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5년 9월 27일 나해 한가위

dariaofs 2015. 9. 27. 06:30

                                                                     (루카 12,15-21)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이 ‘저희’란 말할 것도 없이 ‘제자들’입니다. 여기에서는 자기들을 따르지 않는다고 하는 이유만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령을 쫓아내는 일을 그만두게 하려고 하였던 제자들의 교만함과 사람들의 슬픔이나 기쁨에 공감할 수 없었던 둔감성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마귀’란 인간을 슬픔에 찬 불행한 상태에 가두어 버리는, 하느님을 적대하는 영적 존재라고 생각해도 될 것입니다.

 

이야기의 표면에는 나오지 않지만, 거기에는 슬픈 어둠 속에 갇혀 온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또한 불행에서 해방된 감동과 기쁨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무관심이야말로 죄다’라고 하는 마더 데레사의 말이 있는데, 이 시기의 제자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당연히 사람들이 외침이 그들의 마음에는 닿지 않았고, 그들이 삶을 영위하는데 자기들의 인생을 내주려는 것 따위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입장을 서 본다면, 거기에 근본적인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느님께서는 이집트에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외치는 소리를 들으시고 모세를 파견하였습니다. 또 신약에서는 인류의 외침을 들으시고 그리스도를 보내 응답하십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방법입니다. 사람들의 외침에 공감하시고 그들의 고통을 공유하시고 함께 나누십니다. 거기에 그리스도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있는 것은 그것과는 전혀 반대인 ‘자기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에게서 뽑혔다고 하는 특권의식과 다른 사람들보다도 예수님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다고 하는 교만함과 자기들이야말로 예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의 중심이라고 하는 생각이 작용해서 그 정신으로 계속 질서를 유지하려는 행동으로 치달아 버렸던 것입니다.

 

만일 그 장소에 바오로가 있었다면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를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라고 주의를 주었을 것입니다.

 

아파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잊는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자신에 대한 것보다도 주위 사람들의 인생에 귀를 기울이고 외침을 듣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유영근 아고보 신부(대전교구 주교좌 대흥동성당 보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