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중심 교리 1046

[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49·끝) 착한 사마리아인에게서 배우는 자살예방 ③‘함께 돌보다’

혼자 돌봄 버거우면 공동체 도움을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 갚아 드리겠습니다.’”(루카 10,34-35) 새 신부 시절 심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한 청년을 만났습니다. 성당에서 만날 때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이야기도 들어주고 위로도 해주었는데 이내 그 청년을 대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어느 때부터는 밤늦게 연락을 자주 시도하고 때로는 한밤중에도 만나달라고 하였습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고 두려운 마음이 들어 본당 수녀님의 도움으로 정리를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분명 좋은 마음으로 함께하려고..

인간중심 교리 2023.12.29

[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48) 기억 속의 ASMR

떠올리면 힘 얻을 수 있는 장면들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삶이 끝나갈 때 우리에게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실존이 회수되는 그 순간, 아마도 시간의 흐름이 멈추고 살아온 삶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연상되고 어떤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동시에 자신이 지나쳐온 장소들과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그곳에 깃든 존재와 관계성이 뇌리에 배경처럼 투영됐다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 순간이 자칫 고통스러운 순간이 아닌 마지막 위로가 되기를 바라면서 우리는 현재의 삶을 더 사랑하며 살아가려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저는 가끔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억 속의 소리를 ASMR(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소리)처럼 떠올릴 때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 잠을 자고 있는데, 일하느라 뒤늦은 ..

인간중심 교리 2023.12.24

[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47) 발 없는 새

불안에 잠식되면 평온이 불편해지고 왕가위(王家衛) 감독의 영화 ‘아비정전’(阿飛正傳)에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발 없는 새가 있어. 날아다니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평생 딱 한 번 땅에 내려앉을 때가 있는데, 그건 죽을 때야.” 안정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심리적 균형을 잃는 것은,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의식의 흐름입니다. 이러한 양가성(兩價性) 전(前) 단계에는 대개 모든 에너지를 살아남기 위한 투쟁에 쏟은 후 얼마간의 성취감을 경험하고, 또 지금까지와는 다른 긍정적 경험을 통해 얼음같이 차가웠던 마음에 온기가 스며드는 상황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는 처음 맛본 이 안락함이 일종의 저주처럼 작용합니다. 긴장이 풀리면서 균열이 생기고 간신히 버티고 있던 균형상태가 무너지는 일이 발생합..

인간중심 교리 2023.12.18

[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46) 살 길을 찾다 죽음에 다다른 사람

돈 없이 살기 힘든 세상에서 사채 빚이 위험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막다른 상황에서 담보도 신용도 없는 사람들은 사채 빚을 쓰게 됩니다.(옳고 그름을 떠나 이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입니다.) 문제는 원금보다 많은 이자를 갚아도 빚이 계속 늘어나는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Q 역시 거듭된 사업 실패로 빚을 갚지 못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고 마지막 희망마저 좌절되자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유가족 상담을 통해 살펴본 Q의 의식은 끊임없이 자신과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는 방향을 찾았지만, 현실에서는 자신이 살아있는 한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죽기 (얼마) 전부터 말도 잘 안 했어요. ‘미안하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

인간중심 교리 2023.12.09

[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45) 착한 사마리아인에게서 배우는 자살예방 ② ‘다가가다’

함께 있어주면 살릴 수 있습니다 자비 베풀어주는 이가 참 이웃 위로 필요한 외로운 사람에겐 ‘경청’만으로 큰 힘 줄 수 있어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루카 10,33-34) 초등학교 시절 시험을 보고 집에 왔는데 어머니께서 물으셨습니다. “시험 잘 봤니?” “네, 그럼요. 눈이 있으니 아주 잘 보고 왔죠!” 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가끔씩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어릴 적 제 일화입니다. ‘보았나?’라는 질문은 단순히 눈으로만 본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어느 사람이 길에서 강도를 당하고 쓰러져 있는데 사제는 그를 보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리고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지나갔..

