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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특집] 발달장애인 몸짓 투박해도 친절과 커피 맛은 ‘찐’ 강릉 ‘프코의 집’

dariaofs 2023. 1. 9. 00:11

‘애지람’ 발달장애인 일터 카페 ‘프코의 집’

 

▲ 발달장애인 카페 ‘프코의 집’에서 일하고 있는 애지람 식구들과 직원들, 원장 엄삼용 수사가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지금처럼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더 많은 장애인들이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갔으면 합니다.”

작은형제회 프란치스코회가 위탁 운영하고 있는 춘천교구 사회복지회 산하 ‘애지람’(원장 엄삼용 수사) 발달장애인과 직원이 일출을 바라보며 다짐한 2023년 새해 소망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철저하게 분리돼 살아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발달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 애지람은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살아가고자 한다.

 

6명의 발달장애인과 그 꿈을 실현하고 있는 카페 ‘프코의 집’을 찾았다. 프코의 집은 작은형제회가 2021년 3월 발달장애인 일자리 마련을 위해 설립한 카페로, ‘프란치스코의 집’이라는 뜻이다.


▲ 프코의 집 전경.


단정한 작업복에 90도 인사로 손님 맞이

강릉역에서 200m 떨어진 동부시장에 위치한 발달장애인 카페 ‘프코의 집’. 위치상으로도 강릉의 중심이면서 애지람의 지역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애지람 소속 2~4명의 발달장애인들이 함께 살고 있는 자립홈 6군데와 홀로서기를 하고 있는 독립홈 5군데가 카페를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카페는 이들이 언제든 들려 얘기할 수 있는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명절 당일을 제외하고 매일 문을 열고 있다.

카페에서 일을 배우며 사회와의 소통을 준비하는 애지람 식구들. 카페인 동시에 발달장애인 직무훈련장이기도 하다. 이들은 모자부터 바지까지 단정한 작업복을 차려입고 90도로 인사하며 손님들을 맞이한다.

 

프코의 집을 처음 방문하는 손님들은 다소 어눌한 말투와 투박한 몸짓에 살짝 당황하기도 하지만, 따뜻한 카페 분위기 덕에 금세 적응한다. 간단한 대화와 눈인사도 건넨다.

 

커피 한 잔으로 자연스레 벽이 허물어지는 순간이다. 초반에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먹는 것을 좋아했던 한 식구는 손님 주문한 디저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어 오해를 받기도 했고, 날짜를 잘 체크하지 못해 쉬는 날에도 나오는 경우가 있었다.

이옥희 직업훈련 매니저는 “처음에는 손님이 와도 인사조차 하지 못했다”며 “2년 가까이 수없이 연습을 반복한 끝에 간단한 소통까지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칠 때도 있었지만, 식구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없는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커피를 내리는 것부터 청소와 설거지 등 장애 정도와 업무 능력에 따라 각자 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한다.

“재밌어요. 좋아요.”

짧은 소감이지만, 맡은 직무를 어떻게든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통해 일에 대한 열정과 진심을 전했다.

무엇보다 커피가 맛있다고 소문났다. 발달장애인들의 사회 참여를 돕겠다는 뜻으로 후원자들과 기업이 나서 원두와 우유를 후원하고 있다. 그 덕에 저렴한 가격으로 양질의 커피를 제공하고 있다.

엄삼용 수사는 “이곳은 직원들의 노력과 후원자들의 정성으로 장애인들도 사회에서 함께할 수 있다는 홍보의 장이 되고 있다”며 “나아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지는 사회통합기능도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 '프코의 집'에서 일하고 있는 애지람 식구들.


무장애 카페·제로 웨이스트 카페


일상의 한 부분이 된 커피 한 잔의 여유. 하지만 장애인들에게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 잔 주문하는 일조차 큰 도전이다. 프코의 집은 ‘무(無)장애’ 카페다. 장애인들이 장애를 느낄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들어가는 입구에는 턱이 없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서는 표정과 제스처, 사진, 글자 등을 사용해 주문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덕분에 몸이 불편한 이들도 부담없이 방문해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누리고 있다.

아울러 프코의 집은 600개가 넘는 카페가 밀집한 강릉에서 유일하게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고 있다.

 

땅에 분해되는 대나무 재질로 만든 빨대와 감자전분으로 만든 테이크아웃 잔을 제공한다. 우유팩이 모이면 일주일에 한 번 행정복지센터(주민센터)를 방문해 휴지로 교환한다. 쇼핑백도 신문지로 만든다.

친환경에 익숙해진 카페 식구들은 생태지킴이로서 오히려 지역 주민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 애지람 식구와 직원들이 일출을 보며 2023년 새해 다짐과 소망을 밝히고 있다.


사회 속으로! 희망을 내리는 카페

이 모든 일들이 아직은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지만, 애지람은 언젠가 식구들 홀로 설 수 있는 날을 희망한다.

‘사회 속으로!’라는 모토로 애지람은 발달장애인들을 세상과 소통시키기 위한 노력에 전념하고 있다. 지역사회 속의 독립된 한 구성원으로서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애지람 변중섭(빈첸시오) 국장은 “장애를 가졌다고 욕구가 없고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가 없는 게 아니다”며 “이들을 동정의 대상자로서만 대하는 게 아니라, 비장애인들과 같은 일상을 살게 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이어 “무엇보다 장애인들도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야 한다”며 “그런 의미에서 이곳 카페가 가지는 상징성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애지람 김태임(바실리사) 과장은 “가족처럼 보살피고 도와주는 직원들의 헌신으로 조금씩 성장하는 식구들을 본다”며 “언젠가 사회 속에서 자연스럽게 융화될 수 있는 날을 고대한다”고 밝혔다.

현실적인 어려움은 적지 않다. 오랜 시간 도와주고 기다려야 하며, 때론 피해도 감수해야 한다. 엄 수사는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홀로 설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장애인들을 사회 속에 참여시키는 데 기업이나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기는 힘듭니다. 재정 문제를 비롯해 여러 피해를 감수해야 하죠. 교회가 나서야 합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독립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게 말입니다. 분명 쉽지 않은 과정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신앙 안에서 더 기다리고 희망합니다.”


박민규 기자(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