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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 주일] 여성 노숙인 쉼터 ‘수선화의 집’ 김기혜 원장

dariaofs 2015. 12. 9. 11:29
“거리에서 거둬들인 딸만 500명 넘어요”



▲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부설 수선화의 집에서 여성 노숙인들을 돌보고 있는 김기혜(뒷줄 오른쪽) 원장이 가족들과 함께 대문 앞에 서 가족사진을 찍었다. 이지혜 기자



“기혜야! 너, 요양원 갈 나이야. 정신 차려!”

서울 양천구 목동 한 단독주택에서 여성 노숙인 쉼터 ‘수선화의 집’을 운영하는 김기혜(젬마, 70) 원장이 친구들에게 항상 듣는 잔소리다.

그는 대꾸한다. “그렇다고 드러누워 있을 나이는 아니잖아. 우리 나이에 아프지 않고 시간이 많은 건 생지옥이야. 여행, 등산도 하루 이틀이지. 이 나이에 환영해주는 곳이 어디 있어? 나는 우리 집에서 인기 많아. 우리 식구들은 골목에서부터 날 기다리고 있어.”

상담 봉사 하다 2002년 사재 털어 시작


그는 2002년 자택을 담보로 9000만 원을 대출받아 오갈 곳 없는 여성 노숙인을 위해 전셋집을 마련했다. 지금까지 500여 명이 쉼터에서 따뜻한 식사로 배를 채우고, 편안히 머물다 떠났다.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15년 동안 외국계 회사와 은행에서 근무한 그의 경력을 보면 갸우뚱해진다. “어릴 때 아버지가 성당에서 전쟁고아들을 돌보셔서 저는 고아 친구들이 많았어요.

 

그 친구들이 나이가 들어 자살하거나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매우 아팠습니다.”

그는 대학 때 빈민촌에서 한글을 가르치는 봉사 활동을 했다. 결혼 후 기자인 남편을 따라 프랑스에서 6년을 살았는데, 그는 프랑스에 입양된 한국 아이들을 돌보는 봉사를 했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친구에게 여성 노숙인 상담을 돕는 일을 부탁받았다. IMF가 터진 직후였다.

“하루 두 시간씩 서울역, 영등포역에서 여성 노숙인을 만났어요. 90% 이상이 정신질환자이거나 장애인이고, 분노조절이 안 되는 환자였습니다.”

그는 서울시 위탁 노숙자센터 ‘여성 희망의 집’ 소장을 하면서 수많은 여성 노숙인들을 만났다. 그는 여성 노숙인 쉼터의 절박함을 깨닫고, 아예 쉼터를 차렸다. 그게 2002년 수선화의 집이 문을 연 계기였다.

그는 밤거리를 돌며 여성 노숙인들을 쉼터로 데려왔다. 여성은 특히 성폭행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다들 사연이 얼마나 기구한지 모릅니다. 알코올 중독, 정신질환, 우울증, 극심한 생활고…. 실종된 지 10년이 지나 입소할 때 사망신고가 돼서 들어온 사람도 있어요. 친가족이 없거나, 있어도 가족들을 피해 살아야 하는 이도 있고요.”

현재 16명 생활, 적은 후원비로 홀로 운영

현재 수선화의 집에는 16명이 생활하고 있다. 연령대는 40대부터 70대다. 쉼터에서 15분 거리에 사는 원장은 새벽 6시에 집을 나서 장을 봐온다.

 

하루 세끼 식구들 식사를 준비하는 주방일부터 행정업무, 후원자 관리, 소식지 발간, 가족들의 푸념을 들어주는 모든 일이 그의 몫이다.

직원 한 명 없고, 월급도 없다. 수선화의 집 운영은 얼굴도 모르는 후원자 30여 명이 보내주는 후원금과 노숙인들 앞으로 지급되는 기초수급비로 충당한다.

