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5년 10월 28일 연중 제30주간 수요일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dariaofs 2015. 10. 28. 05:32

 

성 시몬

루가 복음 6장 15절과 사도행전 1장 13절에 등장하는 유대법을 철저히 준수하는 혁명당원이란 별명이 붙어 있는 성 시몬은 가나안 사람으로서(마태 10,4; 마르 3,18) 그리스도의 제자였다.


서방 전승에 의하면 성 시몬은 이집트에서 설교하였고, 성 유다 타데오(Judas Thaddaeus)와 함께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에서 복음을 선포하였고, 페르시아(Persia)로 갔다가 그곳에서 함께 순교하였다고 전한다.

하지만 어떻게 순교하였는지는 분명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전해 오는 여러 가지 전승 중에는 십자가형을 받았다는 것도 있고, 톱으로 몸의 절반이 잘려 순교하였다고도 한다. 그래서 예술적으로 시몬을 표현할 때는 큰 톱이나 십자가와 함께 묘사를 한다. 동방 교회 카에사리아(Caesarea)의 바실리우스(Basilius)에 따르면 성 시몬은 에데사(Edessa)에서 평화로이 운명하였다고 한다.

 

성 유다(타대오)

루가 복음 6장 16절과 사도행전 1장 13절의 12사도 명단을 보면 그의 이름은 유다(Judas)이고, 마태오 복음과 마르코 복음에서는 타대오라 부르나 분명한 것은 그가 가리옷 사람 유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유다의 편지에서 저자는 자신을 야고보(Jacobus)의 동생이라 하고, 마태오 복음 13장 55절과 마르코 복음 6장 3절에는 주님의 형제라는 언급이 나온다.


그러나 오늘날 학자들은 유다가 12제자의 유다이지만 유다의 편지의 저자는 아니라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성 유다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설교하였고, 위경인 시몬과 유다의 수난기에는 페르시아에서 이들 두 사도가 설교하다가 순교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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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

 

나는 결합을 잘 이루는 사람일까?

우리 공동체는 잘 결합된 공동체일까?

이것이 제가 오늘 성찰하고자 하는 내용입니다.  


우선 저는 제가 잘 결합되어 있는지 성찰합니다.

주님과 잘 결합되어 있는지,

공동체와 잘 결합되어 있는지 성찰합니다.

또는 주님과 결합되어 있는지, 주님 아닌 다른 것들과 결합되어 있는지,

공동체와 동떨어져 있거나 겉돌고 있는지, 결합되어 있는지 성찰합니다.  


자만의 말이 아니라 주님과 떨어져서 산다며 제가 어떻게 살 수 있고,

공동체와 결합되어 있지 않다면 어떻게 지금까지 이 생활을 하겠습니까?

주님과 떨어져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고 공동체와도 그렇습니다.  


다만 그 붙어있음이 얼마나 밀접하고 단단한지가 문제일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말라버린다고 하셨는데

나무와 가지에 비교하면 저는 나무에 붙어 있기는 하지만

세찬 바람이 불면 떨어져나갈지도 모르는 그 정도의 결합이 아닐지.  


이에 비해 공동체와 저의 결합은 다른 면에서 저를 반성케 합니다.

과거의 저는 공동체와 저를 너무 일체화하여 문제가 많곤 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일체화하여 문제였다니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부모와 자식 간에 가끔 볼 수 있는 것으로서

자식이 이미 성숙했는데도 여전히 어린 아이 취급을 하며

독립적인 인격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요, 분리하지 못함과 같지요.  


저도 과거에 공동체의 모든 문제가 저의 탓인 것 같았고,

문제가 있으면 그것은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였었으며,

반대로 형제들은 저의 의견과 다르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저의 의견과 같은 의견, 저와 같은 가치를 갖기를 바랐으며

같은 입장과 행동을 취해주기를 바라고 심지어 요구하기도 하였지요.  


그러다가 관구 봉사자 책임을 끝내기 1년 전에야 이것을 깨달았고,

무엇보다도 주님의 공동체를 나의 공동체처럼 집착하였다는 것을,

공동체와 형제들이 주님보다도 나와 일치하기를 바랐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결합은 획일적 결합이 아니고, 한쪽으로 쏠리는 의존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이제 저희 공동체의 결합을 보려고 하는데 당연히 그 결합이 미흡합니다.

욕심 때문에 이렇게 평가하는 면도 있지만

바람직한 공동체의 결합을 생각할 때 부족함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인간적인 결합을 생각하고 그렇게 노력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적인 성숙을 서로에게 요구하고,

대화니 소통이니 그룹대화니 단합대회니 공동체 진단이니 하는,

인간적인 방법들을 이것저것 동원합니다.  


이런 것들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것밖에 없고 하느님이 안 계신다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잘 결합되고,

주님 안에서 성전으로 자라나야 하는데 그런 면이 부족한 겁니다.

   

주님이 제자들을 뽑으실 때 오늘 축일로 지내는 사도들뿐 아니라

다들 부족한 사람들을 제자로 뽑으셨습니다.

이들이 사도단에 합류했을 때 각자 자기 목적, 야심이 있었고,

그래서 주님께서 돌아가시게 되었을 때 결합은커녕 흩어졌지요.  


그러다가 자기목적이 무산되고, 주님의 성령을 영접했을 때에야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사도단,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게 되었지요.


그러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결합되어야 하고

성령으로 결합되어야 함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