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없이 오르는 십자가의 길… 그 자체로도 기도와 피정
경기도 양자산 자락의 성지
십자가의 길 한 처씩 바치며
길게 뻗은 오르막 걷다 보면
잡념 사라지고 피정하는 기분
3월 19일 천진암성지로 오르는 길에서 순례자들이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고 있다
계곡물 옆 굽이굽이 이어진 길을 따라 오르막길을 오르니 이윽고 산비탈 사이로 성지 입구가 나타났다.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천진암로 1203에 자리한 천진암성지다.
신앙선조들이 학문을 연구하다 신앙을 꽃피운 깊은 산속 암자가 있던 그 자리에서 사순을 만났다.
천진암성지의 성모상.
■ 하느님을 만나는 산
오르막을 오르고 올라 성지 입구에 다다랐지만, 사실 산을 오르는 순례길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예로부터 신앙선조들은 하느님을 만나고자 산을 올랐다. 모세는 시나이산에서, 엘리야는 카르멜산에서 하느님을 찾았다.
오르막을 오르고 올라 성지 입구에 다다랐지만, 사실 산을 오르는 순례길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예로부터 신앙선조들은 하느님을 만나고자 산을 올랐다. 모세는 시나이산에서, 엘리야는 카르멜산에서 하느님을 찾았다.
예수님도 산 위에서 참행복을 가르치셨고, 수난 직전 올리브산에 올라 기도하셨다. 우리나라 신앙선조들도 산을 올라 천진암이라는 암자에서 강학회를 열었고, 신앙을 받아들였다.
길게 뻗은 오르막 위로 커다란 십자가가 보였다. 생각보다 가파른 언덕이었지만, 어린아이에서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많은 순례자들이 십자가를 향해 걷고 있었다.
고요한 산속에 나뭇가지가 바람에 나부끼는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시의 온갖 소음에서 벗어나니 이 자체로도 피정(避靜·retreat)을 하는 기분이다.
길게 뻗은 오르막 위로 커다란 십자가가 보였다. 생각보다 가파른 언덕이었지만, 어린아이에서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많은 순례자들이 십자가를 향해 걷고 있었다.
고요한 산속에 나뭇가지가 바람에 나부끼는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시의 온갖 소음에서 벗어나니 이 자체로도 피정(避靜·retreat)을 하는 기분이다.
피정은 피속추정(避俗追靜) 또는 피세정념(避世靜念)을 줄인 말로, 세속을 피해 고요함을 따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상을 떠나 기도와 묵상을 통해 하느님을 찾는 일이 바로 피정이다.
피정의 기원은 다름 아닌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공생활을 시작하기에 앞서 40일 동안 단식하고 기도했다. 예수님의 이 ‘피정’은 초기 수도자들의 모델이 됐다.
피정의 기원은 다름 아닌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공생활을 시작하기에 앞서 40일 동안 단식하고 기도했다. 예수님의 이 ‘피정’은 초기 수도자들의 모델이 됐다.
그리고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이 「영신수련」을 저술해 구체적인 피정 방법을 소개하면서 피정이 교회 안에 대중적으로 퍼지게 됐다.
300m 남짓한 길에 쉼 없이 오르막이 이어지니 생각처럼 쉬운 길은 아니다. 이 언덕을 오르는 지혜로운 방법은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는 것이다. 언덕길을 향해 조성된 십자가의 길을 한 처, 한 처 바치며 오르다 보면 어느새 커다란 십자가 앞에 다다르게 된다.
실제로 많은 순례자들이 이 십자가의 길을 바치며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다. ‘십자가의 길’이 예루살렘의 성지를 순례하고자 하는 바람에서 비롯된 신심행위라는 점을 생각하면 순례에도, 또 사순을 묵상하는데도 더 없이 좋은 기도다.
300m 남짓한 길에 쉼 없이 오르막이 이어지니 생각처럼 쉬운 길은 아니다. 이 언덕을 오르는 지혜로운 방법은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는 것이다. 언덕길을 향해 조성된 십자가의 길을 한 처, 한 처 바치며 오르다 보면 어느새 커다란 십자가 앞에 다다르게 된다.
실제로 많은 순례자들이 이 십자가의 길을 바치며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다. ‘십자가의 길’이 예루살렘의 성지를 순례하고자 하는 바람에서 비롯된 신심행위라는 점을 생각하면 순례에도, 또 사순을 묵상하는데도 더 없이 좋은 기도다.
물론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지 않아도 십자가를 바라보며 길을 오르는 자체로도 기도가 된다. 가빠지는 숨에 말수가 적어지고, 생각이 단순해져 ‘세속을 떠나 고요해지는’ 피정이 된다는 것은 덤이다.
넓은 터에 자리한 야외제대를 지나 이곳에 묻힌 초기 신앙선조들의 묘역을 향해 다시 산길을 올랐다.
넓은 터에 자리한 야외제대를 지나 이곳에 묻힌 초기 신앙선조들의 묘역을 향해 다시 산길을 올랐다.
