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자 수녀의 하느님 자취 안에서] 44.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아파트 한 뼘 열린 창문으로 미세먼지가 들어와 청소해도 이튿날이면 다시 까만 먼지가 닦인다. 가뭄이 너무 길어지고 있다.
5월 말인데도 비다운 비가 오지 않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매일 먹구름 같은 매연이 하늘을 덮고 있어, 도심 속 공기는 탁하기만 하다. 마스크 너머에서 들어오는 숨에서는 먼지 냄새가 날 정도이다.
이런 눈에 보이는 현상들이 있어도 우리는 아무 일도 일어나고 있지 않은 듯, 종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너무 두려워서 알면서도 직면하기 싫은듯해 보인다.
문득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을 때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이들은 정말 순수하고 그 자체로 사랑스럽다. 있는 그대로 꾸미지 않고 자기를 표현하고, 가르쳐주는 대로 따라온다.
그러니 아이들을 돌보는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행동과 언어, 주변 환경은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그들의 생각과 행동, 언어, 세계관을 형성하게 된다.
어른들의 언어와 행동을 스펀지처럼 흡수하여 모방해가며 자기 자신을 형성해 간다는 것을 기억하면 나는 아무리 피곤해도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된다. 왜냐하면, 나는 아이들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흡수하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반에서 아이들이 소꿉놀이 영역에 있을 때에 아이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의 부모님과 교사인 내가 보여준 언어와 행동을 그대로 옮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에는 부모님이 싸우셨는지, 심지어는 별거 중이신지도 나타나고, 얼마나 자주 놀아주시는지도 나타난다.
자주 혼내거나 혹은 무관심한 부모님의 영향을 받은 아이들은 눈치 보며 실수한 것을 덮어두고 안 그런 척 외면하고 다른 장소로 가서 놀이한다.
우울해 보이는 아이는 그 부모님 중 한 분이 우울증을 앓고 계셨고, 소꿉놀이 중에도 “바쁘단 말이야!” 혹은 “빨리해! 너는 왜 그렇게 느리니?”라고 자주 표현하는 아이는 일을 먼저 선택하시는 맞벌이 부모님이 자신에게 그렇게 해서 그것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내가 들었던 가장 가슴 아픈 소꿉놀이 이야기는 “돈만 있으면 다 돼. 난 부자야”였다. 돈으로 만족하게 하는 것을 아이가 답습해버린 것이다.
위기라고 말하고 있지만 우리는 제대로 대응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위기의 여러 차원을 경험하면서 성장하고 있는 세대조차도 ‘방어기제’만 늘어가고, 옳지 못한 어른들의 판단을 ‘무심하게’ 따르고 있다.
결말을 예측할 수 있음에도 지금 당장 즐거움을 선택하도록 하는 구조 안에서 젊은이들과 또 청소년들, 어린이들이 따르고 있다.
결국, 이 모든 위험부담을 이 젊은이들과 청소년, 어린이들이 감당하게 될 것인데 어른들의 ‘환상’에 젖은 선택이 이들을 현실에 직면할 수 없게 하는 환상에 젖게 하고 있다. 위험한 답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어른들과 청년들이 타협하지 않고, 옳은 길을 걸어서 ‘편리하지만 절망스러워서 덮어두는 길’이 아니라, ‘불편하지만 희망을 볼 길’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처럼 다 누리려고 하면 절대 우리가 처한 위험스런 상황에서 나아질 수 없다.
원전을 늘려가며 전기 에너지 사용을 장려하는 가운데 ‘깨끗한 에너지’라고 홍보하고, 자막으로 ‘지속가능성’을 말하는 광고들을 보면서, 지금 우리의 선택이 아이들의 품에 핵폭탄을 안기는 것임을 생각하지 않는 어리석음에 가슴이 아프다.
그런데 이것은 정치인 몇 사람 바꾸면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가 바른 판단과 결정을 하는지 매의 눈으로 바라보고, 식별할 수 있도록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를 보면 세상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교회의 실재인 하느님 백성인 세례받은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증인이다. 그분을 믿는다고 하면서 ‘희망의 길’을 모르는 이처럼 살아서는 안 되겠다.
세례로부터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나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라고 재촉하신다.
그런데 과연 우리 삶은 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희망을 드러내는 모습을 하고 있는가? 다음 세대에게 희망을 주는 오늘의 선택이 간절하다.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