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2년 8월 11일 성녀 클라가 동정 기념일

dariaofs 2022. 8. 11. 01:36

복음: 마태 18,21-19,1: 매정한 종의 비유

 

베드로가 주님께 형제가 죄를 지으면 일곱 번까지 용서해 주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예수님은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22절) 일흔일곱이라는 말은 십자가에서 주어진 용서를 모든 세대가 다 받았다는 것이다.

 

일흔일곱 번이란 루카가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그분의 족보를 역으로 기록하였다.

 

루카가 꼽은 세대는 바로 일흔일곱 세대이다(루카 3,23-38 참조). 하느님께서는 이 세대를 모두 용서하셨으니 우리도 그만큼 모두 용서해야 한다.

 

복음에서 한 임금이 자기 종들과 셈을 하기 시작하였다. 첫 번째로 일만 탈렌트를 빚진 종이 끌려왔다.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26절)

 

이는 종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아내와 자식을 판다는 것은 하느님의 기쁨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되는 것을 말한다.

 

판다는 것은 하느님에게서 멀리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종은 “제발 참아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하고 말하였다(26절).

 

주인은 종이 청한 것보다 더 많이 베풀었다. 주인은 그 종이 이 일을 통해서 동료 종들에게 관대해지고, 또한 큰 망신을 당하지 않으면서도 어느 정도 책임을 지도록 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용서를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받았다.

 

용서의 조건은 우리 동료들이 우리에게 잘못한 백 데나리온이란 사소한 잘못들을 용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종은 자기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형제의 죄를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우리도 같은 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동료를 감옥에 가두고 자기에게 빚진 백 데나리온을 갚게 하였다는 말을 듣고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34절)

 

이는 그 종이 영원한 벌을 받게 되었다. 결코, 빚을 다 갚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이 사랑을 본받지 않는 사람은 의로운 심판관으로부터 가혹한 벌을 받을 것이다.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하실 것이다.”(35절)

 

주인이 종에게 자신과 가족을 팔라고 했을 때, 분노에 찬 말은 아니었다. 자비의 순간이었다. 그때 주인은 화를 내지 않았다.

 

지금 이 말은 분노와 처벌과 응징이 담긴 말씀이다. 예수께서는 너희 아버지라고 하지 않으시고 내 아버지라고 하셨다.

 

사악하고 악독한 사람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자비를 입은 만큼 우리도 우리 형제들에게 자비로워야 할 것이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

 

이탈리아의 아시시에서 귀족인 오프레두치오와 오르톨라나디 피우미의 딸로 태어난 성녀 클라라(Clara)는 용모도 뛰어나서

 

12세 때 혼인을 서두르는 부모들의 강권을 물리쳤으며, 1212년 사순절 때 성 프란치스코의 설교에 크게 감명을 받고 수도생활을 결심하였다.

 

그녀는 성지 주일에 부모 몰래 집을 빠져나와서 포르치운쿨라(Portiuncula) 성당에서 성 프란치스코로부터 수도복을 받았다.

프란치스코는 아직 여자 수도원을 세우지 않았으므로, 바스티아 근방 성 바오로(Paulus)라는 베네딕토 수도원에 그녀가 머물게 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들이 그녀를 강제로 집으로 데려가려고 하므로 끝까지 항거하다가, 산 안젤로 디판초로 옮겼는데 그 얼마 후에 15세 된 동생 아녜스까지 언니에게 와서 함께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녀의 부친은 12명의 장정을 무장시켜 아녜스나마 데려오려고 하였지만, 클라라의 간절한 기도의 힘에 의해 끝내 아무도 데려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성 프란치스코는 이들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하였고, 산다미아노(San Damiano) 성당을 모원으로 확정하였으며, 이들을 위한 생활양식을 써줌으로써 가난한 부인회가 탄생된 것이다.

 

이 회가 잉글랜드(England)에서는 작은 수녀회(Minoresses)로 불리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클라라회이다.

 

클라라는 1215년 인노켄티우스 3세(Innocentius III)로부터 ‘가난의 특권’을 얻었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애긍에 의존해도 좋다는 허락이다.

 

그 후 클라라는 이 특권을 유지하는데 늘 고심하였고, 교황이나 다른 성직자들이 수녀들의 규칙이 너무 엄격하다고 반대해서 많은 곤경을 겪었다.

 

클라라회의 수녀들은 당시 어느 수도회보다도 엄격하고 가난하였다.

 

그러나 클라라를 비롯한 동료들은 높은 수준의 관상가들이었으며, ‘복음적 완덕의 가장 완전한 표현’이 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그녀는 약 40년 동안 공동체를 지도하였지만 늘 건강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 성 프란치스코의 뜻이 담긴 클라라회의 회칙은 그녀가 운명하기 이틀 전에야 겨우 승인을 받을 정도로 그 엄격성 때문에 논란이 많았던 것이다.

 

클라라회는 급속도로 이탈리아 전역과 프랑스, 독일로 보급되었고 교황과 추기경 및 주교들의 자문 역할로써 떨친 그녀의 영향도 지대하였다.

 

그녀는 수많은 기적으로 더욱 영광스럽게 되었는데, 1241년 그녀의 기도로 프레데릭 2세의 난폭한 군인들로부터 아시시를 구출하기도 하였다.

 

그녀는 1253년 8월 11일에 아시시에서 운명하였는데, 2년 후에 곧바로 시성되었다. 클라라는 텔레비전의 수호성인이고 문장은 성체 현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