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5년 10월 15일 연중 제28주일 목요일(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dariaofs 2015. 10. 15. 02:24

 

에스파냐 카스티야(Castilla)의 아빌라에서 태어난 성녀 테레사(Teresia, 또는 데레사)는 알론소 산체스 데 세페다와 그의 두 번째 부인 베아트릭스 다빌라 이 아우마다의 딸이다. 성녀 테레사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녀들로부터 교육을 받았으나, 건강이 나쁘다는 이유로 1532년에 아빌라에 있던 수녀원을 떠나야 했다.

 

오랫동안 수도생활을 갈망해오던 그녀는 1536년에 아빌라에서 카르멜 수녀가 되어 다음 해에 서약하였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1538년에 수녀원을 떠났다가 1540년에 다시 들어갔다.

그녀는 1555년과 1556년 사이에 환시를 보았고 신비스런 음성을 들었는데, 알칸타라(Alcantara)의 성 베드로(Petrus, 10월 19일) 신부의 영적 지도를 받을 때까지는 불안에 떨어야 했다. 성 베드로 신부는 그 모든 환시가 진실한 것임을 그녀에게 확신시켰다.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그녀는 그 당시의 다소 느긋한 수도생활보다 더욱 엄격한 봉쇄 생활을 원하는 수녀들을 위하여 아빌라에 성 요셉 수도원을 세웠다(1562년).

 

1567년 카르멜의 총장인 루베오 신부는 성 요셉 수도원과 같이 엄격한 규칙을 따르는 다른 수도원을 세우도록 그녀에게 허락하였으므로, 메디노 델 캄포에 제2의 수도원을 세울 때 십자가의 성 요한(Joannes a Cruce, 12월 14일)이란 젊은 수도자를 만났으며, 1568년에는 두루엘로에 남자를 위한 최초의 수도원을 세웠다(이것이 최초의 개혁 카르멜 수도원이다).

성녀 테레사는 에스파냐 전역을 다니면서 카르멜의 개혁을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1575년의 총회는 그녀의 개혁 그룹을 제한하였다. 1580년까지 카르멜 내부의 보수파와 개혁파간의 투쟁은 격심하였다. 이윽고 그레고리우스 13세(Gregorius XIII)는 맨발의 개혁파를 독립 관구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테레사는 수많은 편지와 책을 지었는데, 이 모두는 영성 문학의 고전이 되어 널리 읽혀지고 있다. "자서전"(1565), "완덕의 길"(1573), "영혼의 성"(1577) 등이 특히 유명하다.

그리스도교 역사상 가장 돋보이는 신비가 중의 한 명인 성녀 테레사는 지적이고 빈틈없는 사람이었으며, 매력적이나 깊은 영성을 지녔으므로 차원 높은 관상생활과 더불어 수준 높은 활동생활을 성공적으로 조화시켰던 위대한 성녀이다. 그녀는 에스파냐의 알바 데 토르메스에서 선종하였고,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에 의하여 1622년에 시성되었다. 그리고 1970년에는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하여 교회의 여성으로는 최초로 교회학자로 선언되었다. 그녀는 '예수의 성녀 테레사'로 불린다.

 

강론   :   (루카 11,47-54)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루카 11,47-48)."

 

이 말씀을 겉으로만 보면,
유대인들이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드는 것을 꾸짖으시는 말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들의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죽이는 것을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그 아비에 그 자식이다." 라고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라는 말씀은, "너희는 불행하게 될 것이다." 라는 뜻이고,
이 말씀은,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심판과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시는 말씀입니다.
(회개하면 구원을 받을 것이고...)

 

원래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드는 것은 예언자들을 공경하고 기리기 위해서입니다.
그 일 자체는 잘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예언자들이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늘'의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죽인다면,
'옛날'에 죽은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면서 공경하고 기리는 것은
진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는 척'이고,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범죄를 감추기 위한 또 다른 범죄가(위선이라는 죄가) 될 뿐입니다.

 

유대인들은 세례자 요한을 죽였고, 예수님을 죽였고, 사도들도 죽였습니다.
예언자들을 죽인 조상들과 다를 것이 없는 후손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조상들과 자기들은 다르다는 그들의 말은(마태 23,30) 거짓말입니다.

 

"그러니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아벨의 피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 간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루카 11,47-51)."

 

이 말씀을 겉으로만 보면,
조상들의 죄를 후손들에게 물으시겠다는 말씀으로 보이지만,
그런 뜻이 아니고,
언젠가는 반드시 죄인들의 죄를 물으실 때가 올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여기서 '이 세대' 라는 말은, 어떤 특정 세대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 하느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예언자들을 박해하는 사람들"
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라는 말은,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벨을 죽인 죄를 카인에게 바로 물으셨고,
곧바로 벌을 내리셨습니다(창세 4,9-16).
그러나 그 뒤로는
예언자를 박해하거나 죽인 죄를 '즉시' 물으시거나 처벌하신 일이 많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벌이 내리더라도 시간이 좀 지난 뒤에 내린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죄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고 해석합니다.

 

(카인의 경우에도 사형선고를 내리신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그에게 회개하고 보속할 기회를 주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즉시 처벌하지 않으시고 회개할 때까지 기다려 주시는 것을
'면죄부'를 주신 것으로 착각하거나,
하느님께서 모르시거나 잊어버리신 것이라고 오해하거나,
아니면 자기의 죄를 죄가 아닌 것으로 오판하거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지금 당장 천벌이 내리지 않는다고 해서 하느님께서 잊어버리신 것도 아니고,
죄를 그냥 덮어버리신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판과 처벌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고,
용서와 구원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그렇지만 이 믿음이 자만심으로 변질되면 안 됩니다.
"내가 죄를 지어도 하느님께서 용서해 주시겠지." 라는 생각은 옳은 생각이 아니고,
아주 오만한 생각입니다.

 

용서받는 것은 우리 쪽의 권리가 아닙니다.
우리를 용서하는 것은 하느님 쪽의 의무가 아닙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심판과 처벌을 내리시지 않는 하느님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거룩하시고 참되신 주님, 저희가 흘린 피에 대하여
땅의 주민들을 심판하고 복수하시는 것을 언제까지 미루시렵니까?(묵시 6,10)"
지금 인간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하느님께서 왜 심판하시지 않는지 답답해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많은데,
우리는 언젠가는 반드시 완전한 정의가 실현될 때가 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1) 하느님께서 회개할 때까지 기다려 주시는 그 죄인은
꼭 '저 사람'만은 아니고, '나'도 해당된다는 것.
다른 사람의 회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부터 회개해야 합니다.

 

2) 하느님께서 기다려 주시던 것을 멈추고,
"이제는 심판을 해야겠다." 라고 결정하실 때가 언제인지 모르는데,
그날과 그 시간이 바로 오늘, 바로 지금일 수도 있다는 것.

 

3) "하느님은 아버지이시고, 나는 자녀인데,
설마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리시겠어?" 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그리고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는 말은
아예 혼잣말로라도 꺼내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루카 3,8)."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