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5년 12월 21일 대림 제4주간 월요일(성 베드로 가니시오 사제 학자)

dariaofs 2015. 12. 21. 01:19

 

 

네덜란드 동부 네이메겐(Nijmegen)에서 9차례나 선출된 시장의 아들로 태어난 성 베드로 카니스(애칭)는 법률가가 되려는 야망을 품고 쾰른(Koln) 대학교로 갔으나, 그 대학의 저명한 교수이며 예수회원이던 베드로 파브르(Petrus Fabre) 신부의 영향을 받아 신학으로 전향하고, 1543년에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성 베드로 카니시우스(Petrus Canisius, 또는 베드로 카니시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유산을 주고난 후 1546년에 사제로 서품되었고, 곧 그의 설교는 유명하게 되었다.

 

그는 트렌토(Trento) 공의회의 두 회기에 참석하였고, 성 이냐시오가 시칠리아(Sicilia)의 메시나(Messina)에 설립한 예수회의 첫 번째 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다가, 바이에른(Bayern)의 빌리암 4세 공작이 그곳의 프로테스탄트들을 물리치고 가톨릭을 재건하기 위하여 그를 요청하므로, 그는 1549년에 인골슈타트로 갔다.

 

그는 이와 비슷한 일을 빈(Wien)에서도 하였는데, 그의 명성은 이 지역에서도 높이 평가받았다.

성 카니시우스는 프로테스탄트를 대항하여 가톨릭의 신앙을 옹호하는 일을 오랫동안 해왔으므로, 이제 그는 같은 주제에 대하여 저술하기 시작하여 자신의 교리서 첫판을 발간하자 큰 선풍을 일으켰고, 즉시 15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그는 또 1556년에 프라하(Prague)로 파견되어 그곳에 새로 짓는 대학교를 위하여 일하는 동안에, 남부 독일과 보헤미아(Bohemia) 그리고 오스트리아로 구성된 새 관구의 관구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독일 전역을 순회하면서 강의하고 설교하였고, 프로테스탄트를 반박하였으며, 여러 개의 대학을 설립하고, 그가 설교하는 도시의 가톨릭을 부흥시켰으며, 폴란드에 예수회를 널리 보급한 장본인이었다.

 

1559년부터 1565년 사이에 그는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에 있었다. 그는 아주 정열적인 사람이었으니, 30년 동안 도보로 혹은 말을 타고 2만 마일을 여행하면서 선교한 사람이다.

 

후일 그는 딜링엔(Dillingen), 인스브루크(Innsbruck)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프리부르(Fribourg)에서 교육에 전념하다가 그곳에서 운명하였다.

그는 현대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조차 '고상한 예수회원, 결점 없는 인품'을 지닌 사람으로 평할 만큼, 트렌토 공의회를 연이어 일어난 가톨릭 재건 운동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또한 그는 그 당시의 논객들 가운데서 가장 예의바르고 올바르며 예리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는 일찌감치 펜과 신문의 영향을 감지하였으므로, 모든 인쇄업자와 출판사에 용기를 주었다.

 

그는 또 알렉산드리아의 성 키릴루스(Cyrillus)와 성 대 레오(Leo)의 전집을 편집하였고,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의 편지를 비롯하여 순교학, 성무일도 개정 그리고 가톨릭 공과 등 수많은 저서를 내었다.

 

흔히들 그를 '독일의 두 번째 사도'로 부른다. 그는 1864년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25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강론   :   루카 1,39-45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루카 1,43)

Mary visits Elizabeth



저 낮은 곳에서 기다리시는 주님

교회는 연인과 같은 열렬한 사랑으로 구세주의 오심을 기다립니다. 산을 뛰어오르고, 언덕을 뛰어넘어오는 노루나 젊은 사슴 같은(아가 2,8-9) 사랑하는 이는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을 통해 구원계획을 계속하십니다.

마리아는 천사로부터 구세주의 수태 통보를 받고, 얼떨결에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1,38) 하고 대답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신비를 이해할 수 없어 두려웠고(1,30 참조), 처녀 잉태 사실이 알려지면 돌로 쳐 죽임을 당할 수도 있음을 알았기에 불안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마리아는 하느님의 이끄심에 자신을 내맡깁니다.

12-15세의 어린 나이에 처녀의 몸으로 잉태한 마리아는 두려운 마음으로 천사의 말을 확인하려고 서둘러 그 멀고 험한 길을 걸어 유다 산악 지방에 사는 엘리사벳을 찾아가십니다(1,39).

 

"더 높으신 여인이 더 낮은 여인을 돕기 위해 오시고,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에게, 그리스도께서 요한에게 오십니다."(성 암브로시오)

마리아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자 엘리사벳 태 안의 요한이 성모님 태 안의 예수님께서 찾아오심을 알아보며 즐거워 뛰놉니다(1,44). 요한은 태 안에서부터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1,15).

 

이미 시작된 구원의 기쁨은 그렇게 마리아의 수고로운 발걸음과 엘리사벳과의 소박한 만남에서 피어납니다.

성탄을 준비하며 저 낮은 곳을 향하여 스스로 내려오시고 찾아가시는 구세주의 사랑의 발걸음을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구세주 탄생의 기쁨을 찾아가는 길은 그렇게 저 낮은 곳으로 향합니다. 길거리로 나가 가난하고 소외되고 버려진 이들과 함께할 때 구원의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태 안의 두 생명의 만남으로 인류의 미래에 희망의 빛이 비치게 되었듯이 모든 만남을 소중히 여기며 그 안에 뿌려진 구원의 씨앗을 잘 키워가야겠습니다.

 

사소한 만남, 보잘것없어보이고 내게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아보이는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도 가난하게 오시는 주님을 볼 수 있어야겠지요.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근본적인 자세는 사랑과 더불어 굳건한 믿음입니다.

 

인생이 제아무리 고달프고 절망스러우며, 두렵고 불안해도 불가능이 없으신 하느님을 믿고, 보지 않고도 믿는 확고한 신앙으로 주님을 기다려야겠습니다.

사랑의 주님께서는 내가 고통을 당하며 힘들어하고, 오해받고 시련을 당할 때, 절망하고 좌절할 때일수록 더 간절하게 우리를 기다리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각박하고 힘든 시기이지만 다 함께 손을 맞잡고 서로에게 작은 사랑의 난로가 되어주며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의 구유 앞으로 나아갑시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