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자 수녀의 하느님 자취 안에서] 46. 하느님 생명에 참여하라는 오늘의 초대
일이 있어서 동해에 다녀오게 되었다. 프로그램 중에 여러 수녀들과 함께 환경보호에 관한 몸 피켓을 만들어 몸에 붙이고 해안가에 있는 쓰레기를 주우러 갔는데, 밀려오는 파도가 정말 아름다웠다.
뭐라 말하려는 파도의 이야기를 뒤로하고 쓰레기를 주우려니 순간순간 발길이 멈춰져 파도의 그 힘찬 물결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모래사장 위에서 놀고 있었다. 아직은 물이 차가워서 물에 들어갈 수는 없어도 물거품에 발을 적시며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삼십여 명의 수녀들이 바닷가의 쓰레기들을 주우며 지나가니 사람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한 남성분이 손에 쓰레기를 들고 누군가가 먼저 버려놓은 쓰레기 더미를 향해 걸어오다가, 수녀들이 담배꽁초까지도 줍고 있는 것을 보고는 들고 있던 쓰레기를 내려놓지 못하고 다시 돌아서서 자신의 차에 실었다. 그리고 수녀들과 함께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도 있었다.
해당화꽃이 너무도 예쁘게 펴서 가까이 가보니 가뭄 속에서도 꽃피고 열매 맺어 나지막하게 군무를 이루고 있었다. 가뭄 속에서 지혜롭게 제 몸 부풀리지 않고 낮게 꽃 넝쿨을 이룬 꽃 무리에서도 우리는 쓰레기를 주워야 했다.
담배꽁초부터 마스크, 페트병, 빨대 봉지가 꽃 가지 사이 사이에 일부러 끼워 놓은 것처럼 함께 자라고 있었다. 우리는 안타까운 심정이 되었다. 그런데 정말 안타까운 것은, 해안가 모래사장의 침식이었다.
사람들이 걸어 다니기에 완만했던 모래사장이 언제부터인지 급경사면을 만들 정도로 침식되어 물놀이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 바다와 같은 꼴을 본 적이 있다. 삼척에 건설되고 있는 화력발전소를 끼고 주변의 모래사장이 이렇게 침식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눈속임으로 엄청난 양의 썩은 모래를 사다가 퍼부어 우리 눈으로 이 침식이 이루어지는 것을 확인하기 어렵게 만들었으나 결국 물길을 바꿔놓으니 살과 같은 모래가 곳곳에서 패이게 되는 것이다.
그 와중에 마냥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이 철부지 어린아이들처럼 다가왔다. 지금도 바다로 이어지는 급경사로 인해 해마다 사람이 죽어도 보도되지 않고 있다는 이 바다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태계의 변화를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를 엿볼 수 있게 된다.
더 위험해질 것은 불 보듯 뻔한 결과인데, 지금 당장 유희를 포기하지 못하는 우리는, 돌봐야 할 대상을 알아보지 못하고, 또 자신이 받은 고귀한 책무성을 잊은 듯해 보인다.
강과 바다는 우리 몸의 내장 기관과 혈관처럼 다가온다. 우리는 이 지구의 몸을 이루는 한 세포들과 같다.
사람이 죽을 때에 그의 몸에 있는 균들은 더는 그 몸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판단하고 다른 몸을 찾아간다고 들었다. 살이 패이고, 이식되고, 죽어가는 몸을 피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시면서 온전히 하느님이시다. 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께서 이루시는 아버지와의 일치와 성령과의 일치를 말씀하시며, 우리를 이끄시는 성령이 바로 당신께로부터 발하시는 분이심을 기억하게 하신다.
세례로부터 나의 모든 삶이 이 예수님의 삶으로 정향돼 있었음에 머무르며 그분의 몸을 이루는 교회의 삶에서 나는 얼마나 자주 이 성령께 깨어 사는 삶이었는지 묻고 있다.
분명한 것은, 성령께 인도되신 예수님의 삶이 당신을 희생하여 오늘 우리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을 살리는 삶이라는 것이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땅과 바다의 울부짖음은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이끄시는 성령의 재촉하심이다.
과연 우리는 피조물을 돌보는 우리 사명을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치를 이루는 하느님 생명에 참여하며 오늘 생명을 돌보는 우리 사명을 살아보자. 사랑!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