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5년 6월 29일 나해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대축일

dariaofs 2015. 6. 29. 05:12

 

 

성 베드로

티베리아 호수에 인접한 마을 베싸이다 출신인 사도 성 베드로(Petrus)는 시몬이라 부르는 요한(Joannes)의 아들로서 겐네사렛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하며 살았다. 그의 아우 안드레아(Andreas)가 그를 예수께 소개했는데, 예수는 그에게 아라메아어로 베드로와 같은 뜻인 ‘게파’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요한 1,35-42).

그는 가나안 혼인 잔치에서 베푼 그리스도의 첫 번 째 기적이 일어난 곳을 비롯하여, 자신의 장모가 치유되는 장면 등을 목격하였다. 베드로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면서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하고 고백할 때, 주님은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 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하셨다. 그리고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으로 가톨릭 교회는 베드로가 첫 번째 교황이며 교황권의 우위성을 입증하는 근거로 이해한다. 베드로는 다른 어느 사도들보다 복음서에 자주 언급되며, 그리스도의 주요 행적에도 항상 그가 함께 자리한다. 또 대사제의 관저에서는 그리스도를 부인한 사실도 있다. 어쨌든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승천 후 신도들의 우두머리이고, 유다(Judas)의 후계자를 임명했으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첫 번째 사도이자, 기적을 행한 첫 사도이며, 설교로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킨 사도였다. 베드로는 43년경에 헤로데 아그리파에 의하여 투옥되었으나, 천사의 인도를 받아 피신하였고, 예루살렘 회의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만인에게 기쁜 소식을 선포하기를 원하신다고 강조하였다.

초기 전승에 의하면 그 후 그는 로마(Roma)로 가서 초대주교가 되었고,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중인 64년경에 바티칸 언덕에서 역십자가형을 받아 순교했다.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에는 그분의 무덤이 있다. 순교 직전에는 저 유명한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로 널리 알려진 주님의 발현을 보았다.

 

성 바오로

베냐민 지파의 유대인이자 로마 시민권을 가졌던 사도 성 바오로(Paulus)는 당대의 유명한 유대인 랍비 가믈리엘의 문하생으로 예루살렘에서 공부하였다. 그가 회심할 때까지는 사울이라 불렀다. 천막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던 그는 엄격한 바리사이파였고, 그리스도교의 열렬한 박해자였다. 그는 스테파누스(Stephanus)의 순교 현장에도 있었다. 또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기 위하여 다마스쿠스로 가던 중 그는 그리스도의 환시를 체험하였다(34-36년 사이). 이 환시는 그의 극적인 개종을 불러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이방인의 사도로 만들어 주었다.

그 후 그는 3년 동안 아라비아에서 지낸 후 설교하기 위하여 다마스쿠스로 돌아왔다. 그는 즉각 유대인들의 맹렬한 반발에 직면하였는데 그에 대한 위협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아레타(Aretas) 왕의 총독이 바오로를 잡으려고 성문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밤을 이용하여 비밀리에 성벽을 타고 도시를 빠져나갔고, 39년경에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을 만났으며, 바르나바(Barnabas)의 지원으로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입적하였다.

그 후 그는 타르수스(Tarsus)에서 몇 년을 지내다가 43년경에 바르나바에 의하여 안티오키아(Antiochia)로 갔으며 그곳 교회의 교사가 되었다. 이것이 이방인을 상대로 하는 대 전교의 시초가 되었다. 45년경부터 바오로는 세 차례의 전교여행을 하게 된다. 45년부터 49년까지 그는 키프로스(Cyprus), 베르게, 비시디아 안티오키아, 리가오니아를 전교했고, 이 여행에서 이름을 바오로로 개명했다. 이 여행을 마치고 49년경에 예루살렘에 온 그는 베드로(Petrus)와 야고보 및 다른 사도들을 설득하여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처럼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음을 확신시키는데 성공함으로써 그리스도교회의 보편성 확립에 기여한 한편, 그의 이방인 선교를 예루살렘 교회가 인정하도록 하는 등 교회의 체제 면에서도 가일층 진보된 단계를 맞게 하였다.

안티오키아로 돌아온 직후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제2차 전교여행을 계획한다(49-52년). 제1차 전교여행에서 세운 교회들을 재차 방문한 뒤, 바오로는 마케도니아를 가로질러 갔고 최초로 유럽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그는 필리피(Philippi), 테살로니카(Thessalonica), 베레아(Berea)에 교회를 세웠으나, 아테네(Athenae)에서는 ‘알지 못하는 신’을 비판하는 ‘아레오파고’ 법정 진술만 다소 효과를 내었을 뿐 신통한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그 후 안티오키아로 귀향한 그는 다시 제3차 전교여행을 계획하였으나(53-58년), 2년 동안은 코린토스(Corinthos)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였으며, 에페수스(Ephesus)에서는 데메드리오라는 은장이 사건이 유명하다. 58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그는 야고보를 만나 보았고, 이레 동안의 정결 기간이 거의 끝날 무렵에 그는 유대인들에게 곤욕을 치르다가 출동한 로마 군인들에게 체포되었다. 이때 그는 자기의 개종을 설명하고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경위를 비롯하여 로마 시민권을 행사하기도 하였으나, 60-61년 사이에 몰타(Malta) 연안을 따라 로마(Roma)에 갇히게 되었다.

