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는 고통과 죽음, 그 너머 구원을 바라보며
수많은 종교와 사상가들은 고통을 인간이 평생 풀어야 할 숙제 중 하나로 여기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부단히 고민해왔다.
그중 의학과 과학은 고통을 줄이거나 없애고자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노력했고, 많은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인간의 삶 속에서 완전히 떼어 내지는 못했다.
마주할 수밖에 없는 고통
고통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이 있으며, 정신적 고통에는 감정적인 고통과 영적인 고통도 있다.
최근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수많은 사람이 대지진으로 목숨을 잃었고, 남겨진 가족들은 큰 고통에 잠겼다.
누군가에게 이유 없이 희생당한 사람의 고통이 존재하고, 가해자도 죄책감에 시달리곤 한다.
미디어로 촘촘히 연결된 현대 사회는 상대적 박탈감에 따른 고통의 비중도 크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러한 다양한 고통을 어떻게든 피하고자 하지만, 결국 또 다른 고통에 직면하게 된다.
교회 역시 인간은 육체를 가진 유한한 피조물이기 때문에 고통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고 인정하면서 동시에 더 깊은 차원으로 인도한다.
고통의 신앙적 의미
구약성경은 고통을 죄의 결과로 보며 그 궁극적인 원인을 원죄에 있다고 한다. 인간이 저지른 죄에 대한 하느님의 벌인 것이다.
또한, 인류의 연대성으로 인간은 자신의 죄뿐 아니라 타인의 죄로 인해서도 고통을 당한다.
하지만 하느님이 고통을 허락하는 이유는 회개시키려는 것이기 때문에 치유의 목적도 가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약성경에서 고통의 의미는 그리스도를 통해 분명해진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자발적으로 고통을 받아들였고, 고통이 인류의 구원과 당신의 영광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가르쳤다.
십자가의 고통은 아버지 뜻을 그대로 순종하고 받아들이는 사랑의 행위로 시작해 부활로써 십자가 사랑의 신비를 증명한다.
바오로 사도는 서간에서 십자가 상 죽음은 인간의 죄를 대속한 죽음이고 인간을 하느님과 화해시킨 제사임을 알려준다.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통이 인간에게 구원의 길을 열었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죽음을 넘어 부활의 희망으로
교부들부터 현대 성인들까지, 그리스도교 전통은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따르는 차원에서 자발적인 고통을 감수하고 나아가 고통받는 이들 곁에서 함께해 왔다.
가르멜 영성연구소장 윤주현 신부(신학적 인간학 박사)는 “고통은 근본적으로 부정적인 것으로 인간에게 큰 어려움을 준다”고 말했다.
실존적 한계를 가진 인간은 죽는 순간까지 수많은 고통 앞에서 울부짖는 나약한 존재들이며 끊임없이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고통의 최종 목적지인 죽음이야말로 인간의 본모습을 그대로 직시하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했다.
오히려 더욱더 주님을 향해 우리 마음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은총의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윤 신부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신앙인들은 고통 앞에서 죽음을 넘어서는 부활의 희망을 키워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오늘날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자연재해나 불의의 사고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아파하는 것이 신앙인의 의무라고 밝혔다. 그리스도께서 그 길을 먼저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윤 신부는 “사순 시기를 맞아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을 베풀고, 그러면서 자신의 이기심과 욕망에서 오는 고통을 줄여 성화될 수 있기를 바란다”며 “그럴 때 인류 구원을 향한 십자가를 짊어지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민규 기자(가톨릭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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