여성 노숙인 중에는 정신과 약을 먹지 않는 이가 없다. 식당에서 설거지하는 일을 구해도 2시간 이상 일하기 힘들다. 그래서 이들은 낮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스타킹을 포장하는 부업을 한다.

 

설거지하거나, 쓰레기를 비우면 1000~2000원 상당의 용돈을 준다. 김 원장이 작은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마련한 규칙이다.

김 원장은 이들에게 친정엄마다. 누가 미역을 좋아하는지, 누가 생선을 못 먹는지, 누가 카레를 싫어하는지 다 꿰고 있다.

 

이어 그는 “노숙인을 돌보는 것은 의미 있게 살고 싶은 내 욕심을 채우는 것뿐”이라며 “10대만 중요한 인생이 아니라 70대도 중요한 인생”이라고 했다.

“내 돈으로 내 옷을 사는 건 나만의 즐거움으로 끝나지만, 타인에게 해주면 그 즐거움이 두 배가 돼 내게 돌아옵니다. 주고 나면 기분이 좋아요.”

그는 최근 낡은 이불을 덮는 노숙인들에게 새 이불을 선물했다. “이불을 바꿔줬을 뿐인데,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 따뜻하고 좋아서 감동했다고 인사하는데 어떻게 기쁘지 않겠어요?”

노숙인을 향한 그의 열정은 학업으로 이어졌다. 그는 2003년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땄다.

노숙인에 대한 편견 걷고 복지 정책 펴주길


2006년 자선 주일에 이어 9년 만에 다시 찾아간 수선화의 집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후원자 수도 비슷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곳에 머무는 여성 노숙인들의 얼굴이 바뀐 것과 이들을 돌보는 원장이 요양원에 갈 나이가 됐다는 것이다.

 

여성 노숙인은 새롭게 입소하고 있지만, 이들을 돌보는 원장은 예나 지금이나 가톨릭 교회 안에서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곳 여성 노숙인들에는 걱정이 있다. 원장이 갑작스럽게 떠나면 어떡하느냐는 거다. 원장이 휴가라도 가면 이들은 온종일 원장을 기다린다. 노숙인들이 이런 넋두리들을 늘어놓으면 원장은 말한다. “하느님이 100살까지 살게 해 주시지 않겠느냐”고.

쉼터 이름은 왜 수선화로 지었을까? 그는 “수선화는 혼자서는 예쁘지 않은 꽃이라며 함께 있어야 예쁜 꽃”이라고 답했다.

 

그는 “노숙인 하면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노숙인은 갖가지 기구한 사연으로 어쩔 수 없이 삶의 나락으로 떨어진 몸과 마음이 아픈 환자들”이라며 “편견에서 벗어나 이들을 위한 복지정책을 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성 노숙인 현황



여성 노숙인의 존재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남성 노숙인은 지하철역에서 상자를 깔고 자지만, 여성 노숙인은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을 찾아다닌다.

여성 노숙인이 주로 노숙하는 곳은 피시방, 찜질방, 시장의 문 닫은 상점 등이다. 여성 노숙인은 항상 숨어있기에 통계를 잡아내는 게 쉽지 않다.

서울시 다시서기상담보호센터 통계를 보면, 1998년 서울시 노숙인은 4376명으로, 이중 여성 노숙인은 143명으로 3.3%를 차지한다.

 

2006년에는 전체 노숙인 2623명에서 여성 노숙인은 374명으로 14.3%까지 증가하다가, 2010년에는 (전체 2383명) 290명으로 12.3%를 기록했다. 여성 노숙인은 남성 노숙인의 5~10%대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여성 노숙인이 노숙하는 주된 이유는 가정폭력 및 가족해체 등 가족관계의 어려움으로 인한 원인이 많다. 반면 남성 노숙인의 경우, 실직 및 사업 실패로 인한 노숙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노숙인 쉼터는 74곳(2011년 현재)이지만, 대부분 남성 중심의 노숙인 쉼터로 운영되고 있다.

이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