다시 500m 가까이 산길을 올라야 하니, 신앙을 배우고자 매번 강학회를 찾던 신앙선조들이 새삼 더 존경스러워졌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신앙선조들이 걸었던 험한 산길에 비하면 이 길은 완만하고 편한 길이다.
천진암강학회가 열렸던 장소에 세워진 모자이크 성화.
하느님의 종 권일신의 묘.
천진암성지에 있는 하느님의 종 권일신의 모자이크 성화.
■ 피정을 한 선조들
박해가 시작되면서 많은 신앙선조들이 박해자들의 눈을 피해 산을 찾았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천진암에서 현양하는 초기 신앙선조들은 아직 박해가 시작되기 전부터 신앙을 위해 산을 올랐다. 다름 아닌 피정을 위해서였다.
묘역을 향하니 성지가 현양하는 신앙선조들의 성화들이 하나씩 세워져있었다. 그중 하느님의 종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성화 앞에 잠시 멈췄다.
박해가 시작되면서 많은 신앙선조들이 박해자들의 눈을 피해 산을 찾았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천진암에서 현양하는 초기 신앙선조들은 아직 박해가 시작되기 전부터 신앙을 위해 산을 올랐다. 다름 아닌 피정을 위해서였다.
묘역을 향하니 성지가 현양하는 신앙선조들의 성화들이 하나씩 세워져있었다. 그중 하느님의 종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성화 앞에 잠시 멈췄다.
물론 성지에 안장된 5위의 신앙선조 모두가 첨례표에 따라 사순 시기를 지켰고, 묵상과 피정으로 하느님을 향한 덕을 쌓아왔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피정을 한 것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 권일신이다.
달레 신부의 「조선천주교회사」에 따르면 권일신은 규칙적인 피정을 할 결심을 하고 조동섬(유스티노)과 함께 산에 있는 적막한 절을 찾았다고 한다.
달레 신부는 “절에 도착한 그들은 피정 동안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며 “그들은 주님과 그 성인들을 본받고자 하는 바람으로 머리에 떠오르는 신심 수업, 즉 기도와 묵상에만 전념하면서 절에서 8일을 지냈다”고 전하고 있다.
달레 신부의 「조선천주교회사」에 따르면 권일신은 규칙적인 피정을 할 결심을 하고 조동섬(유스티노)과 함께 산에 있는 적막한 절을 찾았다고 한다.
달레 신부는 “절에 도착한 그들은 피정 동안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며 “그들은 주님과 그 성인들을 본받고자 하는 바람으로 머리에 떠오르는 신심 수업, 즉 기도와 묵상에만 전념하면서 절에서 8일을 지냈다”고 전하고 있다.
달레 신부는 “이러한 실천(피정)은 그들 자신과 그들이 피정 후에 가르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풍성한 은총을 얻게 한 것이 확실하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신앙선조들이 피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피정을 위한 서적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앙선조들은 「성경광익」(聖經廣益), 「성년광익」(聖年廣益) 등과 같은 책을 읽으며 피정에 들어갔다.
이렇게 신앙선조들이 피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피정을 위한 서적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앙선조들은 「성경광익」(聖經廣益), 「성년광익」(聖年廣益) 등과 같은 책을 읽으며 피정에 들어갔다.
「성경광익」은 미사 전례에 따른 성경 본문과 묵상, 기도문을 담은 책이고, 「성년광익」은 성인들의 삶과 신앙을 바탕으로 한 묵상집이다. 이 두 책은 권일신의 피정처럼 피정기간을 8일로 제시하고 있다.
권일신이 찾은 산은 이곳이 아니라 용문산이었다. 그러나 천진암이 있는 이 양자산 자락은 권일신이 피정을 떠나기 이전에도 피정이 이뤄지던 곳이었다.
권일신이 찾은 산은 이곳이 아니라 용문산이었다. 그러나 천진암이 있는 이 양자산 자락은 권일신이 피정을 떠나기 이전에도 피정이 이뤄지던 곳이었다.
신앙선조 5위의 묘역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하느님의 종 이벽(요한 세례자)이 피정하던 장소, ‘독서처’가 있던 자리가 있다.
이벽은 1778년을 전후로 이곳에 독서처를 마련하고 1784년경까지 이곳을 찾아 신심서적을 읽으며 기도와 묵상을 했다고 전해진다. 서울 수표교 인근에 집을 둔 이벽은 이곳을 찾아 피정을 했던 것이다.
권일신은 형리들의 고문과 매질 속에서도 “이 세상의 무엇을 준다 해도 주님을 배반할 수 없고 주님께 대한 의무를 궐하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당하겠다”고 말하며 신앙을 지켰다고 한다.
권일신은 형리들의 고문과 매질 속에서도 “이 세상의 무엇을 준다 해도 주님을 배반할 수 없고 주님께 대한 의무를 궐하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당하겠다”고 말하며 신앙을 지켰다고 한다.
피정과 기도로 신앙을 키워간 신앙선조들은 주님의 수난과 죽음에도 동참하는 큰 신앙을 일궜던 것이다.
천진암성지에 있는 창립선조묘역.
이승훈 기자(가톨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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