로마의 클레멘스(Clemens)에 따르면 그 후 그는 에페수스, 마케도니아, 그리스 등지를 재차 방문했고(63-67년), 트로아스에서 또다시 체포되어 로마로 끌려가서 사도 베드로와 같은 날에 처형되었다(에우세비우스의 견해). 테르툴리아노에 의하면 그는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참수치명 하였다.

바오로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그리스도교 저술가로 꼽힌다. 로마서(코린토스에서 57-58년); 코린토 1서(에페수스에서 54년); 코린토 2서(필립비에서 57년); 갈라티아서(에페수스에서 54년); 콜로새서, 필리피서, 에페소서, 필레몬서(로마에서 61-63년); 테살로니카1, 2서(코린토스에서 51-52년) 및 사목서간인 티모테오서와 티토서를 보냈다. 히브리서는 아마도 다른 저자인 듯하다. 공식 축일은 6월 29일이고, 개종 축일은 1월 25일에 지낸다.

[참고] 바오로의 여성형이 "폴리나"입니다.
이 이름을 아주 오래전에는 "보리나"라고 하였습니다.

 

강론   :   (마태 16,13-19)


<우리도 사도들처럼>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교회의 반석으로 삼은 사람입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는 선교사로 삼기 위해서

특별히 뽑으신 사람입니다.

"그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사도 9,15)."


우리는 베드로 사도에 대해서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왜 베드로인가?"

답은 간단합니다.

"그럴 만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복음서에 베드로 사도의 실수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복음서 저자들이 그런 일들을 기록한 것은 그를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이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또 그가 자신의 부족한 점들을 극복하려고

얼마나 많이 노력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 점에서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베드로 사도의 실수들은

오히려 그의 위대함을 역설적으로 부각시켜 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사실 베드로 사도는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 것 같은 인물이 아니라...)

이 말은, 우리도 노력하면 베드로 사도처럼 위대한 신앙인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가 자신의 부족한 점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예수님의 은총과 보호가 가장 큰 힘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를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실 때 하신 말씀,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라는 말씀은,

저승의(악의) 세력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겠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으면서도

배반자 유다처럼 떨어져 나가지 않고, 곧바로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저승의 세력이 더 이상 그를 건들지 못하도록 예수님께서 지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보호와 베드로 사도 자신의 노력이 합해져서

그 자신도 살게 되었고, 전체 교회도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안 되고 예수님의 은총이 있어야 하고,

또 예수님의 은총만으로는 안 되고 우리도 노력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에 대해서는 몇 가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열두 사도의 기본 임무는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고,

그들이 그 일을 잘하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왜 따로 바오로를 사도로 뽑으셨을까?

왜 바오로 사도를 처음부터 제자로 부르시지 않았을까?

바오로 사도도 열두 사도 가운데 하나였다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그가 교회를 박해할 때 예수님께서는 왜 그를 내버려 두셨을까?


우리는 정답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래도 열두 사도가 일을 못하거나 안 해서 새로 사도를 뽑으신 것은 아니고,

열두 사도가 아닌 사도들이 해야 할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바오로를 사도로 뽑으셨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바오로 사도를 제자로 부르시지 않은 것은

바오로 쪽에서 준비가 안 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가 교회를 박해할 때 내버려 두셨다가 나중에 그를 부르신 것에 대해서는,

인간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어떻든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어떤 섭리에 의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과만 놓고 볼 때, 처음에는 열두 사도만으로도 충분했지만,

교회가 점점 더 성장함으로써, 또 복음이 온 세상에 퍼져 나감으로써,

바오로나 바르나바 같은 사도가 더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의 대축일을 지내는 것은

두 사도를 본받자는 뜻입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들은,

앞에서 이미 말한 '자신의 부족한 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포함해서

예수님에 대한 믿음, 사랑, 충성심, 복음에 대한 열정, 헌신,

고난을 참고 견디는 인내,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은 '뜨거움'입니다.

(다른 사도들과 순교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미지근한 사람들을 꾸짖으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새겨들어야 합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묵시 3,15-16)."

이 말씀은 뜨겁든지 차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뜻이 아니라,

미지근한 것은(뜨겁지 않은 것은 모두) 차가운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미지근한 사람을 뱉어 버리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차가운 사람처럼 취급하시겠다는 경고입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할 때의 베드로 사도의 모습은

미지근한 사람의 모습이었지만,

그는 곧바로 회개하고 본래의 뜨거움을 회복했습니다.

박해자 시절의 바오로는 대단히 차가운 사람이었지만,

사도가 된 뒤에는 굉장히 뜨거운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2티모 4,7)."

이 말은 교만도 아니고 생색내는 말도 아닙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웠음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이란 사도들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생활입니다.

그래서 결국 자기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남지 않게 되지만,

궁극적으로는(하느님 나라에서는) 모든 것을 차지하게 됩니다.

신앙인은 모든 것을 바쳐서 모든 것을 얻는 사람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