인간중심 교리 2023.12.03

[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44) 생명으로의 리턴

자살 막으려면 사회적 개입이 필수 가정불화, 폭력과 학대, 학교 부적응, 장기 실직, 관계단절, 외로움, 질병, 심각한 재정적 압박 등과 같은 사회환경적 문제 등이 자살 행동의 발단이 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개인의 의지, 가족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들고 사회적 개입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의 자살 심각성은 한국형 복지국가 디자인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표징(表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살 행동은 ‘경계가 무너진 시간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부정적 경험을 반복하면 과거뿐 아니라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 역시 고통스럽게 지각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미래를 열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기본적인 삶의 조건이..

인간중심 교리 2023.11.23

[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43) 살아야 하는 이유

들이닥치는 고통을 견디는 방법 자살시도자가 원망에 찬 눈빛으로 묻습니다. “단 한 가지라도 살아야 할 이유를 말해주세요.” 자살 유가족 역시 한숨을 몰아쉬며 질문합니다. “이러한 고통을 감당하면서까지 살아야 할 이유를 말해주세요.”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는 절박한 물음 앞에서 저는 머뭇거리기만 할 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합니다. 더욱이 그 질문에 실린 무게에 압도되어 말문이 막혀버릴 때가 많습니다. 상담을 하면서도,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저 자신이 모순덩어리, 바보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솔직히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철학이나 종교에서는 현실의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살아갈 이유,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러나 ..

인간중심 교리 2023.11.18

[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42) 굿 나이트(Good Night)

어제도 푹 잠들지 못한 이들에게 자살 유가족이 겪는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잠 못 이루는 고통입니다. 많은 유가족이 우울감과 수면장애로 어려움을 겪고 항우울제나 수면제를 복용합니다. 약을 먹어도 잠이 오지 않아 대체제로 알코올을 택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물론 그 결과는 좋지 않습니다. 알코올이 뇌를 각성시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습니다. 술을 먹어야만 잠을 이룰 수 있다는 사람도 사실은 몸이 녹다운 된 것이지, 뇌는 선잠을 잤기 때문에 아침에 개운치 않습니다. 잠은 일상생활에서 오는 근심을 풀어주고 스트레스의 중압감을 가볍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또한 잠은 일시정지의 기능도 있어서 부정적 생각과 현실의 힘듦을 잠시나마 잊게 해 줍니다. 신기하게도 인간의 뇌는 깨어있을 때보다 수면 상태에서 놀라운 치유 ..

인간중심 교리 2023.11.10

[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41) 한국의 노인 자살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은 우리나라 “한국은 잘 사는 나라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 노인이 이렇게까지 빈곤 상태에 있고, 자살이 심각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국의 노인 자살은 노인들의 빈곤화와 큰 관련이 있습니다. 한국의 처분가능소득 기준 노인빈곤율은 37.6%(2021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에는 노년층과 젊은 세대의 분리가 가장 컸습니다. 1980년대까지 한국은 부모와 함께 사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젊은 세대가 노인을 부양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였습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으로 가면서 본격적인 세대 분리가 보이기 시작했고 97년 외환위기 이후 세대 간 분리는 급속도로 진행되었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가족 중심의 돌봄과 지원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국..

인간중심 교리 2023.11.01

[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40) 착한 사마리아인에게서 배우는 자살예방 ①‘보다’

타인의 고통 보고도 무관심한 우리 인생길에는 다양한 만남이 있는데 참으로 귀한 만남이 있으면 피하고 싶은 만남도 있고, 때론 인생길에 쓰러진 이들을 보기도 합니다. 루카복음 10장에도 그렇게 길에 쓰러진 이가 나옵니다. 사제와 레위인은 강도를 당한 사람을 ‘보고’는 지나쳐 반대로 돌아갑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하겠지만 그들에게도 나름의 이유는 있었습니다. 성전에서 일하는 자들은 피를 만지거나 죽은 이를 접촉하게 되면 부정한 사람이 되어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무엇을 더 기뻐하시는지를 안다면 이는 명백히 작은 선을 위해 큰 선을 저버리는 행위였던 것입니다. 그에 비해 사마리아인과 유다인은 서로 관계가 나빴기에 그냥 모른척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마리아 사람에게는..

인간중심 교리 2023.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