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받은 아이들의 아버지로 사는 법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거죠”
보호 필요한 180명 아이들 거주
예수회 신부·수사 함께 머물며 돌봐
학업부터 생활 전체 세심히 살펴
아이의 세세한 부분을 챙기는 게 엄마라면, 아빠는 아이의 내면이 단단해질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준다.
자식이 삶의 어려움을 견뎌낼 수 있게, 어디 가서 기죽지 않게 힘을 불어넣어주는 아버지. 서울 꿈나무마을에는 부모로부터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180명 아이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고 있는 5명의 아버지가 있다.
예수회 석요섭(요셉)·박종인(요한 사도)·배영길(베드로)·이성균(안드레아) 신부와 김건태(헨리코) 수사다. 성 요셉 대축일을 맞아 하느님의 귀중한 자녀를 사랑으로 돌보고 있는 다섯 신부와 수사를 만났다.
꿈나무마을에 뿌려진 희망의 씨앗
가장 가난한 이에 대한 사랑을 실천코자 고(故) 소 알로이시오 몬시뇰이 세운 소년의 집. 그 뜻을 이어가려 마리아 수녀회가 서울시의 위탁을 받아 운영했던 꿈나무마을은 2020년부터 예수회 기쁨나눔재단(이사장 전주희 바오로 수사)이 바통을 이어받아 운영 중이다.
여자 생활시설인 파란꿈터, 남자 생활시설인 초록꿈터, 0~7세 아동들이 머무는 연두꿈터, 학대피해 아동들을 보호하고 상담하는 서부아동상담센터가 마을을 채우고 있다.
파란꿈터에서는 박종인 신부가 부원장으로, 초록꿈터에서는 김건태 수사가 사무국장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다.
2020년부터 서부아동상담센터에서 상처받은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이성균 신부는 센터장으로, 지난 2월 가장 늦게 합류한 배영길 신부는 연두꿈터 부원장으로 동행하고 있다.
기쁨나눔재단 상임이사인 석요섭 신부는 꿈나무마을 전체를 관리하며 아이들이 꿈을 잃지 않도록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다.
서울시 은평구 응암동에 위치한 꿈나무마을. 부모로부터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요보호 아동들이 생활하는 아동양육시설인 이곳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아파트 단지와 주택과는 분위기가 대비된다.
하지만 마을 안으로 들어오면 생각이 달라진다. 잘 정돈된 산책로와 운동장, 깨끗하게 관리된 놀이터는 여느 신식 아파트 단지 시설보다 낫다.
수많은 아이들이 사용하는 시설이 잘 정비돼 있다는 것은 이곳 관리자의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3월 10일 오후 5시, 학원이 끝나고 아이들이 속속 마을로 들어온다. 친구와 장난치고, 여기저기 둘러보느라 올라가는데 한참이 걸리는 두 남자아이는 태권도장에 다녀오는 길이란다.
꿈나무마을에 대해 묻자 “태권도장이랑 학원이랑 다 다닐 수 있어서 좋다”는 말을 남기고 뛰어간다.
초록꿈터 앞에서 만난 김건태 수사와 장난을 치던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은 “수사님이 딱히 잘해주시는 게 없는데요”라며 농담을 던진다.
이곳에서 19년간 살았다는 정소망(19·프란치스코)군은 “공부가 힘들면 직접 과외도 해주시고 필요한 건 뭐든 해주려고 하시는 신부님과 수사님이 아버지처럼 따듯하다”고 말했다.
거짓‘말’은 할 수 있지만 표정은 거짓을 말할 수 없다.
태권도장을 다녀오던 초등학생, 학교에서 돌아오던 고등학생, 이곳에서 19년간 살고 있는 청년의 표정에서 이들이 꿈나무마을에서 꿈을 키워가고, 꿈으로 향해가는 힘을 얻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부모에게는 사랑 받지 못했지만, 그 이상의 사랑을 쏟아주는 다섯 명의 아버지가 있기에 꿈나무마을 아이들은 올곧고 단단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하느님의 소중한 자녀인 아이들,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다섯 아버지
“다섯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 하는데, 여기에 살면서 더 아픈 손가락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본 적이 없는 석요섭 신부는 꿈나무마을에 와서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됐다.
말썽을 부리고 사고를 치는 아이가 밉다가도 하루 종일 걱정되고 생각나는 건 공부 잘하고 잘 지내는 아이가 아니라 사고를 친 아이라는 것이다.
“아버지가 된다는 게 그저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이곳에 오고 나서 느꼈습니다. 나의 모든 존재가 녹아있어야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것 같아요. 신부님, 수사님과 만나면 늘 아이들 이야기뿐입니다.”
남자 청소년들이 생활하는 초록꿈터에는 사건이 많다. 가출을 하거나 생활지도 선생님과 신부님에게 욕을 하고 학교에서 친구들을 때리고 들어오곤 하는 아이들.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지만 김건태 수사는 “예수님이 아끼고 사랑하는 아이들을 내게 맡긴 것”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추스른다.
김 수사는 “나중에 예수님을 만나면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아이들을 잘 돌봤다’고 이야기해야 되지 않겠어요?”라며 “늘 아이들을 믿고 옆에서 지지해 주면서 아이들이 서럽지 않게 뭐든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성악을 배우고 싶다는 아이에게 이탈리아 유학파 성악가를 소개해 주는가 하면, 영어공부가 하고 싶다는 아이에게 외국인 강사를 금세 섭외해주는 신부와 수사들.
주말에도 아이들 공부 지도를 하거나 놀아주느라 개인 시간이 없는 신부와 수사는 “반 봉쇄수도원이라고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라고 웃으며 말했다.
연두꿈터 부원장 2개월차인 배영길 신부는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영어교육그룹에 오랫동안 몸담다 이곳으로 왔다.
자식을 위해 적지 않은 영어교육비를 쓸 수 있는 부모가 있는 아이들과 꿈나무마을 아이들의 삶은 시작부터 달랐다.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온 배 신부는 “하느님과 가장 깊게 만날 수 있는 곳에 와서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베이비박스에 버려져 이름도 태어난 날도 모른 채 연두꿈터에 들어온 아이들을 매일 만나고 있는 배 신부는 “아이들을 매일 안아주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가장 상처받은 아이들이 찾아오는 서부아동상담센터에서 이성균 신부는 “좋은 어른”으로 불린다. 어른으로 받은 상처가 잘 아물 수 있도록 그가 하는 일은 그저 잘 들어주는 것이다.
늘 선한 미소로 아이들과 만나는 이 신부는 “아이들 모두 아픔을 간직하고 있지만 이곳에서 만큼은 나름대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동행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문제를 일으키고 싸우더라도 내 품에 있을 때는 안심이 되지만 성인이 돼서 집을 떠난 자식이 밥을 잘 챙겨먹고 있는지 외롭지 않은지 걱정하는 게 부모의 마음이다.
기쁨나눔재단이 은평구에 1000원 밥집 ‘밥집알로’를 연 것도 집을 떠난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서였다.
기쁨나눔재단 자립준비청년 지원 총괄 박종인 신부는 “꿈나무마을 졸업생 중 10% 정도는 시설을 나가고 나서 연락이 안 된다”며
“아이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연락이 끊긴 아이들의 친구들을 만나 정보도 교환하고자 밥집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자식을 낳아본 적이 없는 다섯 신부와 수사는 투박하지만 진실하게 아이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있었다.
꿈나무마을에서 180명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 신부와 수사는 “하느님이 그러하셨듯이 아이들을 평가하지 않고 그대로 봐주는, 뭘 하든 괜찮다고 해주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민경화 기자(가톨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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