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획 특 집
"아들, 당당히 죽어라"···안중근 母 '조마리아'를 아시나요?
dariaofs
2022. 8. 18. 00:17
독립운동가의 어머니 '조마리아'
젊은 시절부터 독립운동 지속해
안 의사에 "목숨 구걸하지 마라"
조마리아 여사(왼쪽)와 안중근 의사 /국가보훈처
"아들아, 나라를 위해 떳떳하게 죽거라".
사형선고를 받은 친아들에게 어머니가 보낸 것으로 알려진 편지 내용이다. 옥중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던 그에게 어머니는 새하얀 수의도 손수 지어서 보낸다.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 이야기다.
15일 여성경제신문이 8·15 광복절 77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에 대해 알아봤다.
"아들아, 나라를 위해 떳떳하게 죽거라".
사형선고를 받은 친아들에게 어머니가 보낸 것으로 알려진 편지 내용이다. 옥중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던 그에게 어머니는 새하얀 수의도 손수 지어서 보낸다.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 이야기다.
15일 여성경제신문이 8·15 광복절 77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에 대해 알아봤다.
조 여사는 1862년 태어나 1927년 숨을 거두었다. 황해도 해주군에서 태어난 그는 안중근, 안성녀, 안정근, 안공근 등 3남 1녀를 낳았다. 조 여사는 천주교 신자이기도 했다.
국가보훈처 등에 따르면, 조 여사는 일제강점기 당시 임시정부를 재정적으로 후원하는 등 독립운동에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22년 조 여사는 둘째 아들 안정근과 상하이로 이주했고, 임시정부 경제후원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조 여사뿐만 아니라 그의 딸 안성녀 여사도 독립운동에 적극적이었다.
국가보훈처 등에 따르면, 조 여사는 일제강점기 당시 임시정부를 재정적으로 후원하는 등 독립운동에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22년 조 여사는 둘째 아들 안정근과 상하이로 이주했고, 임시정부 경제후원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조 여사뿐만 아니라 그의 딸 안성녀 여사도 독립운동에 적극적이었다.
안 여사는 남편인 권승복 씨와 함께 양복점을 운영하면서 군복 수선, 제작, 독립자금 전달 등 독립운동 활동을 꾸준히 했다. 이 밖에도 김아려, 안미생, 오항선, 조순옥 등 조 여사 집안엔 여성 독립운동가가 많았다.
사형선고를 받고 있는 안중근 의사 /국가보훈처
이처럼 독립운동으로 일생을 살아온 조 여사에게도 결국 비극이 찾아온다. 1909년, 만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 즉 그의 아들은 일제에 의해 사형을 선고받게 된다.
그러자 조 여사는 곧장 안 의사에게 자필로 편지를 써 "네가 항소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라며 끝까지 독립운동에 헌신적인 모습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독립운동으로 일생을 살아온 조 여사에게도 결국 비극이 찾아온다. 1909년, 만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 즉 그의 아들은 일제에 의해 사형을 선고받게 된다.
그러자 조 여사는 곧장 안 의사에게 자필로 편지를 써 "네가 항소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라며 끝까지 독립운동에 헌신적인 모습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안 의사는 항소하지 않았다. 1년 뒤 1910년 안 의사는 여순감옥에서 순국했다.
안 의사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이후에도 조 여사는 독립운동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다 1927년, 그는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 2008년 정부는 조 여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조마리아는 생전에 '여중군자(女中君子)', '여걸(女傑)'이라는 평을 들었을 정도로 신망이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안 의사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이후에도 조 여사는 독립운동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다 1927년, 그는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 2008년 정부는 조 여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조마리아는 생전에 '여중군자(女中君子)', '여걸(女傑)'이라는 평을 들었을 정도로 신망이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마리아와 함께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여성 독립운동가 정정화는 조마리아에 대해 회상하면서 "너그러우면서도 대의에 밝은 분이었다"고 회고했다고 국가보훈처는 밝혔다.
다만 조 여사 유해는 프랑스조계 만국공묘(萬國公墓)의 월남 묘지에 안장했지만, 이후 도시개발로 묘지 터가 개발되고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무덤을 찾을 수 없게 됐다.
다음은 조 여사가 그의 아들 안 의사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진 편지 내용이다.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하면 어미는
다만 조 여사 유해는 프랑스조계 만국공묘(萬國公墓)의 월남 묘지에 안장했지만, 이후 도시개발로 묘지 터가 개발되고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무덤을 찾을 수 없게 됐다.
다음은 조 여사가 그의 아들 안 의사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진 편지 내용이다.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하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딴 맘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아마도 이 어미가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너의 수의(壽衣)를 지어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 재회하길 기대하지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거라.
너의 죽음은 너 한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딴 맘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아마도 이 어미가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너의 수의(壽衣)를 지어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 재회하길 기대하지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거라.
김현우 기자(여성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