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20일 대림 제3주간 수요일
사진설명: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6-38
26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29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3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33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6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38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종종 신부 중에 새벽 미사에 늦게 들어가는 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물론 신부도 인간이기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지 못해서 늦게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매번 늦는다는 것입니다. 같은 신부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미사를 하기 전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평일 미사는 1시간 전에, 주일과 대축일 미사는 30분 전에 고해소 안으로 들어가서 성사를 주고 미사 준비를 합니다.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보기 위해 들어오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이는 저의 미사를 위한 준비이고, 저의 정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급하게 미사에 헐레벌떡 들어가는 신부들을 안타깝게 생각했고, 그러면 안 된다면서 판단하기도 했습니다.
며칠 전, 주일 저녁 미사 때에 부랴부랴 제의방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고해소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곧바로 미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제관 시계를 잘못 본 것입니다.
시계를 보고 아직도 한 시간이나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시계가 멈춰있었던 것입니다.
제대로 살지 못한다고 다른 신부를 비판하던 저였지만, 저 역시 그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전혀 그러지 않을 것처럼 자신 있게 말했지만, 저 역시 언제든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기 역시도 그렇게 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겸손함을 가지고 있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하느님도 심판하지 않는데, 뭐가 그리 잘 났다고 남을 비판하고 단죄할 수 있을까요?
이런 행동들이 하나의 습관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더 나아가 하느님에 대해서도 온갖 불평불만을 하면서 판단하고 있지 않습니까?
가브리엘 천사가 성모님을 찾아가서 엄청난 소식을 전해줍니다.
바로 예수님 잉태 소식이지요. 이 세상을 구원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다는 커다란 기쁨입니다.
그래서 가브리엘 천사의 첫 마디가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 남자를 알지 못하는 성모님의 지금 처지입니다.
당시는 결혼 전에 아기를 갖게 되면, 간음했다는 이유로 투석형을 당해 죽을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기쁜 소식이라 할지라도 거부할 수밖에 없으며, 하느님의 이런 선택은 잘못되었다면서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활동을 가로막지 않습니다. 여기에 어떤 판단도 내리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활동은 무조건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아셨던 것입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우리의 교만함으로 얼마나 많이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었을까요?
성모님과 같은 겸손함을 통해서만이 하느님의 활동에 함께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명언: 세상은 고난으로 가득하지만, 고난의 극복으로도 가득하다(헬렌 켈러).
조명연 마태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