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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엽 신부가 만난 사람들] (29) 변호사 이주희 마르타

dariaofs 2022. 7. 25. 00:14

변호·성서모임 봉사, 모두 주님 도구로 쓰이는 기쁘고 보람찬 일

 

▲ 이주희 변호사는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하느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가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집무 중이다.



이주희(마르타)씨는 서울대 외교학과와 서강대 로스쿨을 졸업한 재원이다. 서울 서초동에서 7년 동안 변호사 생활을 했고 현재는 국민권익위원회 고충처리국에서 전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조사관들의 민원업무를 돕고, 민원에 관한 의결서를 검토하는 중요한 일이다. 그녀는 항상 어떤 봉사든 열심히 하고 주변 분위기를 즐겁게 하며 밝고 긍정적이다. 무엇에든 적극적이고 배우는 것을 좋아해서 오랫동안 밴드 활동도 했다.

 

목동성당에선 신참(?)인데도 청년성서모임 대표봉사자를 맡았는데, 열심히 발로 뛰어 1년 동안 성서 공부하는 청년들이 100명 가까이 될 정도로 본당 성서모임을 활발하게 일구어낸 성실파이기도 하다.

▶어떻게 신자가 되었는지요?

어머니를 따라 성당에서 4살 때 유아세례를 받았어요. 언니와 함께 세례를 받았는데 예쁜 옷을 입었던 희미한 기억만이 남아있어요. 사실 어릴 때는 세례명 ‘마르타’가 마음에 안 들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저도 마르타 성녀처럼 활동적이고 열심히 살고 싶어졌어요. 초등부 주일학교 교사 때 신부님께서 “넌 마르타랑 참 비슷하다”라고 하신 말씀에 무척 기뻤어요. 그때 일을 주도하고 앞장서서 했나 봐요.

▶변호사가 되는 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초등학생 때 배금자 변호사의 책 「이의 있습니다」를 우연히 보고 이런 직업도 좋겠다는 꿈을 가졌어요. 미디어에 관심이 많아 기자나 PD가 되고 싶었는데 기자 시험에 번번이 떨어졌어요.

 

한창 진로를 고민 중이던 당시는 우리나라에 로스쿨 제도가 막 도입이 되던 시기였어요. 그리고 얼마 후 변호사에 도전했어요. 변호사도 소송을 통하여 의미 있는 판례를 만들어냄으로써 보람찬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요.

 

“인간이 좋아하는 일을 업(業)으로 삼을 때 인간의 진정한 자유가 실현된다”는 마르크스의 말처럼, 변호사라면 좋아하고 보람찬 일을 동시에 하며 저의 자유가 실현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감도 있었어요.

▶하느님께서 주신 탈렌트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저에게 주신 탈렌트는 어릴 때부터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인 것 같아요. 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고, 제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생기면 최대한 도움이 되고자 애를 쓰는 편이에요.

 

이런 마음은 변호사가 되었을 때 사람들과 소통할 때 큰 도움이 되어요. 이런 저의 마음이 변호사 업무와 잘 맞는 것 같아요.

▶삶의 가장 큰 시련은 무엇이었고,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로스쿨 재학 시절인 거 같아요. 저는 대학에서 법학을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해 법 공부가 매우 생소했어요. 로스쿨 1학년 1학기 첫 민법 중간고사의 ‘찐 꼴찌’였어요. (웃음)

 

졸업시험도 제때 통과를 못 해서 동기들이 변호사 생활을 시작할 때 저는 학교를 1년 더 다녀야 했죠. 그다음에 변호사 시험도 겨우 붙었어요. 로스쿨에서 뛰어난 학생들과의 경쟁이 쉽지는 않았지요.

 

힘든 로스쿨 생활을 하는 동안 학내에서 진행하는 가톨릭 성서모임에 참석했어요. 창세기 연수 때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하느님의 사랑을 처음 느껴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나요. 그 기억으로 힘든 시절을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어요.

▲ 이주희 변호사(맨 왼쪽)가 정호승 시인 강의 후 관계자들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하느님을 체험한 적이 있나요?

