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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엽 신부가 만난 사람들] (36) 공연 제작자 이슬(젬마)

dariaofs 2022. 10. 8. 00:15

“언젠가 성경 작품 무대에 올려 주님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요”

 

                                                ▲ 공연 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는 이슬씨


이슬(젬마)씨는 예술고등학교부터 대학 때까지 성악을 전공했고, 영국 유학 후 예술 경영과 기획을 더 배우기 위해 현재 예술학 협동과정 전공으로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그리고 공연제작사 ‘하람컴퍼니’와 예술교육 단체인 ‘듀클’을 운영하는 젊고 당찬 CEO이다. 그녀는 뮤지컬 및 공연 축제를 직접 제작, 기획하고 있으며, 다양한 예술교육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녀는 건강이 크게 위험스러운 순간에도 오로지 하느님께 의지하며 자신이 원한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낸 대단한 의지의 소유자이다.

Q. 학창 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었나요?

A.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학생이었어요. 가장 좋아하던 것도 성당에서 노래하던 거였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는 성가대 활동을 정말 열심히 했는데, 학교 마치면 바로 가는 곳도 성가대 연습이었어요.

 

20대 때도 연희동본당 한푸름 청년 성가대에 나가기도 했었고요. 그리고 부모님이 예술 쪽으로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주셔서 글쓰기와 미술, 악기 등을 익혔습니다.

 

그때 그냥 재밌게 배웠던 것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고, 여러 콘텐츠를 만들 때 큰 도움이 될 줄 몰랐죠.

Q. 쉴 틈 없이 바쁘게 살았네요. 지금 하는 일을 조금 자세하게 설명해주세요.

A. 어렸을 때부터 성악을 공부해서 오페라를 할 거로 생각했어요. 노래하는 것도 연기하는 것도 너무 재밌었거든요. 그런데 오페라는 음악적인 표현에 집중하다 보니 극 내용보다는 음악만 귀에 남아서 아쉽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뮤지컬을 관람하러 가게 됐는데, 전율이 흐르는 느낌이었어요. 노래, 춤, 연기가 조합된 종합예술이 제게는 마치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이었어요. 다음날 뮤지컬 배우인 남경읍 선생님의 학원을 찾아서 그날 밤 무작정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어요.

 

선생님께서도 과거 뮤지컬 배우가 되겠노라 시골에서 상경했던 경험이 있어서 늦은 시간까지 절 기다려주셨어요. 그렇게 그곳에서 공부를 시작하고 원하던 뮤지컬학과에 진학하여 뮤지컬 배우가 되었어요.

 

그러다가 잠시 공부하러 떠났던 런던에서 많은 공연을 접하면서 “나도 저런 멋진 작품들을 만들어보고 싶다”라는 꿈을 꾸고 귀국 후 공연 제작과 기획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 이슬씨가 하람컴퍼니에서 강연하고 있다.


Q. 실행력이 갑이네요.(웃음) 하느님이 주신 재능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A. 부지런함인 것 같아요. 하느님께서 남들보다 한발 느리던 저에게 부지런함을 주심으로 따라갈 수 있었어요. 부지런하게 하다 보면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덜 후회하더라고요.

 

시간을 쪼개 여행도 많이 다녀요. 일도 휴식도 부지런하게 하는 타입이에요. 여러 곳을 다니며 일해야 하는 제 직업상 너무 감사한 탈렌트죠.

Q. 삶에서 가장 큰 시련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A. 코로나 시기에 심리적으로 힘들었는데 하필 그 시기에 패혈증에 걸렸어요. 서울 시내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모두 거절당하다가 지방 병원에 겨우 입원할 수 있었어요. 그때 중환자실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을 겪었어요.

 

지금도 병원을 보면 불안감이 불쑥불쑥 올라오고, 길에서 구급차만 봐도 무서워져서 잘 걷지를 못하겠더라고요. 주님께 매달려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했고, 지금은 그 기도의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했어요.

Q. 삶의 길잡이나 지표가 되어준 성경 말씀이 있다면?

A.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창세 26,24)란 말씀은 항상 제게 큰 힘이 되어줘요. 오랜 시간 자취를 하면서도, 홀로 외국에 공부하러 떠났을 때도,

 

제작일을 해보겠다고 무작정 뛰어들 때도 모두 다 저 말씀 덕분에 힘을 내어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 나는 혼자가 아니야. 함께 해주시니까 괜찮을 거야.” 그렇게 마음먹으니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Q. 청년 성서 연수는 어떤 의미가 됐나요?

