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 당시는 성경으로공인된 책이 없었다. 정경이란 용어도 없었다.
무엇이든 예수님에 관한 글이면 공적 장소에서 읽혔다.
사도와 그들을 돕던 이들이 남긴 글이었다.
로마의 박해를 견디면서 이 문서들은 힘이 되었다.
로마 밖의 지역 교회도 돌려가며 읽었다. 시간이 지나자 엉뚱한 책이 등장했다.
예수님에 관해 정통교회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책이었다. 훗날의 이단異端들이다.
교회는 어떤 문서가 정통성을 지니는지 논의했다. 표준은 예수님일 수밖에 없었다.
그분의 가르침과 다른 것은 제외했다. 이렇게 해서 숱한 논란을 거친 뒤 정경 27권이 등장했다.
정경이란 용어 역시 이때 만들어졌다.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목록을 직접 작성해 지역교회에 배포했다.
이후 공적 장소에서는 정경이 아니면 읽을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당시는 외부 핍박이 많았다.
303년 로마 황제 디오클레시아누스는 기독교 문서를 모두 없애라는 칙령을 내린다.
영향은 대단했다. 쉽게 접할 수 있는 문서들이 사라지고 극히 제한된 문서만 살아남은 것이다.
자연스레 흩어진 문서를 수집해 전체를 만들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이 역시 정경의 출현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다.
최초의 정경 작업은 마르치온Marcion이란 사람에 의해 시도된다.
85년 터키에서 성직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뛰어난 사상가였다.
교회가 로마와 대치하는 것을 반대했으며 제국과 연합해 공존할 것을 주장한 사람이었다.
그는 로마에서 나름대로 목록을 만들고 마르치온 정경이라 불렀다.
이 사건은 초대교회를 자극했고 정경작업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다.
마르치온은 구약과 신약의 하느님을 구분했으며 구약의 하느님에 대해선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의 학설은 이단이 되었고 추방되었다. 하지만 정경작업은 분명 획기적인 도전이었다.
정경의 기준은 사도들이 직접 쓴 것이냐 아니냐에 있었다.
사도와 함께 일한 사람이 쓴 것도 기준이 되었다. 이렇듯 정경의키워드는 사도였다.
예수님의 직제자는 아니지만
바오로와 바르나바에게도 사도라는 명칭을 부여한 데는 이런 의미가 있었던것이다.
신약성경은 모두 1세기 이전 기록이다.
그런데도 교회는 300년 동안 정경으로 결정하지 못한 채 지내왔다.
그만큼 힘든 작업이었다는 반증이다.
신은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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