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나 교리 달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형제자매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는 본래 하나였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다.(요한 17,21)
그러나 1054년 동·서방교회의 분열, 1517년 종교개혁, 1534년 영국 국왕을 수장으로 하는 ‘수장령’ 제정 등으로 교회는 갈라지게 됐다.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 개신교는 교회 명칭과 구조, 교리에 다른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모두 ‘그리스도교’에 속하며 한 분이신 주님을 믿는 형제자매들이다.
교회는 매해 1월 18일부터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인 25일까지를 ‘일치주간’으로 정하고 갈라진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바라며 함께 기도를 바친다. 일치주간을 맞아 정교회, 성공회, 개신교의 탄생과 특징, 일치운동의 역사를 알아본다.
■ ‘동방 전통의 계승자’ 정교회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온 교회는 1000년 넘게 하나의 교회로 역사를 이어오다 1054년 동방교회(정교회)와 서방교회(가톨릭)로 분열됐다. 동방교회는 스스로를 ‘바른 교회’라는 의미의 정교회(Orthodox Church)라고 불렀다.
가톨릭과 정교회가 분열된 것은 1054년 레오 9세 교황 재위 시, 체룰라리우스 총대주교가 재치권상의 로마 수위권을 부인하고, 제병에 누룩을 넣지 않는 관습과 사제 독신제를 거절하면서 비롯됐다.
정교회는 고대 로마 제국의 동쪽 지역에서 이교도와 이단들에 맞선 투쟁 속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이 성숙해졌고, 동방의 도시들에서 열린 세계 공의회를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 요소들이 선언됐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가 서방 전통의 계승자라면 정교회는 동방 전통의 계승자라고 볼 수 있다. 정교회 신자들은 스스로가 ‘참된 가르침’을 뜻하는 정통이며, 오류와 왜곡으로부터 자유로운 신앙을 계승해 왔다고 믿는다.
정교회는 동·서방교회 분열 역사에서 알 수 있듯,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교회는 잘못할 수 없고 타락할 수 없다는 교회의 무류성을 가르친다.
정교회가 한국에 전파된 것은 1900년 1월의 일로, 러시아인 흐리산토스 세헷콥스키 수사 신부가 서울에 도착하며 한국 정교회 역사가 시작됐다. 현재 한국 정교회 대교구가 설치돼 있다.
■ ‘영국 국교회로 분리’ 성공회
성공회라는 명칭은 ‘하나이고, 거룩하고(聖·Holy), 보편되고(公·Catholic), 사도적인 교회’라는 신앙고백 가운데 ‘성’과 ‘공’ 두 자에서 유래했다.
성공회는 영국 왕 헨리 8세(재위 1509~1547년)에 의해 가톨릭교회로부터 갈라져 나가 영국 국왕을 최고 통치자로 삼으면서 시작됐다. 성공회를 본래 ‘영국 국교회’(Anglican Church)라고 부르는 것도 성공회의 역사와 관련된다.
영국에서 성공회가 시작된 발단은 헨리 8세가 아내 캐서린과 맺은 혼인을 무효로 선언해 달라고 1529년 교황청에 청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건이다.
헨리 8세에게 압력을 받은 영국 성직자 전체회의는 1531년 “그리스도의 법이 허용하는 한 국왕은 영국교회와 그 성직자들의 최고 으뜸이며 보호자”라고 선언했다.
이어 1534년에는 영국 의회가 국왕이 영국교회에 대한 전권을 지닌 최고 으뜸이라고 규정한 ‘수장령’(首長令)을 제정함으로써 교황청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자치권을 행사하는 영국 국교회가 탄생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성공회는 160여 개국에 약 1억 명의 신자가 있으며, 500여 개의 교구가 서로 일치를 이루며 유기적 상통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대한성공회는 1890년 9월 영국에서 코프(C. J. Corfe) 주교가 인천에 도착해 ‘조선종고성교회’(朝鮮宗古聖敎會)를 설립하며 시작됐다. 현재는 서울과 부산, 대전 등 3개 교구를 두고 있다. 성공회는 가톨릭과 달리 여성도 사제품과 주교품을 받는다.
■ ‘오직 성경·신앙·은총’ 개신교
우리나라에서 흔히 ‘개신교’로 불리는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은 1517년 루터(M. Luther)에 의해 촉발된 종교개혁의 결과로 시작됐다.
개신교는 16세기 유럽에서 가톨릭교회에 대한 투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신앙’(sola fides), ‘오직 은총’(sola gratia)이라는 종교개혁 기본 원리에 근거해 형성된, 신앙과 예배 등의 체제를 갖춘 그리스도인 공동체다.
가톨릭적 관점에서 개신교는 ‘저항자’이면서 자신들의 신앙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표명자’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개신교는 루터교뿐만 아니라 스위스의 칼뱅주의자와 츠빙글리파, 프랑스의 위그노, 스코틀랜드의 장로교, 그 이후에 등장한 다양한 교파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한국에서 ‘기독교’(基督敎)가 개신교와 같은 의미로 사용될 때가 많지만, 기독교는 그리스도를 한자로 쓴 ‘기리사독’(基利斯督)을 줄여 쓴 말로 개신교와 가톨릭교회, 정교회 등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교회를 지칭하는 용어다.
한국 개신교는 1884년 9월 의료 선교사 알렌(Horace N. Allen)이 입국한 것을 그 시작으로 본다. 1885년 4월에는 장로교의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선교사와 감리교의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 선교사가 인천에 함께 입국하면서 개신교 선교가 본격화됐다.
■ 가톨릭, 공의회·회칙 등으로 교회 일치 열정 드러내
교회 분열만큼이나 교회 일치를 위한 노력도 오랜 역사를 지닌다.
콘스탄티누스 9세 황제는 1054년 동·서방교회의 대분열을 막으려고 중재를 시도했지만 교회 분열을 막지는 못했다. 제2차 리옹공의회(1274년), 피렌체공의회(1439년) 등에서도 두 교회의 일치를 위한 많은 시도들이 있었지만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교황청은 19세기 후반부터 그리스도교 일치 문제에 대해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레오 13세 교황(재위 1878~1903년)은 「기쁨의 명백한 증거」(1894년), 「충분히 잘 알려진 사실」(1896년) 등 회칙을 반포하며 정교회, 개신교 등과의 일치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인 「일치교령」(1964년)에서는 가톨릭 신자들이 갈라진 형제들과 함께 기도하는 것은 허락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일이라고 하여 가톨릭교회 내에서 일치운동과 일치기도주간 실행을 고무했다.
한국에서는 1968년 1월 일치기도주간을 맞아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최초로 가톨릭과 개신교 신자들이 참여한 일치기도회가 열린 이래 매해 이어지고 있다. 일치기도회는 가톨릭과 정교회, 성공회, 개신교 등 모든 그리스도 교회의 재일치를 위한 실천 운동의 골격을 이룬다.
2002년에는 상시적이고 안정적인 일치운동을 위해 ‘한국 그리스도교 일치회의’가 조직됐으며, 2014년 5월 교회 일치를 위한 공식적 기구인 ‘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협의회’가 창립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박지순 기자(가톨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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