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6년 1월 7일 주님 공현 후 목요일(페냐포르트의 성 라이문도 사제)

dariaofs 2016. 1. 7. 05:28

 

 

에스파냐 북동부 카탈루냐(Cataluna)의 페냐포르트 태생인 성 라이문두스(Raymundus, 또는 라이문도)는 1222년에 도미니코 회원이 되었는데, 이때는 이미 바르셀로나(Barcelona)와 볼로냐(Bologna)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또 설교한 경험이 풍부하였다.

 

1230년 그는 로마(Roma)로 초빙되었는데, 여기서 그는 교황청의 회의와 칙서 등을 소장하는 업무를 맡았고, 이것의 결과로 '숨마 카수움'(Summa Casuum)이 발간되었다.

1236년 에스파냐로 돌아 온 성 라이문두스는 2년 동안 총장직을 역임한 뒤, 모슬렘과 유대인의 개종을 위하여 헌신 노력하였다.

 

이즈음에 그는 성 토마스 데 아퀴노(Thomas de Aquino, 1월 28일)를 격려하여 "대이교도대전"(對異敎徒大全, Summa Contra Gentiles)을 쓰게 하였으며, 아라비아어와 히브리어를 가르치는 학교를 세웠다.

 

또한 그는 성 베드로 놀라스코(Petrus Nolasco, 1월 28일)와 함께 '메르체다리오회'의 설립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00세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를 위한 생애를 살았던 성 라이문두스는 1275년 1월 6일 선종하였다. 그의 시신은 처음에 바르셀로나의 카타리나 수도원 성당에 안치되었다가 1878년에 바르셀로나의 주교좌 성당의 요한 바오로 소성당으로 옮겨져 안치되었다.

 

교회법 학자의 수호성인인 그는 1601년 교황 클레멘스 8세(Clemens V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성인의 축일은 1671년에 1월 23일로 로마 보편 전례력에 추가되었으나, 1969년 성인이 선종한 다음날인 1월 7일로 변경하여 기념하고 있다.

 

                               강론 : 루카 4,14-22ㄱ(16.1.7)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합니다.”(1요한 4,21)

사랑해야 하는 진짜 이유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지음 받았기에 사랑을 위해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사랑을 주고받을 때는 그렇게 기쁘고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영원한 사랑을 갈망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사랑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흔치 않습니다. 사랑은 돈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을 내어주어야만 하기 때문이겠지요.

사랑의 순수성과 진실성 그리고 동기는 행복 여부를 가름합니다. 왜 사랑하는지 모른 채 사랑한다고 착각하거나 의무감에서 사랑을 흉내내는 이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사람들은 인간 자체가 아니라 아이돌처럼 잘 생긴 외모, 호흡이 잘 맞는 성격과 취향, 학벌, 건강, 재산 등의 조건들을 매우 중요시 합니다.

 

그 사람이 없으면 죽을 것 같아서, 존재 자체가 좋아서가 아니라 상대방이 지닌 것들이 앞으로의 삶에 유익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외적인 조건에서 사랑의 동기를 찾는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그분을 사랑하고(1요한 4,19), 하느님을 사랑하기에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4,21).

 

한마디로 인간적인 조건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 때문에”(propter Dei), “하느님 사랑 때문에” 서로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때문에”라는 사랑의 가장 근본적인 진짜 동기를 인식한다면 싫거나 미운 사람, 실망과 좌절감을 안기는 사람, 스트레스나 상처를 주는 사람,

 

해를 끼치고 박해하는 사람, 자주 쏙썩이는 가족, 공공의 적과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나와 아무 관계도 없어 보이는 병들고 헐벗고 굶주린 이들과 사회적 약자를 사랑해야 하는 까닭도 그들의 조건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재물과 권력이 아니라 말구유의 가난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하느님의 사랑으로 그 누구도 차별하거나 배척하지 않고 사랑해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시어 다음 말씀을 봉독하십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예수님께서는 자비와 해방을 선포하도록 주님으로부터 파견되셨음을 강하게 의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자비를 선포하는 소명을 받고 파견된 첫 선교사인 셈입니다.

우리도 철저히 다른 이들을 사랑하도록 파견된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은 목적 성취가 아니라 조건없는 내어줌을 위한 파견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내가 기대하고 원하는 사람, 내가 원하는 때와 장소에서 사랑을 베풀기 위해 사는 것이 결코 아님을 명심해야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을 그분께서 파견하시는 때에 '하느님 때문에' 사랑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소명입니다.

 

참 사랑은 나 자신이나 상대방의 조건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 때문에', '상대방의 존엄한 인격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내가 사랑하는 진짜 이유를 돌아보며 다시 시작하는 은총의 때가 되길 희망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