어린 양은 속죄하기 위해 고통받는 대속물로 여겨졌고, 신약에 와서는 그 모습이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셔서 행했던 모든 일의 의미를 뚜렷하게 나타내 주기 때문에 어린 양이란 말로 그리스도를 가리키게 되었다.
출애굽 당시 유다인들은 야훼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어린 양의 피를 문 상인방과 문설주에 바름으로써 에집트의 맏이를 쳐죽이는 죽음의 재앙에서 벗어나 극적인 탈출을 할 수 있었다(출애11,1-12,34). 그 후 유다인들은 흠이 없는 어린 양(1년생)을 제물로 잡아 파스카 축제를 지내면서 그들 민족을 형성시켰던 결정적인 계기가 된 출애굽 사건을 기념 해 왔다. 유다 전승은 이 사건을 회고하면서 어린 양의 피에 구원의 가치를 부여하였다.
유다인들은 성전에서 번제, 친교제, 속죄제 등을 드릴 때 흠 없는 양을 제물로 바쳤기 때문에 양을 중요하게 여겼다(레위1,10; 3,6; 4,32 참조). 그런데 그 중에서도 어린 양은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는 연례축제인 파스카 만찬때 사용됨에 따라 유다인들의 생활과 더욱 떨어질 수 없게 되었다. 이 점에 착안하여 이사야와 예레미야 예언자는 바빌론 유배 사건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찾던 유다인들에게 고통받는 `야훼의 종‘을 효과적으로 선포하였다.
즉 야훼의 종은 도살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양처럼 아무 말없이 고난을 받음으로써 백성들에게 내려질 재앙을 대속한다는 것이다(예레11,19; 이사53,7 참조). 이로 말미암아 `어린 양’이란 말은 하느님의 구원을 가져다 주는 도구 및 고난받는 야훼의 종을 연상시키는 단어로 쓰여지게 되었다. 신약시대에 사도들은 유다인들의 생활에 깊숙히 침투되어 있던 어린 양의 표상을 이용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려 하였다. 사도 필립보는 고난받는 야훼의 종 부분을 읽고 있던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접근하여 그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설명하였다(사도8,26-40; 마태26,63; 요한19.9 참조).
또한 신약성서 저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죄 없는 어린 양으로서, 당신 피의 값으로 인류를 구원하셨다고 기록하였다(요한1,29; 8,46; 1베드1,18-19; 1요한3,5; 히브9,12-15; 묵시5,9-10 참조).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어린 양은 유다교의 핵심적인 종교 사건을 모두 함축하고 있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을 완성시키는 분이기 때문이다(마태5,17 참조). 교회에서는 6세기 이후 이 구절을 미사전례 중에 낭송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대속자로서의 어린 양임을 고백하고 있다.§
<공의회>
우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를 통해 가톨릭교회에 큰 변혁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공의회’란 용어는 가톨릭교회 내의 최고회의를 가리킨다. `공의회(Cdncilium)'란 말은 처음에는 규모가 크고 적건간에 교회를 사목할 책임을 맡은 주교들이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문제나 사목문제를 협의 결정하는 공식회의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널리 전파되어 교회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교회 안에서 열리는 여러 회의를 구분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보통 교황이 소집하거나 재가하는 전세계적인 규모의 공식 교회회의를 공의회라 부르게 되었다.
교회 역사를 통해 최초의 교회회의라 할 수 있는 것은 기원후 49-50년에 개최된 예루살렘의라 할 수 있다(사도15,1-29 참조). 이때 사도들은 유다인이 아닌 신자들도 구약의 율법을 준수할 필요성이 있는가의 문제를 토의 결정하였다. 그 후 그리스도교 박해시대에 지역별로 주교들이 사목상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서 모였는데, 이런 회의를 지역공의회(Cdncilium Provinciale)라고 한다.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어 점차 제국 전체에 널리 확산됨에 따라, 교회회의의 규모도 커져 제국 전체에 펴져 있는 교회의 주교들이 모여서 회의를 가졌는데, 이 때부터 공의회 차수를 부여하기 시작하였다.
제1차 공의회는 325년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소집한 니체아 공의회로, 이 때 니체아 신경이 작성되었다. 이후로 8차까지의 공의회가 황제의 소집으로 전 로마제국의 주교들이 참석하여 개최되엇고, 그 이후로는 로마교황의 서집 아래 서방교회의 주교들만이 참석하여 제21차 공의회인 제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 이어 왔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전세계적으로 주교들이 모여서 회의를 개최하게 되었는데, 이는 교황이 제안한 안건을 협의해서 교황의 결정에 자문 역할을 하는 회으로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Synodus Episcoporum)또는 시노드(Synod) 라고 부른다. 이 시노드는 공의회로 인정되지는 않았지만 그 규모나 성격상 공의회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일찍기 사도들은 예루살렘 사도회의 결정을 “성령과 우리의 결정”(사도15,28)이라고 표현하여, 공의회의 결의사항이 신앙의 유산에 관한 가장 권위있는 해석임을 밝혔다. 공의회에서 신앙과 도덕의 중요사항을 결정할 때는 다수결로 할 수 없고, 만장일치의 합의를 볼 때까지 결의안을 수정해가며 몇번이고 의사표시를 거듭한다.
믿을 교리나 지킬 계명에 관한 문제는 바로 신앙의 유산을 해석하는 문제이므로 인간들이 다수결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성서와 성전에 의지하여 사도들의 후계자들이 확신하고 있는 교리에 대한 주교단의 공동고백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신앙과 도덕에 관한 공의회의 결정 사항를 순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교회에 관한 교의헌장25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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