저는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필리 4,13)는 성경 구절을 좋아합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하여 부상을 극복하고 금메달을 딴 로라 윌킨스가 암송한 구절로도 유명하지요.

 

제게도 이 말씀의 힘을 체험할 일이 있었어요. 언젠가 지방 경찰청에서 입회하는데 오후에 갑자기 다른 사건 피의자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는 거예요.

 

급히 서울 사무실로 돌아오니 자정이 다 되었고, 5시간 안에 영장 청구서를 방어할 변호인 의견서를 준비해야 했어요.

 

워낙 장기간 수사로 이어진 사건이라 쟁점도 많았어요. 앞의 성경 말씀을 크게 써서 컴퓨터 앞에 붙여놓고 속으로 화살기도를 하면서 변론 준비를 시작했어요.

 

기적처럼 시간 내에 서류를 마친 후 바로 기차 타고 지방법원에 내려가 변론을 끝냈고 다행히 영장이 기각되었어요. 그날 밤 하느님께서 나를 도구 삼아 내 손을 움직이셨다고 믿고 있어요. 기적 같은 체험이었어요.

▶성서모임에서는 어떤 것이 좋았나요?

저는 탈출기 공부와 연수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탈출기 직장인 연수를 다녀왔는데요, 거기서 허영엽 신부님 강의를 들었던 것이 정말 좋았어요.

 

일상생활과 연결한 강의여서 성경 말씀의 의미가 마음에 잘 와 닿았고, 나와 세상에 대한 이해가 넓어졌어요. 탈출기 공부를 계기로 저도 본당에서 성서모임 봉사를 시작했고, 마르코ㆍ요한복음 공부까지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지요.

▶일하면서 가장 보람이 있던 적은 언제인가요?

변호사 시절에는 승소하거나 무죄를 선고받을 때 가장 기뻤는데, 지금은 공직에서 고충 민원을 처리하면서 보람을 느낍니다. 최근에 5ㆍ18 민주화 항쟁 때 돌아가신 안병하 치안감 사건에 참여했어요.

 

안 치안감은 5ㆍ18 민주화 항쟁 때 시민들에게 발포 명령을 거부하여 강압으로 사직서를 내고 고문 후유증으로 돌아가셨어요. 당시 강압으로 사직하신 시점이 보상법률인 1980년 해직자 보상법의 기간과 어긋나서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셨어요.

 

이에 유족이 의원면직 취소 처분과 미지급 급여를 요청하였는데, 이 사안은 정부 부처 사이의 의견이 달랐고 시간도 많이 지나 해결이 어려웠어요. 저는 의결서의 판단 부분에서 법리를 구성했어요.

 

담당 조사관님께서 저의 법리 부분이 관계기관을 설득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고 하셨어요. 결국, 통과되어 유족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드릴 수 있어서 큰 보람이 되었어요.

▶인생의 후배들에게 꼭 이 말만 하고 싶다면?

‘과거는 외국이다. 거기서 사람들은 다르게 산다.’ 영국 작가 L.P. 하틀리(L.P. Hartley)의 소설 「중개인」(The Go-between, 1953)의 첫 문장이에요. 저는 모든 이들이 누군가의 과거가 아니라 자신의 현재를 살길 희망합니다.

 

제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죠. 과거는 외국일 뿐 나의 현재가 아님을 깨닫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탈출기에서 하느님께서 말씀하실 때 시제는 항상 현재, 그만큼 하느님께서 제게 원하시는 것은 나의 현재에 집중하는 삶이라고 생각해요.



그녀가 하는 일은 한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에, 두렵고 힘든 순간이 찾아올 때가 많다. 그녀는 쉽게 두려워하고 자신감이 많이 없는 성격이지만 “두려워 마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떠올린다고 한다.

 

결국, 혼자 부딪혀야 하는데 그 순간 나를 지켜주시는 분은 하느님뿐이라는 생각에서다. 그 말씀을 믿으면서도 항상 두렵고 떨리지만, 하느님께서 이끌어주실 것을 믿는다고 했다.

 

그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믿음’이다. 우리 사회에 이런 변호사들이 더 많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인터뷰 내내 떠나지 않았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