A. 탈출기 연수가 정말 뜻깊은 시간이었어요. 일에 파묻혀 지내며 바쁘다는 핑계로 성당도 잘 안 나가게 되고 그냥 기계처럼 일만 하던 때였어요.

 

기도조차 잊고 지내는 저를 발견하고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무작정 정동에서 운영하는 성서모임을 신청했어요.

 

탈출기 연수도 함께 신청해서 다녀오고 거기서 허영엽 신부님을 만날 수 있었고 강의들은 제 마음을 다시 흔들어 놨죠. 그 뒤로 종종 성서모임 분들과 나눔을 가졌었어요. 냉담에서 탈출할 수 있게 만들어준 귀한 시간이었어요.

▲ 이슬씨와 허영엽 신부


Q. 살면서 ‘이것이 바로 하느님 기적이다’라고 느꼈던 체험이 있다면?

A. 저는 제가 일을 하는 것이 기적 같아요. 제가 뮤지컬 배우로만 살다가 갑자기 공연을 만드는 사람이 되었거든요. 막연하게 나만의 예술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기획이나 예술경영을 전공하지 않아서 과연 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어요.

 

제가 뮤지컬과 축제를 제작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모두 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올 10월에 두 편의 뮤지컬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그것도 기적처럼 잘 마쳤으면 하고 기도하고 있어요.

Q. 일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적은 언제인가요?

A. 지방에서 어르신들을 위한 단체 공연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공연이 끝난 뒤 어르신들이 “덕분에 이런 문화생활도 해봤다.

 

감사하다”라고 해주시더라고요. 마을회관에서 하는 초청 행사들만 접해보셨나 봐요. 고생했다면서 한 할머니가 허리 가방에 넣어두셨던 호박 젤리를 주시더라고요. 그 젤리가 참 값지고 달았습니다.

Q. 일하면서 언제 기도를 가장 열심히 했나요?

A. 공연을 제작하다 보니 아역배우들과 함께할 때가 있는데, 대개 체계적으로 교육된 아역배우가 오게 되거든요. 한번은 재능은 있지만 예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친구들을 직접 가르쳐서 무대에 올려보고 싶었어요.

 

다문화 학생에게 기회를 주고 공연할 수 있도록 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어린 학생이 자기보다 어린 동생들을 직접 돌봐야 하는 상황이라 연습에 거의 참여하지 못했죠. ‘이러다 공연 때 큰일 나는 게 아닌가. 지금이라도 전문 아역배우를 불러와야 하나?’ 고민되었지만,

 

그 학생의 꿈을 이뤄주고 싶어서 그대로 진행했어요. 하느님께서 함께 해주실 것을 믿고 학생과 기도도 하고요. 그런데 이 친구가 막상 무대에 오르니까 하나도 떨지 않고 재능을 마음껏 뽐내며 공연하더라고요. 정말 즐겁게요. 이 학생의 간절한 기도가 닿았구나, 이 친구의 꿈을 이뤄주시는구나 싶어서 기뻤어요.

Q. 같은 길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예술계통은 결과가 빨리 나오지 않는 직업군이잖아요. 요행을 바랄 수도 없고요. 그래서 내가 고생하는 기간에 비해서 결과물이 좋지 않거나 그 과정이 너무 길어지다 보니 금방 지쳐서 그만두는 후배들이 많아요.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그 과정이 그저 즐거울 수만은 없을 거 같아요. 힘들겠지만 그 시간을 잘 견뎌냈으면 좋겠다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지치면 잠깐 쉬었다가 충전해서 다시 잘 일어나다 보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 도달할 수 있을 거예요. 저 역시 더디지만 천천히 길을 향해 가고 있는 한 사람으로 그런 얘기들을 해주고 싶습니다.

요즘도 특수교육 대상 학생들과 함께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고 있는 이슬씨는 서툴지만 진심을 담아 노래하는 학생들 모습이 너무 예쁘고 맑고 순수한 친구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최근에는 김천교도소에서 노래 봉사를 했는데 주님이 주신 탈렌트가 얼마나 감사한지 느끼는 순간이었다고 했다.

 

자신의 목소리로 주님의 말씀을 노래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어디라도 기꺼이 가고 싶다는 그는 언젠가는 성경 말씀을 담은 공연이나 문화 소외계층을 위한 찾아가는 공연 봉사를 꿈꾸고 있다.

허영엽 신부 (서울대교구 사목국 영성심리상담교육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